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저 요새화, 지지층 총동원령…헌정사 첫 대통령 강제 수사 후폭풍
공수처 “진입 막으면 체포” 경고…與는 ‘판사 탄핵’ 카드 꺼내고 尹에 힘 싣기
(시사저널=이혜영 기자)
'불응, 불응, 불응'. 공정과 상식을 기반으로 법치(法治)주의를 바로 세우겠다던 윤석열 대통령이 수사와 사법 '불복'을 천명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출석 요구를 거부하고 체포 시도를 모두 불법으로 규정한 '내란 우두머리(수괴) 피의자' 윤 대통령은 헌정사 첫 강제 수사 대상에 오른 현직 대통령이 됐다.
수사 칼끝이 턱밑까지 치고 들어오자 꺼내든 카드는 '여론전'이다. 지지자들을 향해 "끝까지 싸우겠다"는 메시지를 낸 윤 대통령은 한남동 관저를 요새화하며 12·3 비상계엄 사태에 이어 다시 한번 국민을 방패로 세웠다. '법 수호의 상징'이던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법에 맞서는' 피의자로 추락한 가운데 '내란 특검' 출범과 대통령 체포·구속, 탄핵심판을 둘러싸고 치열한 수싸움이 전개될 전망이다.
옥죄는 尹 체포 올가미…與 "판사 탄핵"
경찰·국방부와 공조수사본부를 구성한 공수처는 윤 대통령에 대한 강제 수사 방아쇠를 당겼다. 윤 대통령은 2024년 12월18·25·29일 세 차례에 걸친 공수처의 출석 요구에 모두 응하지 않았다. 공수처는 12월30일 오전 0시를 기해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내란 수괴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체포영장을 청구했다. 현직 대통령이 내란 혐의 피의자 신분이 된 것, 거듭된 출석 요구에 불응하다 체포 대상이 된 것 모두 헌정사 초유의 일이다. 법원이 장고 끝에 영장을 발부하면서 윤 대통령 앞에 붙은 '초유'라는 불명예는 하나 더 추가됐다.
법원으로부터 윤 대통령에 대한 신병 확보와 동시에 내란죄 수사 정당성을 부여받았다고 판단한 오동운 공수처장은 올해 1월1일 서울 한남동 관저 앞 바리케이드 설치, 철문 폐쇄 등 진입 저지 행위를 모두 "공무집행 방해로 간주하고 입건하겠다"며 체포 가능성을 경고했다.
현직 대통령 가운데 체포영장이 청구·발부된 것 자체가 처음이지만, 전직 대통령까지 범위를 넓히더라도 '불응'으로 일관한 전례는 없다. 노태우·전두환·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기 만료 또는 탄핵 이후 구속됐는데, 이들 모두 법원에서 발부된 영장 집행에는 저항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내란 혐의를 받았던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우 검찰의 출석 요구에 불응하며 '골목 성명'을 발표한 뒤 경상남도 합천으로 귀향했다가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반발 없이 집행에 응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 변호인단은 법원의 체포영장 발부를 불법행위로 규정하며 강력 반발했다. 공수처에 내란죄 수사권이 없다는 기존 입장에 더해 이순형 서울서부지법 판사가 체포·수색영장을 발부하면서 형사소송법의 예외를 거론한 것은 명백한 '월권'이라는 이유에서다. 윤 대통령의 변호인인 윤갑근 변호사는 "판사에게 그런 권한은 없다"며 헌재에 권한쟁의심판 청구 및 효력정지 가처분을 신청하고 법원에도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윤 변호사는 대법원에 이 부장판사의 결정에 대한 진상조사와 당사자 직무배제 및 징계도 요구했다.
변호인이 문제 삼는 것은 윤 대통령 체포를 위한 영장을 집행할 때 '형사소송법 제110조와 111조 적용은 예외로 한다'는 문구를 적시한 부분이다. 이들 조항은 군사·공무상 기밀을 요하는 장소의 경우 책임자 승낙 없이는 압수나 수색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강제구인을 위한 수색영장 집행은 증거물 확보를 위한 압수수색과 달리 형소법 110·111조를 적용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경호처가 관저 역시 보안시설인 점을 이유로 수색을 거부하며 영장 집행을 모두 막아설 가능성이 거론되자 법원이 이를 선제 차단하는 차원에서 별도로 기재한 것으로 분석된다.
법조계에서는 윤 대통령 측의 이의제기가 수용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군사상·공무상 기밀 유지가 필요한 경우 물품·기록 등에 대한 압수는 거부할 수 있지만, 개인의 신병 확보를 위한 관저 수색은 영장이 발부된 이상 거부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며 "경호처가 압수수색 영장을 거부한 전례가 있기 때문에 이를 감안해 적법성 강조 차원에서 수색 영장에 별도의 문구를 명시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윤 대통령 측이 거듭 내란죄 수사와 체포영장 집행을 거부하는 데 대해 "정당한 절차를 거쳐 영장까지 발부됐는데 이조차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은 '시간 벌기'를 위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헌법재판소 연구관을 지낸 노희범 변호사도 "윤 대통령 개인의 신병 확보를 위한 체포영장과 관저 수색영장은 집행 과정에서 군사나 공무상 비밀을 해치는 요소가 없다"며 "영장 발부 판사는 경호처가 수사기관의 피의자 위치 파악을 위한 수색, 그리고 그에 기반한 체포를 압수수색과 동일시해선 안 된다는 의미를 강조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민의힘 의원들은 1월2일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수색 영장에 판사가 예외 조항을 적시하고, 영장이 서울서부지법으로 청구된 데 대해 "편법과 꼼수"라고 직격했다. 이들은 "법원과 공수처는 더불어민주당의 무도한 인민재판식 여론몰이에 동조하는 행태를 즉시 중단해야 한다"며 "형사사법 제도의 붕괴를 불러오는 노골적인 법치 파괴 행위로, 판사는 탄핵감"이라고 성토했다.
판사 출신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도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 과정에서 '적법 절차 원칙'이 파괴됐다며 "판사는 해서는 안 되는 내용을 기재했고, 수사 권한 유무에 다툼이 있는 공수처는 (진보 성향) 우리법연구회 담당 판사를 찾아 영장을 청구했다"고 비판했다.
2017년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 '5명 사망'…긴장 고조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사태 이후 두 차례 대국민 담화를 통해 "법적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다"(12월7일), "탄핵이든 수사든 당당히 맞서겠다"(12월12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자신을 겨냥한 '체포·구속'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자 세 결집에 총력전을 벌이는 양상이다. 윤 대통령은 1월1일 '탄핵·체포 반대'를 외치며 관저 앞에 결집한 지지자들에게 A4 용지 1장 분량의 메시지를 통해 '나를 지켜 달라'는 절박한 호소를 보냈다.
윤 대통령은 "나라 안팎의 주권 침탈 세력과 반국가 세력의 준동으로 대한민국이 위험하다"며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지지자들을 '애국시민'으로 칭한 윤 대통령은 유튜브 생중계로 관저 앞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며 "반드시 승리" "힘을 내자" "감사하고 또 감사" 등의 입장을 전하며 사실상의 총동원령을 내렸다. 대국민 담화 이후 약 한 달 만에 윤 대통령이 직접 메시지를 내보낸 데 주목한 지지자들은 '관저 앞 인간 바리케이드'로 응답했다.
1월2일 한남동 관저 앞은 전운이 감도는 가운데 "윤석열 무죄" "윤석열 구속"을 외치는 찬반 집회가 진행됐다. '계엄 합법, 탄핵 무효'를 부르짖은 윤 대통령 지지자들은 격앙된 분위기 속에 스크럼을 짜고 바닥에 드러누워 체포영장 집행 저지에 나섰고, 경찰이 강제 해산에 나서면서 긴장이 최고조로 치달았다. 밤 늦게까지 진행된 집회 참가 인원은 경찰 비공식 추산 최대 1만3000명에 육박하기도했다.
관저 앞 집회와 시위 규모가 갈수록 커지면서 경찰은 물론 영장을 집행할 공수처도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 지지자들을 가장 먼저 마주할 관저 외곽 담당 경호 인력은 101경비단과 202경비단으로, 이들은 모두 경찰 경호부대다. 공수처가 공조본을 구성한 경찰에 기동대 투입을 요청했기 때문에 외곽에서의 '경찰 vs 경찰' 간 대립보다 시위대와의 충돌이 가장 큰 변수로 꼽힌다.
윤 대통령 측에서는 어떤 형태의 영장이든 공수처가 경찰 기동대의 지원을 받아 집행에 나서는 것 역시 불법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8년 전 악몽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이 나온 당일 이에 격렬 반대하던 60~70대 집회 참가자 4명이 급성 심장 이상 등으로 사망했고, 혼수상태에 빠진 70대 한 명도 한 달 후 목숨을 잃은 전례가 있다. 관저 앞에서 대규모 충돌이 벌어지거나 극심한 혼란, 소요가 벌어질 경우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초비상이 걸린 상태다.
경호처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경호 조치가 이뤄질 것"이라는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윤 대통령 신병 확보의 키를 쥔 박종준 경호처장과 김상훈 차장 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박 처장은 경찰청 차장(치안정감) 출신으로, 지난해 9월 김용현 전 장관의 후임으로 경호처장에 임명됐다. 김 차장은 경호 공무원 출신으로 경호처 내 요직을 거쳤다. 박 처장의 경우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참고인 신분으로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일단 공수처는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에게 각각 '경호처 등이 집행 절차에 협조할 수 있도록 지휘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이들에겐 경호처, 대통령비서실 지휘 권한이 있다. 공문에 대한 별도의 회신은 없었떤 것으로 알려졌다.
"尹, 구속 못 피해…특검 통해 전모 규명해야"
친정인 검찰은 물론 사법부의 판단까지 싸잡아 '불법'이라고 맹폭한 윤 대통령의 벼랑끝 전술에 법조계에서는 탄식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공수처가 밀행성이 보장되는 체포영장 청구 사실을 이례적으로 공개한 것은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 의지를 보이려는 전략적 판단인 동시에 자진해 나오라는 '4차 출석 요구'나 마찬가지였다"며 "그토록 법적 가치를 중시한다면 숨어서 '무죄 호소인'을 할 게 아니라 수사와 재판에 적극적으로 임하면 된다. 정답을 피해 간다는 건 그만큼 자신도, 대응 카드도 없다는 뜻"이라고 일갈했다.
사법부 관계자도 윤 대통령 변호인단의 장외 여론전 화살이 영장 발부 판사를 향하는 데 대해 "상황을 예의주시 하고 있다"며 법관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발언과 행위는 중단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윤 대통령 측이 불복 수단을 총동원하고 있지만 구속과 기소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검찰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김용현 전 국방장관을 구속 기소하면서 '내란 정점'인 윤 대통령이 직접 군과 경찰 지휘부에 '발포' 명령을 내리고 무력을 동원한 국회 강제 해산, 더불어민주당 의원 및 주요 인사 체포 등을 지시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비상계엄에 반대하며 사의를 표명한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이 영장 집행 시도를 모두 '불법'으로 간주하는 데 대해 "체포에 저항해 공무집행방해로 입건되는 최초의 국가원수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류 전 감찰관은 "객관적인 증거와 진술에 의해 입증된 사실관계도 완전히 부인하며 국론을 분열시키려 들고, 소환 서류의 수령 거부 및 수색 불응 등으로 구속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만일 윤 대통령이 체포 후 공수처와 검찰의 구속 수사 기한(20일 이내)을 넘겨 기소되더라도 특검을 통한 내란 전모 및 가담자 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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