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목 ‘1인 4역’ 부담에도 경제팀 굳건한 이유
이헌재·윤증현·진동수·김석동 등 경제 관료 멘토단 ‘버팀목’
(시사저널=유길연 시사저널e. 기자)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행' 체제가 가동되면서 1인 4역을 감당해야 하는 최상목 권한대행의 부담도 커졌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의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두 역할을 모두 맡고 있다. 최 대행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국무위원 서열 3위다. 이와 함께 기획재정부 장관 역할도 계속해야 하며, 중대본부장직도 수행하고 있다.
현재 최 대행은 큰 정치적 부담을 지고 있다. 탄핵 정국에서 강공 드라이브를 펼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과 윤 대통령 수사 국면에서 날이 바짝 서 있는 국민의힘 사이에 끼여 있다. 2024년 12월31일 이른바 '쌍특검'에 대한 재의요구권을 행사하고 헌법재판관 후보 3인 중 2인을 임명한 것부터 그의 처지를 대변한다. 당장 정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대외신인도를 유지하기 위한 조치였다.
'F4 팀워크' 앞세워 리스크 관리 최선
국정을 책임진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경제 리스크를 세심히 관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 총리의 탄핵으로 인해 정국이 다시 불안정해지자 환율이 급등하는 등 시장이 출렁이고 있기 때문이다. 2024년 마지막 거래일인 12월30일 원-달러 환율은 1472.5원을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이 이어지던 2009년 3월13일 이후 최고치를 경신했다. 시장에선 1500원 선을 돌파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찍은 건 1997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등 단 두 번밖에 없다. 같은 날 코스피도 2399.49포인트로 마감했다. 코스피는 2024년 12월 2.3% 내리면서 그해 7월 이후 6개월 연속 하락 마감했다. 이로써 지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6년 만에 최장 하락 기록을 세우게 됐다.
그럼에도 현재 대내외적 불확실성에 비해 경제가 크게 출렁이진 않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우선 경제·금융 수장을 일컫는 Finance4(F4)를 통한 관리가 유기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총리 탄핵 이후 최 대행이 F4 수장 역할을 할 수 없게 되자 그 자리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빠르게 넘겨받았다. 이 총재는 지난해 12월30일 거시경제금융 현안 간담회를 주재해 최근 금융·외환 시장 동향을 점검했다.
최 대행과 이 총재는 계엄으로 인한 위기 상황에서 끈끈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최 대행은 계엄이 선포된 직후 F4 회의를 개최하고 사퇴하려고 했지만 이를 막은 것이 이 총재였다. 이 총재는 경제 사령탑이 있어야 혼란을 수습할 수 있다며 최 대행을 만류했다. 최 대행은 이를 받아들이고 경제팀 수장으로 버티면서 파국을 피할 수 있었다.
최 대행과 이 총재는 계엄 선포 후 매일 F4 회의를 개최했다. 두 인물 외에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도 시장 안정화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김 위원장은 5대 금융지주 회장을 만나 기업들이 정치적 불안정 속에서 위축되지 않도록 자금을 충분히 운용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 원장은 금감원의 24시간 비상대응체계를 가동했다. 더구나 최 대행은 계엄선포 직전 열린 국무회의에서 비상계엄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적 논란에 최 대행이 깊게 휘말리지 않은 덕분에 경제팀은 흔들리지 않고 상황을 수습할 수 있었다.
더불어 기획재정부 출신들이 정부 요직에 있는 것이 위기 대응에 유리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기재부 수장인 최 대행과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물론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방기선 국무조정실장도 기재부 출신이다. 위기 대응에서 경제 부처뿐만 아니라 정부 전반이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기반이 된 것이다.
특히 최 대행 주변에는 위기 관리 면에서 경륜을 쌓은 멘토들이 존재한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윤증현 전 기재부 장관, 진동수·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등 진영을 가리지 않고 역대 정부에서 경제를 책임져온 고위 관료들이 보이지 않게 최 대행을 돕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자체로 최 대행의 귀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기재부 출신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소수의 관료가 정부 요직을 장악해 국가 운영을 좌우한다는 이유로, 이른바 '모피아'로 불리며 비판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기재부 네트워크가 위기 상황에서 구원투수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행정고시 선후배 사이로 끈끈하게 이뤄진 기재부 출신들의 인맥은 빠른 의사결정과 시행이 필요한 상황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기재부 출신 인사들은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뛰어난 위기 대응 능력을 갖추게 됐다. 최고 엘리트 선배들에게 도제식 교육을 받는 기재부 출신들은 위기가 발생하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감각적으로 알고 있다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당시 우리 정부가 전 세계 국가들 가운데 가장 빠르게 경제 회복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기재부 출신들의 역할 때문이었다.
이번 계엄 사태에서도 기재부가 중심이 된 경제팀의 발 빠른 대처로 시장이 다소 안정을 찾았다는 분석이 많다. 경제팀이 계엄 직후 가장 우려한 점은 대외신인도 하락이었다. 외환위기 당시 국가경제가 부도로 이어진 결정적 계기는 국제신용평가사들의 신용등급 강등이었다. 이에 경제팀은 우선 시장에 유동성을 무제한 공급하는 긴급 조치를 취했으며, 50조원 규모의 증권·채권시장안정화펀드도 가동 준비에 들어갔다. 또 국제신용평가사, 해외투자자 등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불안감을 해소하려 노력했다. 그 결과 한 총리가 탄핵되기 전까진 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았다.
트럼프 리스크 대응은 역부족…정치 안정 '급선무'
일단 헌법재판관 임명을 둘러싼 첨예한 대립은 소강 상태로 전환됐지만 윤 대통령의 구속, 탄핵심판 등 정치 불안 요소는 여전하다. 불안이 장기화하면 경제팀의 대응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의견이다. 정국 불안정이 장기화하면 국제신용평가사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강등할 가능성도 있다.
더구나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대한 대응도 현 경제팀으론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한국 경제에 트럼프 정부는 '회색 코뿔소'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은 전 세계 국가에서 미국으로 수입되는 물품에 일괄적으로 10% 내지 2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2023년 전체 수출 가운데 대미 수출 비중이 18%로 1위를 기록한 한국 경제에 트럼프 정부 등장은 '위기'와 다름없다. 한국은 작년에 미국과의 무역에서 거둔 흑자도 399억 달러로 무역 상대국 가운데 가장 컸다.
미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 한국석좌는 최근 온라인 대담에서 "트럼프 당선인의 전직 참모들은 트럼프의 첫 100일이 아니라 첫 100시간에 한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많은 일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지도자 간의 개인적 유대는 매우 중요한데 한국에는 이 일을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런 사태가 오래 지속될 수 있고 여름이 지나도록 계속되거나 더 길어질 수 있다는 게 매우 나쁜 시나리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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