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식과 상처만 남긴 인간의 섬뜩한 전쟁들 [전쟁과 문학]

이정현 평론가 2025. 1. 3.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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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전쟁과 문학 49편
재미교포 2세 작가 이창래
「생존자 The Surrendered」
전쟁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무너지는 섬뜩한 과정 묘사
비극 절대 되돌리기 어려워
자명한 진실 대변하는 결말

비극은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되돌릴 수 없다. 비극의 뒤편에서 행운이 싹트는 건 극히 드문 일이다. 소설가 이창래의 「생존자 The Surrendered」는 한국전쟁의 비극을 다룬 작품이다. 그가 선택한 이 소설의 어두운 결말은 '비극은 비극'이란 자명한 진실을 대변한다.

전쟁으로 서로의 생명을 노리는 건 무의미한 짓이다.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대부분 죄의식에 시달린다. 타인의 죽음을 막지 못한 사실을 자책하다가 끝내 스스로 죽음을 택하기도 한다. 홀로코스트를 증언하는 글을 쓰다가 자살한 작가 빅터 프랭클(1905~ 1997년)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재미교포 2세 작가 이창래(1965년~)의 「생존자 The Surrendered(알에이치코리아·2013년)」는 전쟁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무너지는 과정을 섬뜩하게 응시한 소설이다. 「생존자」의 세 주인공(고아 소녀 '준', 미군 병사 '헥터', 목사의 아내 '실비')은 모두 가족을 잃은 고통을 떨치지 못하고 자신을 학대한다. 소설이 진행될수록 그들의 고통은 점차 증폭된다.

준은 1·4 후퇴로 피난 가는 길에 가족을 모두 잃고 어린 동생과 단둘이 남는다. 그녀는 동생과 함께 남쪽으로 향하는 기차의 지붕에 올라탄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동생이 열차 지붕에서 떨어진다. 준은 다리가 절단돼 피를 쏟는 동생을 남겨두고 홀로 기차에 올라 겨우 목숨을 건진다. 고아원에 수용된 준은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은 채 죄의식에 시달린다.

작가는 아버지에게서 이 소설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창래는 예일대 재학 시절 아버지로부터 한국전쟁 때 피난 기차 지붕에서 떨어져 죽은 동생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작가는 자신이 5살 때 떠난 한국에서 벌어졌던 전쟁과 형제를 잃은 아버지의 상처를 상상하면서 이 소설을 구상했다. 아버지의 회상은 소설 1장에서 동생을 등지고 기차를 향해 달리는 준의 모습으로 아프게 재현된다.

선천성 수족 기형을 앓는 아버지와 함께 살던 '헥터'는 어느 날 술을 마시는 아버지를 남겨두고 여자와 밤을 보낸다. 불운하게도 그날 밤 아버지가 실족사하자 헥터는 그것을 자기 탓이라고 여긴다. 헥터는 죄의식에서 벗어나고자 자원입대하고, 그의 부대는 1951년 봄 한국으로 파병된다.

전장戰場은 도피처가 아닌 새로운 지옥이었다. 참혹한 전투를 거치면서 헥터는 전쟁에 환멸을 느낀다. 중국군과 사투를 벌이면서 헥터의 부대원들은 혹독한 피해를 입는다.

헥터는 중국군 포로를 사살하는 문제로 동료와 갈등을 빚다가 '전사자 처리반'에 배속된다. 살인을 하는 것보다 시체를 정리하는 것이 더 낫다고 여긴 헥터는 최선을 다해 시신들을 수습한다. 헥터는 묵묵히 포탄에 분해된 시신을 수습하고 꿰맨다. 그에게는 곧 '꼼꼼한 저승사자'라는 별명이 붙는다. 전쟁이 끝난 후 한국에 잔류하기로 결정한 그는 고아원에서 일하게 된다.

고아원을 운영하는 미국 목사 테너의 아내 '실비'도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기억이 있다. 1934년, 실비는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중국 만주로 이주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중·일 전쟁이 발발한다. 만주를 점령한 일본군은 교회와 성당에 숨은 저항세력을 색출하기 시작한다.

일본군은 실비의 부모와 애인을 그녀가 보는 앞에서 잔혹하게 살해한다. 홀로 남은 실비는 나이 많은 테너 목사에게 의존하다가 결혼한다. 실비는 테너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단지 부모를 대신할 보호자가 필요했다. 중국이 적화통일되자 테너 목사는 한국으로 이주했고,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 고아원을 설립한다.

고아원에서 만난 세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면서도 기묘한 갈등을 겪는다. 준은 자신에게 친절한 실비에게 필사적으로 의존한다. 그녀는 실비와 테너 목사의 양녀로 입적해 미국으로 이주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준의 계획은 헥터로 인해 어긋난다. 낯선 땅에서 외로움에 시달리던 실비와 헥터는 곧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는 관계가 된다. 헥터와 실비가 함께 있는 것을 목격한 준은 격렬한 반감을 느낀다. 부모와 첫사랑이 살해당하는 것을 목격한 실비, 전장에서 숱한 시신을 처리했던 헥터에게 인간의 육신은 '쾌락을 느끼는 지방덩어리'에 불과했다.

계획이 좌절돼 절망한 준은 충동적으로 고아원에 불을 지른다. 실비는 준이 저지른 화재로 사망한다. 준은 헥터의 도움으로 미국에 정착하지만, 평생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실비가 늘 갖고 다니는 앙리 뒤낭(1828~1910년)의 책 「솔페리노의 회상」은 이 소설의 주제를 암시한다. 1859년 프랑스군과 오스트리아군은 이탈리아 솔페리노에서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전투가 끝난 후 솔페리노 벌판에는 4만명이 넘는 시신이 방치됐다. 엄청난 수의 시신을 수습할 방도를 찾지 못한 현지인들은 시신을 집단으로 매장했고, 유골은 훗날 솔페리노 교회에 안치됐다. 앙리 뒤낭은 이 전투의 참상을 보고 전시 부상자 구호를 위한 '국제적십자위원회'를 창시했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재회한 준과 헥터는 솔페리노로 향한다. 교회의 유골함 앞에서 준과 헥터는 "저곳이 우리의 자리"라고 말한다. 이름도 모르는 자들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비로소 두 사람은 고통스러운 기억과 화해한다.

한국전쟁 기간 동생을 안고 있는 소녀. [사진 | 유엔 포토]

하지만 어떤 노력으로도 그들이 겪은 비극은 결코 되돌릴 수 없다. 이 소설의 어두운 결말은 자명한 진실을 대변한다. 전쟁으로 인간이 서로 죽이려고 애쓰는 것은 무의미한 짓이다. 모든 인간은 이미 죽어가고 있으므로. 인간이란 단지 소멸을 향해 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소설은 끝난다.

이 소설의 영문 제목은 '항복한 자 The Surrendered'다. 그런데 번역 과정에서 '생존자'로 제목이 바뀌었다. 원제를 강조하자면, '인간은 죽음(시간)에 패배한 존재'라는 의미로 해석되고, 번역한 제목은 말 그대로 '끝까지 살아남으려는 의지'로 해석된다.

소설은 두 제목이 지닌 '죽음'과 '생존'의 의미를 모두 포용한다. 죄의식과 고통을 이토록 사실적으로 다룬 작품은 정말 드물다. 머지않아 이 소설은 한국전쟁을 다룬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문학사에 기록될 것이다.

이정현 평론가 | 더스쿠프
21cbac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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