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곳곳에서 비명 섞인 통곡…또 한 번 무너지고 있다
179명이 희생된 제주항공 참사가 발생한 2024년 12월29일 밤, 수염을 기르고 모자를 눌러쓴 남성이 전남 무안국제공항 1층 출입구 밖에 홀로 걸터앉아 있었다. 손에는 플라스틱 소주병이 들렸고, 눈은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직업이 ‘화가’라는 그는 이 참사에서 딸을 잃었다.
“예술이라는 게 항상 비정규직이라” 시골이 아니었으면 아이를 키우기 힘들었을 거라는 이야기, 큰돈을 들여 교육하지 못했음에도 아이는 잘 자라주어 “지역 장학금”을 받았단 이야기를 했다. 딸이 직장인이 된 지 5년여밖에 안 됐고, 결혼한 지도 그리 오래지 않았다는 이야기, 2023년엔 아내가 환갑이라고 “어디서 대출을 받았는지 1200만원인가 들여 시골집을 하나 사주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공항 곳곳에서 비명 섞인 통곡
공항 곳곳에서 비명 섞인 통곡이 들려오던 참사 첫날 밤, 유가족 대부분이 슬픔에 무너져 인터뷰에 응하지 못할 때, 그만은 다정한 눈길로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하나다. 딸이 기자였기 때문이다. “기자들이 얼마나 힘든지 딸애가 한 번씩 오면 얘기했거든. 5·18언론상 같은 상도 받고 했는데도, 다시 공부를 해야 하나 그럴 정도로요. 한겨울인데…, 항상 응원해요.” 그는 딸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하듯 기자에게 말했다. 그러고는 주머니에 넣었던 소주병을 다시 꺼냈다.
무안국제공항 안팎에는 땅바닥에 주저앉거나 무릎을 꿇고 서로를 껴안은 가족들이 곳곳에 보였다. 여성 노인 둘은 바닥에 주저앉아 서로 몸을 부둥켜안은 채, 자꾸만 손으로 서로의 몸을 쳤다. 한 노인이 “난 못 살아. 난 못 살아. 난 못 살아”를 반복하니, 옆에 있던 노인은 “왜 못 살아. 산 사람은 다 살아. 네가 왜 못 살아” 말하며 목이 메었다.
공항 바깥에선 서로 언성을 높이며 싸우는 가족도 보였다. “아빠. 지금 화만 내고 있잖아. 저 사람들도 확인을 해야 한다니까. 아빠. 아빠.” 엄마는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아들과 딸은 이성을 잃은 듯한 아빠의 어깨를 붙잡았다. 아들은 울음에 찬 목소리로 “제발. 우린 아빠 사랑한다고”라고 말했다.
그 어떤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이들도 보였다. 20대로 보이는 한 여성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빨간 눈으로, 아무 말 없이 앞만 바라봤다. 주변의 고성과 통곡, 실신하는 모습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듯 그는 허공만 응시했다. 옆에 나란히 웅크려 앉은 젊은 남성이 여성의 등을 쓰다듬었다.
숨어서 우는 이도 있었다. 40대쯤으로 보이는 한 여성은 무안국제공항 2층 맨 끝에 위치한 화장실 칸에서 나오지 못한 채, 스스로도 주체하지 못하는 소리를 냈다. 화장실 칸에서 나온 뒤에도 한동안 그는 그 칸 앞에 주저앉아 일어서지 못했다.
공항 내부 신원확인 게시판에는 이미 지문으로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들의 이름과 생년월일이 게시됐다. 연령대가 다양해, 사고 여객기인 타이 방콕발 제주항공 7C2216편의 승객 다수가 가족 여행을 다녀오는 길이었음을 짐작게 했다. 80대 노부부는 일가족 9명이 함께 여행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3살 난 남자아이는 기아 타이거즈 홍보팀 직원인 아빠, 엄마와 생애 첫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교육부는 참사로 초·중·고등학생 11명이 희생됐다고 발표했다.
세상을 떠난 어린아이들도 있지만, 세상에 남은 어린아이들도 있다. 박한신 유가족협의체 대표는 “여기 형제자매도 있지만, 한순간에 부모를 잃은 자식들도 많다. 한순간 소년소녀가장이 됐고, 이 사람들이 앞으로 살아가야 되는데 보상을 받으려면 진상규명을 명확하게 해야 되지 않겠나. 인재냐 자연재해냐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인데 (현장을 방문한)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끝까지 좀 봐달라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한국공항공사 등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
전남경찰청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2025년 1월2일 한국공항공사 무안국제공항 담당 부서 사무실과 관제탑 등을 대상으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고, 압수수색 대상에는 부산지방항공청 무안출장소, 제주항공 서울사무소 등이 포함됐다.
또 같은 날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는 제주항공 7C2216편 비행기록장치(FDR)를 미국 워싱턴 교통안전위원회(NTSB) 본부로 보내 분석하기로 합의했다. 장치(FDR)의 커넥터(전원공급 및 데이터 전송 기능 부품) 분실로 국내에선 자료 추출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교통부·전남경찰청·전남도청 등 공무원들은 잦은 브리핑을 통해 신원확인·시신인도·현장확인 등 절차와 관련한 유가족의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했지만, 그 과정이 매끄럽진 않았다. 참사 나흘째인 2025년 1월1일 아침 179명의 신원확인이 모두 완료되기 전까지, 유가족들은 매시간 신원확인 명단에서 ‘가족의 이름’ 한 줄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마음을 졸여야 했다. 특히 지문으로 신원확인이 불가한 미성년 희생자들의 유가족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디엔에이(DNA) 확인 결과가 나오기까지 혹여 아이를 찾지 못할까 불안해했다.
“저희는 할머니와 아빠, 그리고 아이 셋이 갔다가, 할머니와 아빠는 먼저 신원이 확인됐고 아이의 신원(확인)을 기다리고 있는 유족입니다. 아이다보니 (지문으로 신원확인이 되지 않아 디엔에이 확인이 필요한) 32명 안에 있었는데, 오늘 새벽 최종 5명이 미확인 상태라고 안내를 받았지만 저희 아이는 (양쪽) 명단 안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냥 ‘누락됐습니다’라고 말하기엔 저희는 이 (아이 이름) ‘한 줄’만을 기다리는 유족입니다.”
참사 사흘째인 2024년 12월31일 오전 10시쯤, 무안국제공항 2층 대합실에서 한 유가족이 떨리는 목소리로 마이크를 잡고 국토부와 경찰에 호소한 말이다. 단순 명단 오류로 확인돼 국토부가 사과하고 상황이 일단락됐으나, 놀란 유가족들은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참사 나흘째인 2025년 1월1일 브리핑에선 가족의 시신 일부라도 수습에 속도를 내줄 것을 정부에 호소하는 유가족도 있었다. 안경을 낀 한 유가족 남성은 마이크를 잡고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었다. “어렸을 때 누나를 한 번 잃고, 이번에 두 번째 누나를 잃었어요. 보고 싶어요. 사랑하는 누나 너무 보고 싶어요. 트라우마 걸려도 상관없어요. 제가 죽어도 좋아요. 그냥 손가락 말이에요. 제발 누나 손을 만져보고 싶어요. 정부도 진짜 힘든 거 알아요. 다 이해돼요. 그런데 제발 빨리 부탁드릴게요.”
국토부 “로컬라이저 규정에 맞다” 성급한 발표
주검 냉동고 문제를 놓고 유족대표단의 비판이 있기도 했다. 국토부 등 정부당국은 참사 다음날인 12월30일 오후 2시까지 냉동고를 설치해 오후 4시에 모든 희생자를 옮기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이날 늦은 밤에야 냉동고 설치가 완료됐고 이후 희생자 주검을 옮겼다. 유가족들은 공항 격납고에 마련된 임시안치소로 보내진 주검들이 부패될까봐 우려했다.
무안국제공항에 유가족 법률상담을 돕고자 온 황필규 대한변협 생명존중재난안전특위 위원장은 “이태원 참사 때 (주검 냉동고 설치와 관련해) 똑같은 상황이 있었는데도” 시간 예측이 틀리거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지 못한 정부의 문제를 지적했다. 특히 이제 막 제주항공 참사의 원인 조사가 시작된 상황에서, 국토부가 12월31일 성급하게 ‘(여객기와 부딪혀 폭파된 방위각 시설 로컬라이저에 대해) 종단안전구역 밖에 있어 국내 규정에 맞게 설치됐다’고 발표한 것에 관해서도 비판했다. “(정부는) 보기에 따라 최선을 다하고 있고, 또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얘길 하죠. 그런데 유가족 입장에선 (정부가) ‘우리는 계획대로 했다’는 걸 당당하게 얘기하면 상처받을 수 있거든요. 어쨌거나 이제 막 전문기구가 조사를 시작했고, 검찰도 조사를 해야 하는 시점이니까요.”(황필규 ‘공감’ 공익변호사)
12월31일 오전 김이배 제주항공 대표는 유가족들과 만나 “사죄의 마음으로 섰지만 무슨 말씀을 드리겠나. 죄송하다”며 “뭐라고 말씀드려도 믿음이 가지 않을 것이다. 왜 모르겠나.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앞으로 진행되는 과정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가족이 장례절차와 관련해 “납골당 1년 보장, 5년 보장을 얘기할 것이 아니라 평생 보장으로 합의하고 갈” 수 있는지에 대해 묻자 김 대표는 “디테일을 몰라서 어디까지 약속되는지 말씀드리기에 애로사항이 있다”며 확답을 피했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발생 닷새째인 2025년 1월2일엔 희생자의 첫 발인이 치러졌다. 제주항공 참사를 보도하는 뉴스 수는 줄어가고 있지만, 유가족과 현장에 투입된 소방관들의 충격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
전남 지역 소방관인 박성민(가명)씨는 이번 제주항공 참사 현장에 참사 당일인 12월29일 오전 11시쯤 후발대로 투입됐다. 멀리서 봤을 때 “이미 현장이 대부분 정리된 줄”로 생각했는데,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갈수록 “곳곳에 참혹한 현장이 널려 모두 정리되려면 긴 시간이 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전한 주검이 아닌 희생자들의 모습에, 세월호 참사 때 투입됐던 기억이 또다시 떠올랐다.
소방대원 “참혹한 현장, 트라우마로 밥 먹기도 힘들어”
“세월호 때보다 더 참혹한 현장이었어요. 그날 새벽 1시까지 작업하다 잠깐 눈을 붙이고 다시 작업을 시작했어요. 중간중간 교대하긴 했지만, 트라우마 때문에 대원들이 점심때 나온 비빔밥도 먹기 힘들어했고…, 잠깐 눈을 붙일 때도 현장이 생각난 듯 놀라 깨어난 대원도 있었고요.”(소방대원 박성민씨)
참사 사흘째인 12월31일 밤 무안국제공항 2층 엘리베이터 앞에 익숙한 수염의 나이 든 남성이 보였다. 박스를 깔고 힘없이 앉아 있는 남성 앞에는 자원봉사자들이 배급해준 멀건 된장국 한 그릇과 반쯤 비워진 플라스틱 소주병이 놓여 있었다. 참사 첫날 공항 1층 출입구에서 만난, 자신의 직업이 ‘화가’라고 답한 이였다.
수염과 모자를 보고서야 겨우 그가 누군지 인식할 수 있을 만큼 그의 얼굴빛은 2일 만에 눈에 띄게 변해 있었다. 얼굴이 붉다 못해 검어진 이 남성은 엘리베이터 쪽으로 기대앉아 옆 사람에게 딸에 대해 읊조리면서, 또다시 소주병을 비우고 있었다.
무안(전남)=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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