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해돋이 명소…이성계 소원 들어준 ‘기도 도량’ 보리암 [정용식의 내 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내 마음대로 사찰여행 비경 100선
일 년을 매듭짓고, 새해를 준비해 갈 12월에 분노와 충격, 그리고 무고한 생명들이 희생된 참사 앞에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함과 슬픔을 안고 한 해를 마무리 짓는다. 국민에게 충격을 주는 불행한 일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하며 명복을 빈다.
‘잠만 자도 도 닦여지는 명당’이라는 남해 금산 보리암에 올라, 지는 해를 바라보며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외쳐본다. 뜨는 해를 바라보며 힘듦 속에서도 희망의 씨앗이 싹트기를 기원한다.
신라시대 고승 원효대사는 도반인 의상대사가 양양 낙산사에서 관음보살을 친견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지만 친견하지 못해 이곳 금산으로 와서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친견했다는 곳이 보리암이다. 그래서 원효는 ‘화엄경’에 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곳을 ‘보광궁(普光宮)’이라 한데서 착안해 산 이름을 보광산, 절 이름을 보광사로 창건했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백두산, 계룡산, 지리산 등 명산을 찾아 기도했다. 하지만 산신들이 들어주지 않아 마지막으로 보광산으로 들어와 기도하면서 임금을 시켜주면 이 산을 비단으로 감싸주겠다는 약속을 했다. 조선을 건국하고 왕위에 등극한 후 보광산 전체를 비단으로 감쌀 수 없어 보광산을 비단 금(錦)을 써서 금산으로 이름을 바꾸게 했다.
무려 38경이 전해 내려오는 경남 남해군에 있는 금산(錦山)은 535㎢에 달하는 한려해상국립공원 중 유일한 산악공원이다. 1660년 현종이 왕실의 원당 사찰로 삼고 보광사란 절 이름을 ‘부처가 되기 위한 지혜와 깨달음’을 의미하는 ‘보리암’으로 바꿨다. 이성계와 김수로왕이 기도했다고 전해지는 이곳에서 개인의 안녕을 넘어 국가의 안녕을 기원해야 할 절박함이 있다.
다도해 섬들 사이로 떠오르는 태양을 해발 681m 산 위에서 바라보는 것은 망망 동해의 일출을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특히 기도 도량으로 알려진 암자에서 새해 일출을 보며 소망을 빌어보는 것은 나름의 의미가 있어 연초에 많은 이들이 찾는다.
해넘이와 함께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정리해 보기 위해 오후에 보리암에 올랐다. 예전에는 산행을 겸해 쌍홍문 길로 보리암까지 올라갔으나 이번에는 차량으로 보리암 아래 잘 정비된 윗주차장을 이용했다.
윗주차장에서 20여분 걸어 올라가면 우뚝 솟아 웅장하고 위엄 있게 창공을 찌르듯이 서 있는 큰 바위 모습이 대장을 연상시킨다고 하는 ‘대장봉’ 아래에 도착할 수 있다. 기념품 판매장이 있고 여기에서 200여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면 보리암이다.
해수관음상 앞 탑대에서 바라보니 석양은 상사바위 뒤 산 쪽으로 넘어가며 붉은 노을 띠를 길게 남기고 있었다. 한려수도의 초승달 모양의 상주 해수욕장이 발아래에 들어온다.
갑자기 바다로 마지막 떨어지는 해가 궁금해 산 정상으로 뛰어 올라갔으나 정상 부위 ‘단군성전’ 앞이 ‘최고의 석양 명소’임을 나타내는 표지판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살을 에는 추위를 뒤로하고 해수관음상 앞에 자리 잡았다. 2년 전엔 극락전과 보광전 사이에서 새해 일출을 감상했기에 이번에는 자리를 옮겨봤다. 구름을 잔뜩 머금은 다도해가 붙잡고 있어 일출 예정 시간을 10여분 늦추며 서서히 태양이 모습을 드러낸다.
새로운 시작과 희망을 떠오르는 해를 보며 기원하는 연인, 가족, 친구들이 각각의 소원을 들고 아침을 맞는다. 매일 반복해 뜨는 태양이지만 오늘 뜨는 해에 의미를 부여하고 또 의미를 찾아갈 것이다.
비단을 두른 산 금산(錦山)은 금강산에 빗대어 남해 소금강(小金剛)이라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한다. 사선대, 만장대, 좌선대, 향로봉, 화엄봉, 부소암, 쌍홍문, 삼불암 등 갖가지 형태의 38경으로 꼽히는 암석들이 절경을 이뤄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내고 있다.
탁 트여 금산과 남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705m의 금산 주봉 정상에는 남해안을 침입하는 왜구를 막기 위해 축조한 ‘망대’라는 봉수대가 있다.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적이 침입했음을 한양까지 한달음에 알렸을 것이다.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이곳이 금산 1경이며 일출 명소로도 꼽혀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일출을 감상하고 강렬해진 태양을 바라보며 ‘쌍홍문’으로 내려갔다. 금산 38경 중 1경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절경이기에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만장대 바로 아래 길이 5m 정도 되는 바위굴 ‘음성굴’을 지나 ‘쌍홍문’ 안으로 들어서니 그곳에 연인 한 쌍이 일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쌍홍문’ 안으로 들어오는 강렬한 아침 햇살을 보니 이곳에서의 일출 광경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정상(망대)과 보리암에서의 일출이 최고라고 하지만 ‘쌍홍문’과 장군봉 사이로 수평선과 구름 사이를 뚫고 작은 섬들을 깨우며 솟구쳐 오르는 일출 또한 장엄하고 신비스러운 황홀의 극치일 듯했다. ‘쌍홍문’을 지키는 ‘장군봉’의 위용이 햇살을 받으며 쌍홍문 사이로 들어오고 그 뒤로 펼쳐진 다도해의 풍광이 일품이었다.
상주 해수욕장 쪽 ‘금산탐방지원센터’에서 시작하는 등산로를 따라 보리암에 올라올 때 지나게 되는 관문이 ‘쌍홍문’이다. 상봉에 이르는 암벽에 커다란 구멍 두 개가 나란히 나 있는 것이 두 눈에 구멍 뚫린 해골바가지처럼 험상궂게도 보이지만 원효대사는 ‘두 개의 굴이 쌍무지개 같다’라고 해서 쌍홍문(雙虹門)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들어가 보면 속이 비어 있고, 천장이나 벽에도 구멍이 숭숭 뚫어져 있어 파란 하늘이 잡힐 듯이 보인다.
옛날 석가모니(세존)가 금산에서 득도하고 인도로 돌아가기 위해 쌍홍문에서 돌배를 만들어 타고 나가면서 앞바다에 있는 세존도의 한가운데를 뚫고 지나갔다는 전설이 있다. 그래서 금산에 쌍홍문이 생기고 세존도 한복판에도 두 개의 해상 동굴이 생겼다고 전해진다. 세존도(世尊島)는 미조항에서 배를 타고 남쪽으로 한 시간 거리, 상주 은모래 비치에서 40km나 떨어져 있지만, 날씨가 좋으면 금산에서도 아득히 볼 수 있다고 한다. 섬 전체가 바위인 무인도로서 고기가 잘 잡혀 낚시꾼들에게는 알려진 곳이라 한다.
세존(世尊)이란 불교 ‘석가모니’의 다른 이름으로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라는 뜻이다. 지극한 불교 신앙을 반영한 전설이며 금산 정상부의 동굴 쌍홍문(雙虹門)이 그렇게 생겼고 세존도 바위문도 그때 생겼다고 한다. ‘세존도’는 손바닥을 마주 합장(合掌)한 모습에서 유래했다고도 하며 금산과 그 주변엔 불교적 전설과 명칭들이 많아 보인다. 옛날 가뭄이 들면 남해 망운산에서 기우제를 지냈고 그래도 비가 오지 않으면 세존도에서 제를 올렸고 그제야 비가 내렸다고 한다. 이름에 걸맞게 영험한 곳이었던 모양이다.
원효 스님에 의해 시창된 보리암은 김수로왕의 왕비 허황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불사리를 원효대사가 봉안한 탑이라고 하는 삼층석탑이 있다. 이런저런 연유로 김수로왕과 일곱 왕자도 이곳에서 기도하고 지리산 반야봉 아래 칠불암으로 갔다는 전설도 함께 있다.
천 길 낭떠러지로 높이가 만장이나 된다고 해 ‘만장대’라 불리는 암벽 위에 서있는 삼층석탑은 명당 중의 명당이다. 나침반도 동서남북을 가리키지 못하고 헛돈다는 곳으로, 그 앞에 1970년에 세운 해수관음보살상이 자리하고 있다. 강화 보문사, 양양 낙산사와 함께 3대 해수 관음 도량임을 드러내고 있다.
보리암 바로 밑에 있는 이곳을 ‘탑대’라고 부르는데 남해를 조망하고 일출, 일몰뿐만 아니라 가을 단풍 경치도 천하절경이라 탐방객들과 불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자리다.
금산이 과거 보광산이었고 그 안에 보광사가 있었음을 나타내려는 듯 붙여진 기도처 ‘보광전’에는 목조관음보살좌상이 불감(佛龕)과 함께 모셔져 있다. 보리암은 많은 이들이 일출을 보며 소망을 비는 연말 연초뿐만 아니라 평상시에도 많은 이들이 찾는 기도 도량이다.
보리암 극락전 아래 200여m를 오르락내리락 계단을 타고 가다 보면 이성계가 기도를 올렸다는 ‘조선 태조 기단’이 비각(碑閣)과 함께 맞이한다. 천하를 잡으려는 이성계는 전국 명산을 찾아 기도를 드렸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던 중 금산 보리암이 올려다보이는 삼불암 아래서 100일 기도를 올려 관음보살로부터 금척(金尺, 왕위의 신표)을 받아 왕이 됐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조선 태조기단’ 왼쪽 깎아지른 듯한 암반 위에 부처님 좌상 같다고 하는 바위 세 개가 있어 ‘삼불암’이라고 하는데 한 개는 누워 있고 두 개는 서있다. 이성계가 백일기도를 하기 전에는 이 바위들이 모두 누워 있었는데 기도가 끝나자 두 개의 바위가 일어나 앉았다고 한다. 세 개 모두 일어났더라면 이성계는 중국 땅까지 다스리는 천자가 됐을 것이라는 전설도 있다. 삼층석탑이 있는 ‘탑대’에서 삼불암과 비각(碑閣)이 절벽 넘어 바로 건너다보인다.
바위에는 붉은 글씨로 ‘이씨기단(李氏祈壇)’이라 새겨져 있고 그 앞에는 비석을 보호하기 위한 ‘하늘의 은덕을 입는다’라는 뜻의 ‘선은전(璿恩殿)’이라는 편액이 걸린 비각이 있다.
비각 안에는 2m 크기의 비석이 두 개 있는데 ‘남해금산영응(靈應)기적비(紀蹟碑)’ 와 ‘대한중흥송덕축성비’라 새겨져 있다. 조선 후기 문신 윤정구가 1903년에 이성계의 기도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이성계는 백일기도로 조선왕조를 개국하고 왕위에 오르게 되자 기도했던 장소에 은혜를 갚기 위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비단을 두른다’라는 뜻으로 비단 금(錦) 자를 써서 산 이름을 보광산에서 금산으로 바꿨다고 한다.
권력을 꿈꾸며 기도해 이루었던 이성계의 기운을 받고자 지금도 많은 정치 지망생이 보리암을 찾고 있다.
원효대사가 금산(보광산)에 보광사(普光寺)를 세웠으나 이후 호구산(虎丘山, 650m)에 첨성각을 세우고 보광사를 옮겨 용문사라고 이름을 붙였다는 설이 있다. 또 다른 설은 임진왜란 이후 불에 탄 절터에 폐사 직전에 이른 보광사 건물을 학진(學進) 스님이 옮겨와 중창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금산에 있던 원효가 창건한 보광사의 후신으로 등장한 절이 용문사라는 것이다. 임진왜란 때 사명당을 따르던 용문사 승려들이 용맹하게 싸워 호국 도량으로 알려져 숙종(1674∼1720년)은 나라를 지키는 절이라며 수국사(守國寺)로 지정하고 왕실의 축원당(祝願堂)도 건립했다.
지금도 용문사 봉서루 아래에는 임진왜란 때 1000여명분의 승병의 밥을 담아 쓰던 밥통으로 전해지는 구유(일명 구시통)가 있다. 둘레 3m, 길이 6.7m나 되는 거대한 통나무 밥통이다.
호랑이가 누워있는 형상의 호구산 품에 안겨있는 남해 용문사는 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 말사로서 임진왜란 이후 절을 중창하기 위해 땅을 파다가 발굴된 높이 약 81㎝의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석불이 대웅전 뒤편 용화전에 모셔져 있다.
웅장하고 장중한 느낌을 주는 대웅전은 조선시대 현종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물로도 지정되어 있다. 남해에서 가장 오래된 최대의 사찰로서 열두 명의 고승을 배출한 용문사의 산내 암자인 백련암에는 용성과 성철 등 고승들이 수도하던 곳으로 경봉 스님이 쓴 편액이 걸려 있다.
용(龍)은 부처의 가르침을 수호하고 임금을 상징한다. 용이 지상과 천상 세계를 다니는 통로인 용문(龍門)은 신성한 장소이며, 용문을 오르는 등용문(登龍門)은 지금도 입신출세를 표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경기 양평·경북 예천·경남 남해에 3대 용문사(龍門寺)가 있다. 이들 3대 용문사는 모두 왕실의 후원으로 지어졌거나 호국 도량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양평 용문사가 1200년 이상 된 은행나무가 있어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3대 용문사의 위치가 남북으로 이어져 풍수지리적으로 양평은 용의 머리, 예천은 허리, 남해는 꼬리에 해당한다. 조선팔도가 용과 부처님의 기운을 받아 영원히 번영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작명이다.
용문사와 보리암에서 2024년의 아픔을 딛고 2025년 대한민국의 국운이 다시 기운차게 살아나 번성하길 기원해 본다.
글·사진 = 정용식 ㈜헤럴드 상무
정리 = 민상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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