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에 빠졌던 소년, 판매 부수 3억 부의 최고수 작가로 금의환향 [스프]

김민표 D콘텐츠 제작위원 2025. 1. 2.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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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만리,성시인문(縱橫萬里-城市人文)] 탄생 100주년을 맞은 김용(金庸)의 고향: 저장성 자싱(嘉興)시 하이닝(海寧) (글 : 한재혁 전 주광저우 총영사)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 길을 가라(讀萬卷書, 行萬里路)'고 하였던가? 장자(莊子)의 큰 새(鵬)는 아홉 개의 만 리(萬里)를 날아올랐다.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가장 많이 쓴 두 자(字) 시어(詩語)는 '만 리(萬里)'였다. 만 리 길은 무한한 상상(想像)의 영역인 동시에 현실이자 생활이었다. 20여 년간 중국 땅 위에서 일하고 살면서 시간과 공간의 들어가고 나옴 중에서 마주했던 같음과 다름을 지역과 사람, 문화로 쪼개고 다듬어 '종횡만리, 성시인문(縱橫萬里 城市人文)'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나누고자 한다.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 무협 소설 애호가들로부터 추앙받는 작가 김용(金庸, 진융) 선생이 2024년으로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1924년 중국 저장성 자싱(嘉興)시에서 태어나 2018년 홍콩에서 94세를 일기로 타계하기까지 김용은 '소오강호(笑傲江湖)', '천룡팔부(天龍八部)', '녹정기(鹿鼎記)', '의천도룡기(倚天屠龍記)', '신조협려(神雕俠侶)' 등 이제는 경전(經典)이 된 중문 무협 소설들을 연이어 내놓으며 중화권 마니아층을 형성하였으며, 그의 작품들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판매 부수로 총 3억 부 이상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80~90년대에는 그의 작품과 동명의 타이틀로 제작된 왕가위(王家衛) 감독의 '동사서독(東邪西毒)'을 비롯한 홍콩 무협 영화들이 임청하(林靑霞), 장국영(張國榮), 주성치(周星馳), 양조위(楊朝偉), 양가휘(梁家輝) 등 최고 출연 배우 라인업으로 홍콩과 중화권은 물론 국내에서도 절찬리에 상영되면서 당시 홍콩 무협 영화 신드롬을 일으켰다. 1986년 '영웅문(英雄門)' 등 우리말로 번역된 그의 작품들이 국내에서도 지속 출간되었다.

영화 동사서독 및 신조협려(신판) 포스터

중국 내에서 그의 소설 작품에 대한 관심은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고 탄생 100년을 전후한 시점에 다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작년 100만 명 이상 방문한 상하이 도서관(上海圖書館)의 경우, 대출 도서 1위를 차지한 <사조영웅전(射雕英雄傳)> 외에 2~6위까지의 인기 대출 도서가 모두 김용 소설 작품이었다. 중국 내 대학에서도 이런 현상이 이어져 2022년 우한대학(武漢大學), 싼샤대학(三峽大學) 등의 도서관 대출 순위 상위 10위의 도서에는 김용의 무협 소설이 3~4권씩 포함되었다고 한다. 사실 그의 작품은 최근 중국에서 웹소설의 장르로 광범위한 인기를 얻고 있는 선협(仙俠), 현환(玄幻) 소설의 원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24년 11월 김용 탄생 100주년 기념 한중 학술회의가 고려대학교에서 중국 저장대학(浙江大學)과 공동 주최로 개최되었다. 세미나는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고점복 교수의 사회로, 유일하게 김용이 지도한 박사학위 수여자인 저장성 사회과학원 루둔지(盧敦基) 연구원의 '김용의 삶과 문학 세계' 관련 주제 발표, 고려대 중어중문학과 조동매 교수의 '김용 작품을 통한 한중 문화 교류' 소개에 이어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김용이 1999년 홍콩의 통속 소설 작가라는 일부의 반대에도 저장대학의 인문대학장을 맡았었고, 고려대 김준엽 전 총장이 과거 저장대 한국연구소 설립에 기여하는 등 고려대와 저장대 간 교류의 연장선상에서 행사가 이루어졌다. 김용 선생과 개인적 인연이 있는 저장대 인문학 교수진이 직접 방한하여 참여한 외에 국내 중문학자, 김용 무협 소설의 열혈 독자층 다수가 참여하여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저장대학(좌)과 김용 탄생 100주년 한중 학술 세미나 포스터(우)

김용이 태어난 곳은 저장대학이 소재한 항저우(杭州)에서 멀지 않은 자싱(嘉興)시의 하이닝(海寧)이라는 곳이다. '하이닝'이라는 명칭은 이 지역이 첸탕강(錢塘江)을 끼고 항저우만(杭州灣)에 연접해 있어 '홍수와 해일로부터의 안녕(海洪寧靜)'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비롯되었다. 일찍이 해안가에 염전이 많고 이를 관리하는 염관을 설치하여 옌관(鹽官)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삼국시대에는 오(吳)나라의 강역이었다.

김용은 자싱시 하이닝의 600년 명문 세가인 차(査) 씨 가문의 22대손으로, 본명은 차량융(査良鏞)이며 김용(金庸, 진융)이란 필명은 본명의 마지막 글자인 용(鏞) 자를 김(金) 자와 용(庸) 자로 해체하여 지었다고 한다. '신조협려(神雕俠侶)' 등 그의 작품을 보면 '물안개 자욱한 호수 위로 오월(吳越)의 소녀들이 배를 타고 연꽃을 따는데, 어디선가 한 가락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저 멀리 하얀 수평선 위로 은은한 달빛이 천천히 다가오는데, 갑자기 바다 위 하얀 파도가 천둥소리를 내며 옥으로 만든 성처럼, 눈 뒤덮인 고갯마루처럼 하늘을 넘어 덮쳐 온다'는 표현들이 나온다. 이는 그가 어려서부터 보아온 고향 자싱시 하이닝의 강과 호수, 즉 강호(江湖)의 풍광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라고 한다.

김용은 어려서부터 엄격한 조부와 부친의 교육 속에서 자랐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8세 때에 당시 상하이 신문에 연재되었던 구밍다오(顧明道)의 초기 무협 소설 '황강여협(荒江女俠)'을 접했고, 중학교 시절 친구들과 함께 학습 참고서를 출판하기도 하고 지도 주임 선생님을 풍자하는 벽보를 써 붙였다가 학교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충칭(重慶)과 상하이(上海)에서의 대학 과정을 거쳐, 상하이 '대공보(大公報)' 신문사에 입사하여 번역 기자로 일한다.

자싱시 전경

1948년 김용은 '대공보'의 홍콩 지사로 발령받게 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는데, 기자로 일하면서 무협 소설을 써서 홍콩 신문에 연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기 무협 소설의 또 다른 대가인 양우생(梁羽生)과는 같은 신문사 같은 팀에서 일하기도 했다. 1959년에는 홍콩 '명보(明報)'를 공동 창간하였고, 소설책을 연이어 발간하면서 홍콩 내 부자의 반열에 올랐다. 타이완 장징궈(蔣經國) 총통과 회담하였고, 문혁 뒤에는 덩샤오핑(鄧小平), 후야오방(胡耀邦), 장쩌민(江澤民) 등 고위 지도자들과 각각 회견하기도 하였으며, 홍콩기본법 기초위원으로 참여하였다. 베이징대학(北京大學), 중산대학(中山大學), 홍콩 중문대학(中文大學),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등의 명예교수를 역임하였고, 고향 바로 옆에 위치한 저장대학(浙江大學)의 요청으로 인문대학 학장이자 박사과정 지도교수를 맡아 홍콩과 항저우를 오가며 학생들을 다년간 지도했다.

중국의 대시인인 쉬즈모(徐志摩)도 같은 자싱시 하이닝 출신으로 김용과는 사촌 형제뻘 관계이며, 얼마 전 타계한 타이완의 저명 여성 소설가 경요(瓊瑤, 충야오) 역시 김용의 인척이다. 김용은 성공한 작가이자 교육자, 언론인이자 기업가, 정치 인물이기도 하다. 2018년 김용이 타계하자 시진핑(習近平) 주석을 비롯한 중국 고위 인사들과 본토 및 홍콩, 타이완 등 각지의 각계각층과 팬들이 그를 애도하였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김민표 D콘텐츠 제작위원 minpyo@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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