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함께 우는 사람들

박정훈 기자 2025. 1. 3.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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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오후 도착한 무안국제공항 현장은 ‘필설(筆舌)로 형언할 수 없다’는 문장 그 자체였다. 평온한 일요일 아침, 가족이 탄 비행기가 폭발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달려온 수백 명의 울음과 비명이 가득했다. “항공기 전체가 전소, 탑승자 전원 사망으로 추정된다”는 소방 당국 발표가 나오자 가족들은 힘없이 고꾸라졌다.

사고기는 지난달 25일 한 여행사에서 띄운 ‘방콕행 크리스마스 전세기’였다. 성탄 연휴를 맞아 가족이나 친구들끼리 여행을 떠난 평범한 우리의 이웃이었다. 위암 완치 기념으로 친구들과 태국 여행길에 오른 50대 여성, 5남매 중 막냇동생으로 언제나 집안의 궂은일을 도맡아 한 50대 부부, 야구단 홍보팀장인 아빠와 엄마 손을 잡고 생애 첫 해외여행길에 올랐다가 참변을 당한 최연소(3세) 희생자의 사연을 들으며 현장 기자들도 눈물을 쏟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활주로 현장엔 승객들의 기내용 캐리어와 가방 수십 개가 대부분 온전한 외형을 유지한 채 한가득 쌓여 있었다. 주인을 잃은 한 쇼핑백엔 태국에서 사온 과자 등 기념품이 빼곡했다. 참사 직전 탑승객 오인경(49)씨는 23세 아들에게 “새가 날개에 껴서” “착륙 못 하는 중” “유언해야 하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어쩐대” “왜 전화가 안 돼”라고 말하는 아들의 답신을 어머니는 끝내 보지 못했다. 엄마와 아들의 대화창은 2024년 12월 29일 오전 9시 3분에 영원히 멈췄다.

1분 전까지 멀쩡히 살아있었고, 당연히 함께 있어야 하는 사랑하던 이들의 충격적인 부재(不在). 179명의 시신이 606편(片)으로 나뉘어 있다는 참혹한 발표에도 유족들은 “내 눈으로 봐야겠다”고 했다. “트라우마가 심각하니 보지 마시라”는 권고도 뿌리쳤다. 사랑이 끊어지는 그 고통에 신음하는 연약한 인간 존재가 바로 우리임을 확인하는 현장이기도 했다.

현장의 소방관·경찰·군인, 공항 직원들과 정부 관계자들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희생자를 수습하고 유족을 위로했다. 한 요원은 “시신이 있는 지점마다 노란 깃발을 꽂았는데, 수없이 나부끼는 깃발에 울었다”고 했다. 출입이 통제된 참사 현장에 들어가겠다는 유족을 만류하는 요원들의 눈시울도 붉었다.

참사 나흘째인 지난 1일, 전국에서 자원봉사자 1500여 명이 몰려왔다. 경기 화성에서 새벽에 차를 몰고 달려온 사람도 있었고 대구에서 곰탕 3000그릇을 차에 싣고 온 사람도 있었다. 한 유명 요리사는 전복죽 700인분을 준비했는데, 인근 요식업 종사자들이 몰려와 재료와 일손을 보탰다. 1000인분을 유족들에게 대접할 수 있었다.

“세계는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한강)라는 질문이 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사람들(로마서 12장 15절)’을 새해 벽두 무안에서 봤다고 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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