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2024년은 끝이지만 무안공항엔 끝없는 슬픔만 남았다[세상&]
무안공항선 안타까운 침묵만
[헤럴드경제(무안)=이용경·김도윤 기자] 2024년 12월 31일 새벽.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발생한 지 사흘째를 맞이한 이날 무안국제공항 안에 마련된 유족들의 임시 거처는 고요했다. 참사로 희생된 179명의 시신은 관계 당국이 사고 발생 11시간 만에 모두 수습했지만, 사망자의 신원을 확인한 유족과 그렇지 못한 유족 모두 속절없는 상황에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남겨진 자들은 떠난 자의 자리를 온몸으로 견디며 2024년 마지막 날을 맞이했다.
31일 무안국제공항 안에 마련된 유족들의 임시 거처는 차분하게 진정된 분위기였다. 양 갈래로 머리를 딴 서너살 돼 보이는 꼬마 아이가 임시 텐트 사이를 뛰어다니는 모습이 슬픔에 잠긴 이곳의 분위기를 더 도드라져 보이게 했다. 국토교통부 중앙사고수습본부 등 관계 당국에 따르면 사망자 179명에 대한 시신 수습은 사고 발생 11시간 만에 모두 완료된 상황이다. 현재까지 수습된 사망자 가운데 174명은 신원이 확인됐고, 나머지 5명에 대한 신원 확인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신원 확인 절차 등을 끝마친 유족들은 장례 절차를 앞두고 가족을 추억했다. 전모(25) 씨는 “29일 아버지 시신을 확인했다”며 “냉동고 컨테이너에 시신을 옮긴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냥 하루빨리 아버지의 장례를 치루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끔찍한 일을 당하셨는데 서둘러 제대로 된 장례를 치러드리는 게 아들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전씨는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와 준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평소에 웃고 즐기는 친구들인 줄만 알았는데, 힘들 때 다른 일을 제쳐두고 누구보다 먼저 와준 이 친구들이 있어 지금 견딜 수 있는 것 같다”며 “슬픔도 기쁨도 나눠주고 위로해 주는 친구들 덕분에 아버지에 대한 마음의 빚이 조금은 덜어지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옆에 있던 친구 박모(25) 씨는 “힘들 때 옆에 있는 게 친구”라며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온 게 아니다. 친구 옆에 있어 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전부”라고 했다.
이번 참사로 누나를 잃은 A(42) 씨는 연신 담배를 피우며 “매형과 조카들 가족 여행 간다고 그렇게 웃고 좋아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가버렸다”며 “크리스마스 때 태국 간다고는 얘기했었는데, 그게 설마 누나가 탄 비행기일지는 몰랐다”고 안타까워했다.
유족을 위로하기 위해 공항을 찾은 사람들도 많았다. 주로 친구, 지인, 직장 동료 등이었다. 배우자 잃은 후배를 위로하기 위해 무안공항에 왔다는 박모(62) 씨는 “이런 상황에서는 말이 필요 없다”며 “옆에 있어 주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이 죽었고, 사람이 아파하면 결국 사람이 위로해야 하는 법”이라고 말했다.
한편 사망자 가운데 90명은 필요한 절차를 모두 마치고 유족에게 인도돼 곧 장례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유족협의회는 전날 “(당국에서) 90구의 신원을 저희에게 넘겨주기로 했다”며 “국토부와 제주항공 측에 재차 확인한 뒤 장례 절차에 들어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시신을 인도받은 유족들은 개별적으로 장례를 치르거나 합동 장례를 치르게 된다.
유족협의회는 ‘유족끼리 뭉쳐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하지만 유족 중 일부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고통스럽다’며 빠른 장례를 원해 이르면 이날 중 장례 절차를 밟는 가족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온전한 상태로 수습된 5명의 사망자 가운데 3명은 광주(2명)와 서울(1명)로 운구돼 장례를 준비 중이다.
한편 무안군 현지에 마련된 분향소에도 시민들의 추모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전날 전남 무안군 무안종합스포츠파크에 마련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에는 분향소가 열린 오전 11시부터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방문한 시민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일동 차렷. 희생자들에 대해 묵념.” 시민들은 분향소 관계자의 구령에 맞춰 경건히 국화꽃을 헌화하고 묵념했다. 조문객 일부는 슬픈 감정을 애써 억눌렀고, 일부는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30일 오후 기자와 함께 추모 대열에 섰던 전남 무안군 청계면에 거주하는 이모(66) 씨와 김모(65) 씨 부부는 “그 당시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여객기가 지나가는 순간을 봤지만 비행기 사고라고 생각하진 못했다”며 “유족의 입장이 되지 못해 어떤 말을 해도 위로가 되지 않겠지만, 슬플 때는 슬퍼하시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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