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이모’도 ‘공주’도 없는 무안공항의 빈자리…시민의 ‘온정’이 채웠다

전남 무안=정윤경 기자·정성환 호남취재본부 기자 2025. 1. 3. 14: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여객기 참사 속 무안공항의 72시간…가족 떠난 공항에 남은 사람들
차분한 분위기 속 새해맞이…시민들은 생업 제쳐둔 채 자원봉사 오고, 공무원도 밤샘 근무

(시사저널=전남 무안=정윤경 기자·정성환 호남취재본부 기자)

한평생 딸기만 만지고 살았다. 1980년 처음 농사를 지을 때부터 지금까지 한 해도 빼놓지 않고 딸기를 수확했다. 여자인데도 힘이 장사였다. 무거운 딸기 바구니도 척척 들었다. 단 하루도 쉰 적이 없었다. 그렇게 번 돈으로 1남 2녀 대학을 보내고 결혼도 시켰다. 집에 놀러 오는 사람에겐 꼭 딸기를 들려 보냈다.

마을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끼니때 손님이 찾아오면 늘 따뜻한 밥을 내줬다. 혼자 사는 사람들의 점심식사까지 챙겼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따뜻한 이모'라고 불렀다. 따뜻한 이모는 이번 겨울 따뜻한 나라 태국으로 휴가를 떠났다. 언니·동생·동서와 함께. 6명의 여자끼리 떠난 여행이었다. 그러곤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한평생 딸기 농사만 짓던 그는 딸기 수확철에 세상을 떠났다.

2024년 12월31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한 지 사흘째 되던 날. 무안국제공항에서 만난 전호일씨(가명·65)는 어렵사리 아내 김미혜씨(가명) 이야기를 시사저널에 들려줬다. 전씨는 이번 참사로 아내를 포함해 6명의 가족을 잃었다.

여느 날처럼 전씨는 딸기 수확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인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형님, 혹시 이모(김미혜씨) 태국에서 오는 날 아니에요? 우리 어머니도 태국에 갔는데, 엄마는 김해공항에서 내리고 이모는 무안공항에서 내린다고 하던데요. 빨리 뉴스 좀 틀어봐요."

전씨는 한달음에 전남 담양에서 무안공항으로 달려갔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한 줄기 희망을 안고 뛰었다. 그러나 그의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다. 구조된 2명을 제외한 탑승자 179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동네 사람들도 평소 이웃을 살뜰히 챙겼던 김씨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전씨가 말했다. "주변에서도 난리예요. 계속 전화랑 문자가 와요. 이웃들한테 그렇게 친절하게 잘했으니까. 사람을 참 좋아했는데." 전씨는 "가족과 일밖에 모르던 사람"이라고 아내를 기억했다. "하루도 안 쉬고 고생만 하다가 갔어요. 가족들을 위해 일만 하다 가버리니까 마음이 너무 아프죠. 자식들 다 키우고 이제 살 만하다 싶으니까…."

2024년 12월31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에서 경찰 과학수사대와 국과수가 현장 조사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딸기밭과 펜·카메라 남기고 떠난 그들

그들은 저널리스트 부부였다. 남편은 7년 차 방송국 PD였다. 그의 시선은 항상 낮은 곳을 향해 있었다. 마지막 휴가 직전까지도 미등록 이주노동자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준비했다. 조금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는 힘들고 어려운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온갖 궂은일도 묵묵히 감당했다. 동료들은 그가 듬직하다고 입을 모았다. 

아내는 집요하게 사건을 추적하던 기자였다. 2년에 걸쳐 5·18 민주항쟁과 관련된 46명의 증언을 모았다. 그리고 영상으로 기록했다. 그의 작품 《영상채록 5·18》은 '5·18 언론상'을 수상했다. 그의 집요함은 세상을 바꿨다. 그는 양식장에서 화학물질 '포르말린'에 노출돼 백혈병으로 산재 승인을 받은 한 외국인 노동자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러자 정부는 안전 대책을 점검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기사는 한국방송기자연협회 등이 매달 가장 뛰어난 기사를 선정해 수여하는 '이달의 방송기자상'을 수상했다.

똑 부러지던 기자는 집에선 영락없는 '공주'였다. 그의 아빠는 서른이 된 딸을 '○○공주'라고 불렀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귀한 딸이었다. 그날도 아빠는 공주가 걱정이 돼 '도착했는가'라고 카톡을 보냈다. 숫자 '1'은 사라지지 않았다. 수십 통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 포상휴가를 받고 떠난 딸과 사위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글과 영상으로 미약하나마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 저널리스트 부부. 하지만 정작 그들은 이 세상에 없다.

딸·사위를 한꺼번에 잃은 김진환씨(가명·61)가 무안공항 밖에서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에 소주를 입에 털어넣으면서도 인터뷰에 응하겠다고 했다. 기자를 보면 기자였던 딸이 떠오른다는 이유에서였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를 목격한 정찬원씨(49)가 2024년 12월30일 사고 현장을 가리키고 있다. ⓒ시사저널 정윤경

전쟁 난 듯 '쾅'…"콘크리트 둔덕 있었다"

유가족은 철저한 진상 규명을 원했다. 김진환씨는 "진상 규명이 가장 중요하다. 그다음에 책임자가 누구인지 밝히고, 재발 방지 대책이 나와야 하는데 벌써부터 장례 절차를 얘기하면 어떡하느냐"며 "말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내를 잃은 전호일씨의 생각도 같았다. 전씨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었는데 진상 규명이 철저히 돼야 한다"며 "앞으로 이런 일이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유족은 참사 원인으로 '콘크리트 둔덕'을 지목했다. 무안공항 활주로 바깥에는 여객기 착륙을 돕는 역할을 하는 안테나인 '로컬라이저'가 있다. 로컬라이저는 콘크리트 받침대와 흙더미로 지지돼 있는데, 육안으로는 콘크리트 받침대가 흙더미에 가려져 20% 정도만 보인다. 멀리서 보면 2m 높이 흙더미에 안테나가 놓여 있는 모습이다. 사고 여객기는 이 단단한 콘크리트와 충돌해 폭발했다.

미국 항공 전문가들도 콘크리트 구조물이 피해를 키웠을 수 있다는 지적에 힘을 실었다. 워싱턴포스트(WP) 기사에 따르면, 미국 비영리단체 '항공안전재단'의 하산 샤히디 회장은 "활주로 근처의 물체들은 (항공기와의) 충돌 시 부서지기 쉬운 물체여야 한다"며 "조사관들은 이런 구조물이 규정을 준수했는지를 알고 싶어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직 항공기 파일럿 더그 모스는 WP에 "활주로를 완전히 평평하게 만드는 데는 비용이 많이 들기에 약간의 경사지가 있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며, 개인적으로 특이한 공항 설계도 많이 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무안공항) 것은 최악(this one takes the cake)"이라고 평가했다.

취재진이 만난 사고 현장 목격자들도 공통적으로 둔덕과 충돌할 때 굉음이 발생했다고 증언했다. 무안공항 인근에서 3년째 펜션과 카페를 운영하는 김성훈씨(30)는 사고 당일 오전 9시경 펜션 내부를 정리하다 '쾅' 하는 굉음을 들었다고 한다. 동시에 가구가 흔들리고 벽에 부착된 액자가 흔들리는 것을 목격했다. 외부에 있던 철제 가스통이 철컹거리는 소리도 들렸다. 김씨는 "평소 비행기가 이착륙하는 소리와는 분명히 달랐다"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어보는 소리였다"고 말했다.

이 같은 소리는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정찬원씨(49)도 또렷이 들었다고 한다. 정씨는 "공사장에서 발파 작업을 할 때 소리처럼 '꽝꽝꽝'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며 "놀라서 밖에 나가 보니 여객기가 순식간에 둔덕을 박고 화염에 휩싸였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인근에서 펜션과 카페를 운영하는 양아무개씨(55)도 "생전 들어보지 못한 굉음에 깜짝 놀랐다"면서 "고무장갑을 채 벗지도 않고 가게 밖으로 뛰쳐나갔다"고 했다.

아직 사고 원인은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원인 규명에 핵심적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블랙박스 비행기록장치(FDR)는 일부 부품이 파손된 채 미국으로 옮겨졌다. 국토부 관계자는 "파손된 FDR은 국내에서 자료 추출이 불가한 것으로 판단돼 미국 교통안전위원회(NTSB)의 협조를 통해 미국 워싱턴으로 옮겨 분석하는 방안을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분석 결과가 발표되기까지 짧게는 6개월에서 길게는 3년까지 소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원인 규명까지 긴 시간 동안 유가족에게 '사회적 지지'가 필요하다는 데는 특별한 이견이 없다. 이미 무안공항에는 참사 첫날부터 자원봉사자들의 온정이 이어지고 있다. 취재진이 머무른 사흘 동안 공항에는 자원봉사자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생업을 제쳐두고 매일 새벽같이 달려와 음식과 생필품을 나눠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유가족 지원을 위해 밤샘 근무를 하는 무안군과 전남도청 공무원도 있었다.

1월1일 전남 무안국제공항에 마련된 제주항공 참사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하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1월1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계단에 제주항공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쪽지가 붙어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사회적 지지'는 재난 트라우마 회복의 핵심"

국제 개발구호기구인 '아드라코리아'도 사고 당일 무안공항을 찾아 유족을 위해 빵과 과일, 두유를 준비했다. 최규식 호남지역장(56)은 "식욕이 없는 유가족이 조금이라도 먹을 수 있는 음식들로 준비했다. 체력이 뒷받침돼야 마음이 나빠지지 않는다"면서 "아이가 아팠을 때 엄마가 울어주는 마음으로 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도 공항 내부에는 간식을, 외부 주차장에는 차와 음료를 제공하는 부스를 마련했다. 재단이 운영하는 광주 지역 사회복지관 관계자들은 자정까지 유족 곁을 지키고 있었다. 관계자는 "참사 희생자 대다수가 광주 주민들이라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먹먹했다"면서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보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국민도 차분한 분위기 속에 새해를 맞았다.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일대에 제야의 종 타종 행사를 보러 간 시민들은 자정의 태양을 보며 조의와 애도의 시간을 가졌다. 국가애도기간인 1월4일까지 운영되는, 여객기 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합동분향소로 발걸음을 옮긴 이들도 있었다.

전남 영광에서 무안 분향소를 찾은 차상혁씨(29)는 "크리스마스 연휴를 맞아 들뜬 마음에 휴가를 갔을 분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면서 "꼭 유족이 아니어도 같은 지역 주민으로서 고인의 명복을 빌고 오는 게 맞을 것 같아 오게 됐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경례씨(64)도 "고인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지만 분향소에서 작은 위로라도 건네고 와야 할 것 같았다"며 "아무런 걱정 없이 편안하게 가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의례를 통해 장례를 치르는 것이 재난 참사를 극복하는 데 중요한 요소라고 입을 모았다. 백종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YTN라디오 《슬기로운 라디오생활》에 출연해 "제가 만난 세월호나 이태원이나 오송의 피해자분들은 '그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얼굴도 모르는 많은 국민의 온정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감사를 표했다"고 전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와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는 "재난으로부터의 회복은 우리 모두의 힘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들은 "사회적 지지는 재난 트라우마 회복의 핵심"이라며 "생존자와 유가족에 대한 평가나 판단, 섣부른 조언은 삼가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지지와 위로가 된다"고 강조했다. 

☞ 연관기사 

비극에 휩싸인 무안공항, 정치에 휘둘린 무리한 개항이 화 불렀나

항공기 대형 참사의 최대 원인은 '조종사 실수'와 '기체 결함'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