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채 발견된 환경운동가… 나비는 범인을 알고 있을까 [세계의 콜드케이스]

김현종 2025. 1. 3.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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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2020년 멕시코 환경운동가 익사 사건
제왕나비 보존 두고 범죄 조직과 충돌
지역 정가 압박 '단속 확대' 끌어냈지만
실종 19일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
살인 정황 수두룩한데도 정부는 '쉬쉬'
편집자주
‘콜드케이스(cold case)’는 오랜 시간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는 범죄사건을 뜻하는 말로, 동명의 미국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금요일 세계 각국의 미제사건과 진실을 쫓는 사람들의 노력을 소개합니다.
멕시코 미초아칸주 오캄포시 엘로사리오의 오야멜 전나무숲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제왕나비 모습. 2019년 오메로 고메스 곤살레스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한 사진이다. SNS 캡처

멕시코 중서부 미초아칸주(州) 오캄포시의 작은 마을 엘로사리오는 매년 1월 축제로 떠들썩해진다. 도보로 약 한 시간이면 둘러보는 이 마을에 몰려드는 전 세계 관광객은 무려 20만 명. 인근 오야멜(oyamel) 전나무숲을 뒤덮는 '제왕나비'를 보기 위해서다. 짙은 주황빛 날개에 검은색 선이 강렬하게 교차하는 이 나비는 겨울을 나기 위해 매년 1월쯤 이 지역으로 향한다.

그러나 제왕나비 보호구역에 종사하는 마을 주민들은 모두 비극적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2000년대 서식지 보존 운동을 주도했던, 과거 전나무숲 벌채에만 의존하던 이 마을을 '제왕나비 보존 및 관광 사업'으로 이끌었던 환경운동가 오메로 고메스 곤살레스가 2020년 의문의 죽음을 당했기 때문이다.

미초아칸 수사 당국은 곤살레스의 죽음을 사고사라고 본다. 그러나 이를 믿는 지역 주민은 없다. 미초아칸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마약 조직과 불법 벌채꾼, 지역 정가의 부정부패가 연루된 '환경운동가 살인 사건'으로 볼 만한 정황이 너무 많아서다. 하지만 사건의 진실은 4년 넘도록 드러나지 않고 있다.


벌목꾼에서 생태지킴이로

멕시코 환경운동가였던 오메로 고메스 곤살레스가 2019년 멕시코 미초아칸주 오캄포시 엘로사리오에 있는 제왕나비 보호구역의 관광 안내판에서 홍보 사진을 찍고 있다. 곤살레스 사회관계망서비스 계정 캡처

1970년생으로 알려진 곤살레스는 오캄포 토박이 생태학자였다. 멕시코주 차핑고대에서 농업경제학을 공부하며 자연과 인간의 공존 가능성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물론 멕시코 정부가 엘로사리오를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한 1980년대까지는 곤살레스도 벌목을 주요 수입으로 삼았다. 그러나 벌채가 제한되면서 천천히 생각을 바꿨다. 매년 1, 2월 마을을 뒤덮는 제왕나비를 잘 보존하면 지역 관광 산업도 육성하고 자연도 보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싹트기 시작했다.

게다가 제왕나비는 신비로운 곤충이었다. 기온 변화에 따라 캐나다 남부부터 멕시코까지 해마다 1만2,000㎞를 오갔다. 길이 약 10㎝에 불과한 나비 수백만 마리가 매년 캐나다 온타리오부터 미국 뉴욕·웨스트버지니아·오클라호마·텍사스, 멕시코 이달고·게레타로 등 강과 숲, 도시, 사막을 거쳐 미초아칸을 왕복한다. 과학자들은 제왕나비의 여정이 1만 년 이상 지속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제왕나비 떼가 멕시코 미초아칸주 오캄포시 엘로사리오 지역의 한 전나무를 뒤덮고 있다. 오메로 고메스 곤살레스가 2019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한 사진이다. SNS 캡처

제왕나비 이동의 종착지이자 월동지인 엘로사리오의 1월 풍경은 장관이다. 오랜 비행에 기진맥진해진 나비들은 전나무에 내려앉아 다시 북쪽으로 올라갈 영양을 축적한다. 이 모습을 두고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2020년 1월 5일 "매일 아침 태양이 비치면 반짝이는 주황색 날개가 구름으로 흩어진다. 숲을 올려보면 하늘보다 나비가 더 많이 보인다. 사방에 날개를 펄럭이는 소리가 고요히 울린다"고 묘사했다. 지역민들은 이 나비에 조상의 영혼이 깃들었다고 믿는다.

2000년대 들어 곤살레스는 제왕나비 보존 및 지역 관광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2008년 엘로사리오의 제왕나비 보호구역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며 국제적 명성도 얻었다. 자연과 지역 주민이 공존하는 이상적 모델을 구현할 조건이 갖춰진 셈이었다. 하지만 이내 상황은 급격히 악화하기 시작했다.


'마약 조직 소굴' 미초아칸

산불 이미지. 기사 내용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진이다. 게티이미지뱅크

2000년대 중후반 미초아칸에 들불처럼 번지던 불법 벌채가 제왕나비 보호구역까지 침범했다. 이 사업은 대개 주 전역을 틀어쥐고 있는 마약 카르텔의 통제를 받고 있었다. 멕시코 불법 벌채가 연간 최대 8억7,900만 달러(약 1조2,937억 원) 이익을 내는 범죄집단의 수익원이었던 탓이다. 남미와 미국을 잇는 주요 마약 루트인 미초아칸에는 최소 14개 범죄 조직이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곤살레스의 제왕나비 보존 계획은 불법 벌채꾼과 충돌하기 시작했다. 범죄 조직들은 나비가 영양분을 얻어야 할 나무를 잘라낸 뒤 밑동을 불태우고 그 자리에 아보카도 농장을 만들었다. 특정 나무 종에만 알을 낳을 정도로 까다로운 제왕나비에게는 치명적인 환경 파괴 행위였다. 게다가 아보카도 농장이 주변 물을 전부 끌어다 쓰면서 지하수 수위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곤살레스는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했다. 자경단을 꾸려서 직접 소총과 몽둥이를 들고 매일 밤 순찰에 나섰다. 국제 범죄조직과 맞서는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숲 지리를 더 잘 안다는 게 자경단의 유일한 강점이었다. 단속 도중 공격받는 일은 없었으나, 물밑에서는 범죄조직의 적개심이 부글부글 끓었을 것이라고 이웃들은 말했다.

멕시코 환경운동가 오메로 고메스 곤살레스(맨 왼쪽)가 실바노 아우레올리스 당시 미초아칸주 주지사와 만나 악수하고 있다. 곤살레스가 2019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한 사진이다. SNS캡처

언론 접촉 및 정치 활동도 대폭 늘렸다. 지역 언론뿐 아니라 서방 유력지 인터뷰에도 적극 나섰다. 제왕나비의 중요성을 설파하며 지방정부에 불법 벌목 단속을 압박하기 위해서였다. "말로만 치안 유지를 약속한다"며 실바노 아우레올리스 전 미초아칸 주지사(2015~2021년 재임)를 거칠게 몰아붙이기도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곤살레스는 호인이 아니었다. 그는 정치적 거래에서 강압적이라는 평판을 들었다"고 전했다. 급기야 곤살레스는 오캄포시장 선거에까지 출마했다.

반짝 효과를 내기는 했다. 지역사회의 관심이 쏟아지자 당국은 단속을 늘렸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범죄조직이 곧장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고, 곤살레스는 오캄포시장 선거에서 낙마했다. 투표일 전날 납치된 뒤 "시장에 당선되면 가족을 모두 살해하겠다"는 협박을 받은 탓이라고 그의 아들 오메로 발렌시아는 지난해 방영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서 말했다. 발렌시아는 "아버지는 항상 창가에 앉아 범죄조직이 들이닥치는지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실종 16일 만에 우물에서 발견

멕시코 환경운동가였던 오메로 고메스 곤살레스가 2019년 멕시코 미초아칸주 오캄포시 엘로사리오에 있는 제왕나비 보호구역에서 홍보 사진을 찍고 있다. 곤살레스 사회관계망서비스 계정 캡처

불길한 예감이 현실화한 것일까. 2020년 1월 13일 곤살레스는 실종됐다. 그날 저녁 시의원 및 미초아칸 지역 정부 인사들과 참석했던 경마장 행사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된 뒤, 돌연 연락이 끊겼다. 불안한 가족은 이튿날 새벽 실종 신고를 했고, 날이 밝자마자 경마장으로 달려갔다. 행사장에 곤살레스의 자동차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무언가 잘못됐다'고 직감했다.

2019년 멕시코에서는 최소 환경운동가 12명이 살해당했다. 곤살레스 역시 살해 위협을 받아 왔다는 점에서, 언제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가족은 수색대를 꾸렸고 지역 주민 300명이 자원했다. 오야멜 전나무숲과 경마장 인근을 낙엽까지 들춰 가며 샅샅이 수색했다. 그러나 곤살레스는 결국 실종 16일 뒤인 그해 1월 29일, 농업용 우물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가족은 즉각 살인 사건 수사를 촉구했다. 수상한 정황은 한둘이 아니었다. 해당 우물은 곤살레스의 실종 장소였던 경마장에서 불과 200m 떨어진 곳에 있었다. 우물에 떨어져 행방불명이 된 것이라면, 당시 촘촘했던 수색망에 포착됐을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 우물을 들여다봤었다"는 주민 증언도 나왔다.

시신이 거의 부패되지 않았던 점도 이상했다. 16일이나 물속에 방치돼 있었다면 시신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곤살레스의 주검은 손에 약간의 주름이 있는 것 외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누군가가 그를 납치·감금했다가 '1월 29일' 직전에 살해한 뒤 우물에 시신을 유기했다고 보는 게 정황상 더 합리적 추론이었다. 부검 결과 시신 후두부에 외상이 발견됐음에도, 지역 검찰은 "우물에 떨어지며 입은 타격"이라며 피살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시신 발견 사흘 후인 2020년 2월 1일에는 '살해 의혹'이 정점을 찍었다. 엘로사리오 제왕나비 보호구역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라울 에르난데스 로메로도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일주일 사이 제왕나비 보호운동가 두 명이 목숨을 잃은 것이 단순 우연일 가능성은 매우 낮았다.

의심은 경마장 행사에 참석했던 시의원들에게 쏟아졌다. 실바노 전 주지사의 측근들이었다. 실바노와 시의원들 모두 범죄조직과의 결탁 의혹을 받고 있었다. 특히 수사 과정에서 시의원 중 한 명이 실종된 곤살레스의 휴대폰과 아이패드를 이유 없이 지니고 있었던 사실이 드러나며 의심은 더 커졌다. 지역 정치권이 범죄조직과 결탁해 '골칫거리'였던 곤살레스를 살해한 게 아니냐는 주장이 봇물처럼 터졌다.

제왕나비가 멕시코 미초아칸주 오캄포시 엘로사리오에 있는 한 전나무에서 쉬고 있다. 오메로 고메스 곤살레스가 2019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한 사진이다. SNS 캡처

멸종위기종 등록된 제왕나비

하지만 지역 검찰은 "곤살레스는 단순 사고로 익사했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로메로에 대해선 지역 경찰이 "살해된 것"이라고 확인했으나, 범인을 잡지는 못했다. 검찰은 시의원을 철저히 조사하라는 유가족 호소도 외면했다. 되레 "자꾸 수사를 문제 삼는 것이 의문스럽다"며 유가족을 수사망에 올릴 수 있다는 협박까지 했다는 게 아들 발렌시아의 증언이다. 가족의 재수사 요구는 줄어들었고, 곤살레스 죽음의 진실은 암흑 속에 묻히게 됐다.

제왕나비도 쇠락에 접어들었다. 멕시코 국가보호구역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겨울철 멕시코의 제왕나비 분포 면적은 약 8,900㎡로, 2023년(2만1,853㎡)의 40%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개체수도 꾸준히 줄었고, 2022년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은 제왕나비를 멸종위기종 적색목록에 등재했다. 곤살레스 사망 이후 국제적 압박 증가로 불법 벌채 확산세가 다소 꺾이긴 했지만, 이는 사실 기후변화 등 더 큰 재난이 들이닥친 결과였다.

유가족은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곤살레스의 형제인 아마도는 2022년 오캄포시장에 당선돼 제왕나비 보존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실바노 전 주지사는 퇴임 후 부패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 2021년 취임한 알프레도 베도야 미초아칸 주지사는 지난해 5월 곤살레스 피살 의혹 재수사를 촉구했다. 유가족은 "곤살레스 죽음의 진실이 밝혀지고 제왕나비가 다시 숲을 가득 채우기를 염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현종 기자 bel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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