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참은 조종사 "힘들다"…분향소 이어진 조문 행렬 [현장+]

김영리/이민형 2024. 12. 31.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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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마지막 날, 애도하며 보내는 시민들
가족 단위 조문객 다수…조종사·외국인도 추모
"일반 시민 불안도 상당해"
시청 앞 합동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추모를 위해 줄을 서 기다리는 모습. /사진=김영리 기자


"사고 당시에 저도 조종사로 근무 중이었습니다. 근무 끝나고 소식을 접했고, 마음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31일 정오께 서울 중구 시청 본관 정문 앞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 조문 대기줄. 유독 굳은 표정으로 차례를 기다리던 시민 A씨는 "나도 조종사로 일하고 있다"며 "쉬는 날이라 희생자를 기리고 싶어 방문했다"면서 눈물을 참았다.

서울시가 이날 오전 8시부터 중구 시청 본관 정문 앞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서울광장 스케이트장 뒤쪽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는 많은 시민이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조의와 애도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멍하니 바라보기만…분향소 못 떠나는 시민들

시청 앞 합동분향소에서 추모하기 위해 줄을 선 시민들의 모습. /사진=김영리 기자


이른 오전부터 시민들의 발걸음이 몰리더니 정오가 넘어서자 점심시간을 틈타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까지 몰려 정오부터 오후 1시께까지 줄곧 100여명이 넘는 대기줄이 펼쳐진 모습이었다. 현장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정오 기준으로 1063명의 시민이 이곳을 찾았다.

이날 조문 대기줄에는 가족 단위의 추모객이 유독 많이 보였다. 3살 아이를 둔 부부부터 팔순 잔치 기념 가족 여행 등 이번 사고에서 가족들과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가 명을 달리한 희생자가 많았던 터다.

아내, 어린 아들과 분향소를 찾은 이동화(44) 씨는 "아이에게 안타깝게 운명한 분들이 있다고, 같이 가서 마음을 나누고 위로해주자고 설명한 뒤 데리고 왔다"며 분향소를 찾은 이유를 밝혔다. 두 자녀, 남편과 함께 분향소에 방문한 김민영(41) 씨도 "가족과 함께 뉴스를 봤고 아이들도 많이 놀랐다.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과 유가족분들을 함께 위로해주고 싶어서 찾았다"고 말했다.

조문을 마치고 굳은 표정으로 방명록을 작성하던 강성모(21) 씨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대학교 선배도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돼 마음이 더 아프다"며 "추모의 시간을 갖기 위해 일부러 시간 내서 왔다"고 설명했다.

조문을 마치고도 20여분간 분향소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자리를 뜨지 못하는 시민도 있었다. 중랑구에서 직장 연차를 내고 방문했다는 신동현(24) 씨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고 대피할 수도 없는 사고였기에 같은 국민으로서 참담하다"며 "연말에 이런 일이 생겨 정말 안타깝다. 유족과 생존자 지원에 정부가 최선을 다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외국인도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오사카에서 온 여행객 하마다 레이(27) 씨는 "이번에 한국에 올 때 제주항공 비행기를 탔다. 28일에 탔으니까 사고 하루 전"이라며 "남 일 같지 않고 마음이 너무 안 좋아서 출국 전 추모하러 왔다. 사고자와 가족들을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다"라고 밝혔다. 

 합동분향소 앞 '마음안심버스'도 붐벼

합동분향소 우측 재난심리지원 현장상담소. /사진=김영리 기자


합동분향소 우측에는 서울시통합심리지원단에서 운영하는 재난심리지원 현장상담소인 마음안심버스도 설치돼있었다. 이번 사고로 심리적인 충격을 크게 받은 시민들을 위해 상담을 지원하는 이동식 상담소다.

마음안심버스에서 심리 상담을 마치고 나오던 곽학종(55) 씨는 "난 이태원 사고 생존자"라며 "그때도 29일이었는데 이번에도 29일이다. 29일이 돌아오면 마음이 안 좋았는데 또 사고가 나니까 마음이 안 좋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추모하려고 와보니까 현장 상담도 받을 수 있어 받아봤다"면서 "이태원 참사 당시 큰 사고가 나기 전에 막을 수 있었는데 못 막았다는 자책이 들어 힘들었는데 오늘 상담사와 당시 이야기도 하며 위안을 얻었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만난 서울시 정신건강 복지센터 관계자는 "서울이 사고가 발발한 곳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진 않지만 최근에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으로 간접적 경험을 하는 이들이 많다"며 "영상과 사진 등으로 계속 노출되면서 불면증을 겪거나 생활이 힘들다고 하시는 분들, 혹은 분향소에 오셔서는 감정이 격해지셔서 힘들어하시는 분들도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런 분들께 정보지를 드리고, 필요에 따라 위험성 평가를 거쳐 각 자치구에 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의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준비한 300부가량의 정보지는 정오께 거의 다 소진됐다고도 덧붙였다.

끝으로 관계자는 "대규모 재난이 최근 몇 년 동안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보니 일반 시민들의 불안도가 상당하다"면서 "과거에는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사고 수습에 비해 직·간접적 경험자의 심리 상태를 돌보는 것은 등한시됐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요즘에는 사회적 재난에 따른 트라우마에도 관심이 커졌고 상담을 꺼리는 분위기도 전보다 덜하다. 적절한 시기에 심리 회복을 위한 상담을 받는 것이 재난 대응 측면에서도 주축이 되어가는 분위기를 체감한다"고 말했다. 

김영리/이민형 한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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