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원인규명, 책임 따진다' 여객기 참사수사 방향·과제는
조종불능에 비상착륙장치 고장…기체정비 문제도 조사
동체착륙 막아선 콘크리트 둔덕 위법성·책임소재 '쟁점'
[무안=뉴시스]변재훈 박기웅 기자 =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의 사고 발생 원인과 책임을 규명하기 위한 경찰 수사가 시작됐다.
수사는 큰 틀에서 기체의 운행, 정비, 시설 등 세 갈래로 나눠 제기된 여러 의혹들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를 토대로 밝혀낸 사고 경위에 과실이나 위법행위가 있었는지 살펴 직·간접적 사고 책임을 가려낸다.
조종사-관제사 교신 기록 확보, 분·초 단위 재구성
우선 경찰은 사고 당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사실관계부터 파악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경찰은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관제사-조종사간 교신기록을 토대로 한 시간대별 사고 과정부터 살핀다.
사고 당일 오전 8시54분부터 5분 사이 ▲관제사 첫 착륙허가(01방향 활주로) ▲'조류 회피 주의' ▲'조류 충돌' 따른 조종사 "메이데이" 선언(긴급구난 신호) ▲재착륙 시도(복행·기체가 다시 떠오름) 등의 순으로 급박한 비상 상황이 이어졌다.
관제사가 9시1분 반대 방향(19방향) 활주로 착륙을 허가하자 사고기는 방향을 180도 바꿨다. 관제사는 공항소방대 출동을 요청해 지상에서 비상 착륙에 대비하면서 조종사에게는 상공에서 동체착륙을 준비하도록 지시했다.
재착륙 허가부터 지상에서 비상착륙에 대비하기까지 불과 1분55초(9시1분~9시2분55초)도 안 돼 상공에 더 떠 있지 못하고 기체는 9시2분께 착륙 바퀴(랜딩기어)를 펴지 못한 상태에서 곧장 착륙을 시도했다.
이후 1분동안 기체는 양쪽 날개에 달린 엔진과 기체 꼬리쪽 동체가 활주로에 맞닿아 미끄러지며 '로컬라이저'(착륙 유도시설 일종) 지지대인 2m 높이 흙으로 감싼 콘크리트 둔덕을 충돌, 폭발했다.
경찰은 긴박했던 일련의 사고 전개 과정을 분·초 단위로 재구성하는데 집중한다.
이를 위해 관제기관(항공청)과 사고기 조종사 간 교신·지상에 기록된 항적 정보, 두 차례 착륙 과정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보하는 대로 분석한다. 교신을 통한 관제사-조종사간 의사소통도 원활치 않은 이유가 뭔지도 수사 사안이다.
또 착륙 직전 오른쪽 날개 쪽 엔진에서 폭발음과 함께 불길이 일었던 장면이 촬영된 영상도 수사에 참조한다.
지상에서 피해 최소화를 위해 대비할 시간을 벌만큼 기체가 날 수 없었던 이유를 다각적으로 조사한다. 기체 결함, 동시다발 조류충돌 가능성, 조류충돌 여파로 인한 랜딩기어 조작 불능 등 여러 가설을 확보한 증거와 교차 검증한다.
이 밖에 이착륙 과정 중 큰 돌발 위험 요인인 조류 충돌을 방지할 인력과 시설물이 어떻게 운용됐는지도 수사 대상이다.
'총체적 기능 불능' 기체 정비 문제였나
때문에 경찰은 사고의 외부요인인 조류 충돌 말고도, 기체 자체의 문제(내인설)도 두루 수사한다.
사고 당시 활주로에 동체가 맞닿은 직후부터 멈춰서기까지 제동 거리를 줄여줄 감속 장치(플랩 flap)도 제 역할을 못 했다. 일각선 활주로 접지 이후 지면과 동체 하부 사이 마찰력을 높여줄 장치도 사고 당시 불능 상태였다고도 주장한다.
동체착륙 시 최소한의 피해만 날 수 있도록 하는 '최후의 안전장치'가 사실상 모두 무용지물이 된 만큼, 유압계통 이상이나 전원장치 '셧다운' 의혹도 나왔다.
특히 경찰은 과거 사고 이력 등을 토대로 운항사 측의 정비·점검 불량 가능성에 수사력을 모은다. 기체의 과거 사고 이력 관련 자료(3년 전 이륙 중 기체 꼬리 쪽이 활주로에 닿는 사고), 후속 정비·점검 현황 자료도 경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할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과실 또는 정비 불량·소홀이 확인되면 운항사인 제주항공 임직원 입건이 불가피하다. 이미 제주항공 대표를 비롯한 임직원 2명은 '중요 참고인' 신분으로 출국금지 됐다.
기체가 생산된 지 15년밖에 안 된 만큼, 기체 자체 결함 여부도 수사가 짚고 가야 할 대목으로 보인다.
동체착륙 막아선 '콘크리트 둔덕'…적정성 조사
국내외 전문가 다수는 탑승자 181명 중 단 2명 만이 생존하는 국내 최악의 항공사고가 발생한 배경으로 활주로 끝단에서 251m 떨어진 곳에 있는 콘크리트 둔덕이 결정적이었다고 지적한다.
활주로 이탈 동체착륙 사고는 종종 있지만, 활주로 바깥쪽 장애물이 기체에 결정적 파손만 가하지 않고 조종사가 비상 매뉴얼대로만 이행하면 사망자는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흙으로만 쌓은 것처럼 보이는 둔덕 안에는 '로컬라이저'를 지탱하는 콘크리트 구조물(콘크리트 기둥 19개)이 있다.
공항공사는 2021년 현대화사업을 통해 활주로(19방향) 둔덕 보강공사에 무려 콘크리트 127t을 추가로 부었다. 2023년 개량 사업에서는 대형 콘크리트 상판(길이 40m·폭 4.4m·두께 30㎝)까지 증설한 뒤 로컬라이저 안테나를 상판 위에 심었다.
국토부는 무안공항 로컬라이저 위치가 '이착륙장 설치 기준'에는 부합하지만, 설계 세부지침 규정(2022년 시행)과는 어긋난다는 문제제기에 대해 명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토부는 전문가 견해, 해외 사례를 재검토키로 했다. 사고가 난 콘크리트 둔덕이 규정에 맞는지, 위반했다면 어떤 규정에 어긋나는지에 따라 수사대상도 달라질 전망이다.
현 상태 둔덕이 만들어지기까지 규정 위반은 없는지, 최초 설계·설치나 두 차례의 보강 공사에 불법은 없었는지 등 폭넓은 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수사 상황에 따라선 국토부와 항공청, 공항공사, 시공사 사이에 '네 탓 공방'과 대대적인 수사도 예상된다.
엿새 전인 지난해 12월29일 오전 9시3분께 무안국제공항 활주로에서 방콕발 제주항공 여객기가 동체만으로 비상 착륙하려다 활주로 밖 '로컬라이저'를 정면충돌하고 폭발했다. 사고로 탑승자 181명(승무원 6명·승객 175명) 중 179명이 숨졌다.
이번 참사는 1993년 7월26일 아시아나기 해남 추락 사고(66명 사망·44명 부상)보다도 사상자가 많아 국내에서 발생한 항공기 사고 중 가장 인명피해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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