최상목도 거부권 행사…관료와 국힘은 왜 윤석열 내란에 동조하나?
2024년 12월31일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겸 부총리가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 가운데 2명을 임명했다. 더불어민주당이 추천한 정계선 후보자와 국민의힘이 추천한 조한창 후보자였다. 민주당이 추천한 또 다른 후보자인 마은혁 부장판사의 임명은 보류했다. 최 대행은 마 후보자에 대해 “여야의 합의가 확인되는 대로 임명하겠다”고 밝혔다. 또 최 대행은 이날 윤석열 내란 특별검사 법안과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특검 법안에 대해서는 “국익을 침해하는 법안이다. 여야가 다시 한번 (…) 합리적 방안을 강구해줄 것을 호소한다”며 재의를 요구했다.
국회 자율성 침해한 최 대행 결정
최 대행의 이런 선택적 헌법재판관 임명은 위헌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국회에서 선출한 헌법재판관 3명에 대한 임명권은 국회가 가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는 “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국회가 3명의 선출권을 가지며, 선출 자체가 실질적으로 임명이다. 대통령의 임명은 형식적이고 의무적인 것이다. 최 대행이 선택적으로 헌법재판관을 임명한 것은 헌법적 의무를 위반한 행위로 탄핵 사유도 된다. 헌법재판소법 제61조와 제66조에 따라 국회가 권한 쟁의 심판을 내서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헌법재판관 임명 과정에서 여야 합의를 깬 쪽은 국민의힘이다. 헌법재판관 3명의 선출과 임명은 12월15일까지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추진됐다. 그런데 12월17일 권성동 원내대표가 갑자기 “대통령 권한대행은 탄핵 결정 전까지 헌법재판관을 임명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합의가 깨졌다. 최 대행이 여야 합의를 요구하며 마 후보자 임명을 거부한 것은 합의를 깬 쪽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는 “헌법 제111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국회가 선출한 대로 헌법재판관을 임명해야 한다. 최 대행이 여야 합의를 주문한 것은 권력 분립을 위배하고 국회의 자율성을 침해한 것이다. 최 대행이 헌법을 위반해 여야의 요구를 어중간하게 절충하려 했다.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또 최 대행이 윤석열 내란 특검 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을 행사한 일 역시 위헌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대통령의 거부권은 ‘삼권분립 원칙의 예외’에 해당한다. 국회의 입법권을 행정부의 수장이 부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안이 국익을 심각하게 훼손하거나 치명적인 흠결이 있는 경우에만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 타당하다. 윤석열 내란 특검 법안에 이런 문제점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헌법학)는 “권한대행은 일반적으로 현상유지적 권한을 행사한다. 대통령이 탄핵소추된 상황에서 민주적 정당성이 있는 국회의 입법에 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한 일은 지나치다. 특히 특검에 대한 거부권은 현재 상황을 초래한 대통령의 내란에 대한 수사를 막는다. 최 대행이 집권 여당의 정치적 압력에 굴복한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고 말했다.
내란 관련 쪽지 받고도 ‘모르쇠’
최 부총리는 대행을 맡기 전에도 내란에 대해 혼란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최 대행은 12월3일 비상계엄령 선포 전 대통령 윤석열로부터 “비상계엄 입법기구의 예비비를 마련하라”는 내용의 쪽지를 받았으나, 계엄이 해제된 뒤에도 이를 즉시 공개하지 않았다. 2주가 지난 12월17일 국회에서 질문을 받고서야 “쪽지의 내용을 자세히 보지 못했다. 차관보에게 가지고 있으라고 했다. 계엄을 전제로 한 조치사항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대통령의 서면 지시를 받고도 이를 읽어보지 않았다고 말한 점은 의문스럽다. 또 비상 입법기구를 만들기 위한 예산을 확보하라는 서면 지시를 받고도 이 사실을 즉시 공개하지 않은 점도 의심을 받는다. 윤석열의 이 쪽지는 국회를 해산하고 별도의 입법기구를 만들려고 했던 내란의 증거로 보이기 때문이다.
오재록 전주대 교수(행정학)는 “최 대행이 윤석열의 쪽지를 안 봤고 차관보에게 넘겨줬다고 말한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본다. 대통령의 지시가 담긴 문서를 열어보지 않았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자신이 이번 내란에서 중요 임무 종사자가 아니라고 해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란의 중요한 증거가 되는 내용을 바로 공개하지 않은 일은 윤석열의 내란 혐의를 덮어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12월26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헌법재판관 3명 임명을 거부해 한국의 정치적 불확실성을 증폭시켰다. 이 발표 뒤 주가는 폭락하고 환율은 폭등했다. 한 대행은 이날 “여야가 합의해 안을 제출할 때까지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한 대행의 주장 역시 애초 여야 합의로 추진된 헌법재판관 임명을 국민의힘이 일방적으로 깼다는 점을 모른 척한 것이다.
한 대행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 때 황교안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은 전례를 들었다. 그러나 당시엔 헌법재판관이 정원 9명 중 8명이어서 탄핵 심판에 큰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번엔 자신이 헌법재판관 3명을 임명하지 않으면 탄핵 심판의 의결 정족수인 6명이 심리와 결정을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심판 결과와 관계없이 논란의 소지를 남길 가능성이 크다.
관료 출신들의 이런 비상식적 행태는 한두 번이 아니다. 12월5일 이상민 당시 행정안전부 장관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비상계엄령 선포에 대해 “대통령은 헌법에 규정된 권한을 행사한 것이고, 비상계엄은 고도의 통치행위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비상계엄령 선포가 조건, 절차 등을 갖추지 못한 불법 행위였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했다. 그는 윤석열의 충암고 후배이자 최측근이다. 법무를 총괄하는 박성재 법무부 장관도 12월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나와 ‘내란죄’라는 표현에 대해 “의원님이 판단하시는 것과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다”며 윤석열의 내란 혐의를 부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명백한 내란 행위를 보고도 윤석열 탄핵과 특검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 관료들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아마도 자신들이 내란에 공모했거나 동조했기 때문 아닐까 싶다. 예를 들어 최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한 총리를 통해 윤 대통령에게 계엄을 보고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또 최 대행도 대통령의 지시 쪽지를 받고도 안 봤다고 주장했다. 어떻게든 내란죄 처벌을 피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내란죄 처벌 회피하려는 꼼수인가
주로 관료 출신으로 이뤄진 윤석열 내각은 12월3일 계엄령 선포 직전 열린 윤석열 포함 11명의 국무위원 회의에서도 계엄령 선포에 대해 단 2명만 반대했다. 당시 명확하게 반대 의견을 밝힌 사람은 최상목 경제 부총리, 조태열 외교부 장관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12월31일 국무회의에서 최 대행이 헌법재판관 후보자 2명을 임명하겠다고 발표하자 김문수 노동부 장관, 김태규 방송통신위원장 대행, 이완규 법제처장, 유철환 국민권익위원장,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연원정 인사혁신처장 등이 이 결정에 반대, 항의했다.
김종철 교수는 “비상계엄령 선포는 국무회의에서 반드시 심의를 거쳐야 한다. 그런데 심의는 고사하고 정상적인 국무회의가 열리지 않았고, 문서도 남기지 않았다. 국무위원들이 자신의 권한을 심각하게 침해당하고도 그대로 대통령의 불법행위를 따라갔다. 헌법적 책무를 완수하지 못한 것에 대해 분명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차관을 지낸 한 전직 관료는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 정치가 직업 관료에 대한 의존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행정부의 고위직을 보수적 관료가 독차지하는 구조를 바꿔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더 많이 장관을 맡아야 하고, 시민단체 출신도 더 많이 행정부에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관료들의 그들만의 리그가 깨지고 국민의 목소리가 정책에 더 반영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내란에 대한 국민의힘의 태도는 한덕수, 최상목 등 관료 출신보다 더 심각하다. 국민의힘은 윤석열의 내란에 동조하는 듯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12월4일 비상계엄령 해제를 위한 국회 표결에 전체 108명 의원 가운데 18명만 참여했다. 절반가량인 50여 명은 국회가 아닌 당사에 모여 있었다. 당시 추경호 원내대표가 의원들을 당사에 모아 표결하지 못하게 한 행위는 사실상 윤석열의 내란에 동조한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내란에 따른 탄핵소추 표결에서도 국민의힘 대다수 의원은 당론에 따라 불참하거나 반대했다. 12월7일 1차 표결에선 국민의힘 의원 108명 가운데 105명이 불참해 표결을 무산시켰다. 또 12월14일 2차 표결에서도 85명이 반대표를 던졌고, 찬성표는 12표에 불과했다. 반면, 2016년 12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는 당시 새누리당 의원 128명 가운데 절반가량이 탄핵에 찬성했다. 탄핵 반대는 56명에 불과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정치학)는 “국민의힘이 박 대통령 탄핵 이후 극우 중심 정당으로 변화했다. 이번에도 탄핵을 순순히 받아들이면 문재인 정부 때처럼 적폐 청산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정치 양극화 속에서 이재명 대표를 공격하면서 버티면 지지층이 다시 결집할 것이란 계산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극우냐 쇄신이냐 갈림길 선 국힘
현재 국민의힘 지도부와 의원 대다수는 헌법재판관 임명과 내란 특검 법안, 김건희 특검 법안에 모두 반대하고 있다. 12월31일 최상목 대행의 헌법재판관 2명 임명에 대해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대단히 유감”이라고 말했다. 이런 내란 동조적 태도 때문에 전날인 12월30일 비대위원장 취임사에서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으로 불안과 걱정을 끼쳐드린 점,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처음 사과한 일조차 묻혀버렸다.
국민의힘은 왜 내란에 동조하는 태도를 보이는 걸까? 신진욱 교수는 “국민의힘 당원과 지지층 자체가 윤석열처럼 극우 성향이 강해졌다. 지금 국민의힘 의원들이 살아남으려면 극우화해야 한다. 지지층 절반 이상이 윤석열의 비상계엄이 내란임을 부정하고 탄핵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의원들이 그런 지지층을 보고 그러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현재 극우를 중심으로 한 국민의힘은 변화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정치 개혁을 한 방안으로 제시했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국민의힘에서 이번 내란에 공모했거나 실행한 사람은 모두 처벌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힘과 같은 극우 정당이 양대 정당이 되지 못하게 하는 비례대표 강화 등 선거제 개혁과 정치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윤철 교수도 “극우 정당의 세력을 줄이려면 다른 정당들이 그 자리를 대체해줘야 한다. 이번에 민주당이 대선을 통한 집권에만 몰두하지 말고 헌법과 선거법 개혁 일정을 제시해야 한다. 이재명 대표가 그런 큰 그림을 갖고 현재 상황에 대응한다면 자신에 대한 부당한 선동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다음 정부가 위헌 정당 해산 심판 청구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원호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위헌 정당 해산 심판 청구는 분명히 극단적인 일이다. 그러나 국민의힘 내부에서 상식을 가진 의원들은 오히려 한번쯤 그런 과정을 거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내부의 극단적인 생각이 한번 정리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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