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장비로 콩고 부정선거? 현지 언론도 모르게 창작한 '소설'
부정선거 음모론의 대표적인 해외 사례 중 한 곳은 콩고민주공화국이다. 뉴스타파는 음모론자들이 말하는 '콩고 부정선거'를 다룬 국내 매체들의 기사가 진실한지 검증해봤다. 그 결과, 관련 기사 대부분이 '주장'에 불과했고 별다른 '근거'도 없었다. 이에 더해 사건 날짜를 '조작'하거나 콩고 현지 언론에서도 확인되지 않는 내용을 '창작'하는 등 의도적으로 가짜뉴스를 만들어 퍼뜨린 것으로 파악됐다.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은 한국산 선거 장비가 이라크, 콩고, 키르기스스탄 등 여러 국가에 수출됐고, 부정선거의 주요 원인이 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현지 언론이나 해외 전문가들의 보고서를 교차해서 검증한 결과는 오히려 정반대였다. 한국산 전자 선거 장비가 선거의 투명성과 결과 조작 방지에 크게 기여를 하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극우 매체들의 '부정선거' 뉴스 팩트체크...대범하게 '조작'하고 때로는 '창작'도
극우 성향의 인터넷 매체인 <스카이데일리>, <자유일보>, <파이낸스뉴스>, <뉴데일리> 등은 2018년부터 최근까지 '한국산 선거 장비 때문에 콩고에서 부정선거가 발생했다'는 식의 기사를 무차별적으로 생산해서 유포했다. 극우 유튜버들과 일부 정치인들은 이 같은 기사를 발판 삼아, 부정선거 음모론이 완벽하게 확인된 진실인 것처럼 대중을 호도하고 있다.
2023년 11월 23일 자 <자유일보> 기사에는 '콩고민주공화국 사람들이 2020년 4.15 총선 직전에 한국을 방문한 것이 콩고의 2018년 부정선거 논란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실제로 콩고 관계자들이 한국을 방문한 시점은 2020년이 아니라, 2013년 4.24 재보궐 선거 때였다.
2013년 4월, 충청남도 선거관리위원회는 공식적으로 콩고와 인도네시아의 정부 관계자들을 초청해 한국의 선진화된 선거 현장을 견학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음모론자들은 2020년 21대 총선이 결과를 조작한 부정선거였다고 주장하는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콩고인들의 7년 전 방한 사진을 꺼내서 악용한 것이다.
바이러스처럼 퍼진 콩고 부정선거 가짜뉴스...콩고 난민을 야당 정치인으로 둔갑
이 같은 가짜뉴스는 바이러스처럼 숙주를 옮겨가며 퍼지고 있다.
<파이낸스투데이>는 2020년 10월 8일 자 기사에서 <스카이데일리>의 보도를 인용하면서 콩고가 한국 정부가 밀어준 업체와 계약을 맺고 전자식 선거 장비를 도입했다고 주장했다. 또 콩고의 야당 지도자가 자국의 부정선거 원인을 제공한 한국 정부에 항의했고, 이에 우리 국회가 진상조사단을 꾸린 것처럼 보도했다.
또한 <파이낸스투데이>는 이 기사에서 콩고의 '야당 지도자들'이 한국산 장비로 인해 부정선거가 발생했다고 항의하기 위해 방한했다고 보도했지만, 실제로 이들은 콩고의 야당 정치인이 아니라 한국에 거주하는 콩고 국적 난민들이었다. '프리덤파이터'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콩고 난민들을 누군가 포섭해서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려 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뉴스타파가 김성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선관위는 개발도상국가에 국제개발협력(ODA)의 일환으로 콩고에 선거 관련 데이터센터를 건설해주는 지원 사업(2017년)을 벌였다. 그러나 이 같은 지원 사업은 2020년부터 완전히 중단됐다.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선관위를 공격하고 나섰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선관위는 또 선거 장비 수출은 국내 기업과 해외 국가의 직접 계약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한국 정부나 선관위가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2018년 한국산 장비 도입한 콩고...찬반만 보도했을 뿐, 부정선거 원인 보도는 없었다
콩고는 2018년 12월 치러질 자국의 대선을 앞두고 한국산 선거 장비를 처음 도입했다. 당시 콩고 언론은 전자 투개표기 도입에 대한 찬반 의견을 주로 보도했다. 대선 후, 한국산 장비가 대선 부정선거의 원인으로 밝혀졌다는 내용의 기사는 콩고 주요 매체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콩고의 선거 방식은 우리와 약간 다르다. 우리의 경우 투표소에 가면, 투표지를 받아서 지지 후보의 이름 칸에 도장을 찍은 뒤 이를 직접 투표함에 넣는다. 그러나 콩고는 전자 투표기로 후보를 선택한 뒤, 이를 종이로 출력해서 투표함에 넣는다. 따라서 방식만 다소 다를 뿐, 콩고가 종이 실물 없이 전자 투표만 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콩고의 일간 신문 <Le Soft>는 2018년 5월 31일자 기사에서, 2018년 12월 치러질 대선에서 전자 투표기를 도입하는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 대해 당시 브루노 치발라 국무총리가 발언한 내용을 보도했다.
우리는 (선거)운용을 촉진하고 비용을 줄여야 합니다. 투표기는 (결과를 인쇄하는) 프린터일 뿐입니다. 투표기를 거부하라고 요구하는 사람은 선거를 원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 브루노 치발라(2018.05.31. 콩고 일간신문 <Le Soft>)
콩고의 인터넷 언론 <7sur7>은 선거관리위원회 투표기 보관소에 화재가 발생한 당일인 2018년 12월 13일 자 기사에서 전자 투표기 도입에 강하게 반대한 야당 연합 소속 정치인 올리비에 카미타투 에추의 인터뷰를 실었다.
완전한 거부입니다! C.낭가(콩고민주공화국 선관위원)가 계속해서 100,000대의 부정 행위 (투표)기계를 강요한다면, 그 기계 뒤에 경찰을 배치하여 그 기계가 부서지거나, 파괴되고, 불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콩고인이 선거법 집행을 관리할 것입니다.
- 올리비에 카미타투 에추(2018.12.13. 콩고 인터넷 언론<7sur7>)
그러나 선거가 임박하자 야권에서도 투표기 사용에 합의했다.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전자 투표기를 악용해 부정선거를 일으키지 않도록 감시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였다.
콩고 인터넷 언론 <Mediacongo.net>의 2018년 12월 22일 자 기사에 따르면, 당시 야당 연합 라무카의 리더 쟝 피에르 벰바는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최종적으로는 투표기를 이용해 선거에 참여하는 것에 합의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지지자들에게 투표기를 이용한 투표에 세심한 관심을 기울일 것"을 당부했다.
우리 대의원들은 개표가 시작되기 전에 투표소를 떠나지 마십시오. 주민들은 각 투표소에 결과를 표시하도록 요구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법의 테두리 내에서 수행하십시오. 당국이 우리를 죽이려고 배치할 군인들에게 굴복하지 마십시오
- 쟝 피에르 벰바(2018.12.22. 콩고 인터넷 언론 <Mediacongo.net>)
한국산 장비 의심했던 야당 후보가 대통령 당선...불복 세력이 '부정선거' 주장
전자 투표기로 처음 치러진 콩고의 2018년 대선 결과, 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됐다. 이것만 봐도 콩고 대선에서 한국산 선거 장비가 오히려 선거의 투명성을 높였다고 볼 수 있다. 선거에 진 여당은 아무런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지만, 선거에 불복하고 '부정선거' 카드를 꺼내든 세력은 당선에 실패한 또 다른 야당이었다.
한국산 선거 장비는 해외에서 선거 비용을 절감하고 보다 투명한 선거를 가능하게 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앞서 뉴스타파는 키르기스스탄에서 발생한 부정선거는 한국산 선거 장비의 문제가 아니었다고 보도했다. (관련 기사 : 키르기스스탄 기자 인터뷰 "한국산 전자개표기는 부정선거와 관련없다") 2017년 키르기스스탄 대선에서는 대통령 선거 캠프가 정부 서버를 해킹해서 유권자 명부를 빼낸 것이었고, 2020년 총선 부정선거 문제는 돈을 주고 표를 사는 '매표 행위'였다.
2015년부터 키르기스스탄에 도입된 한국산 전자개표기는 오히려 투표 결과를 조작하지 못하게 하는 방패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콩고에서도 이와 비슷한 평가를 받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러나 극우 매체의 가짜뉴스와 극우 유튜버의 말을 맹목적으로 믿었다. 그 결과는 내란 계엄군의 선거관리위원회 침탈로 이어졌다. 대통령의 음모론 신봉은 대선 때부터 징후가 있었다. 그는 선거 유세에서 "선관위가 썩었다"는 등의 극단적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국정원 고위 관계자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그분의 머릿속은 국정원 (정보)보고보다 유튜브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윤석열의 내란은 부정선거 음모론 신봉자의 필연적인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뉴스타파 봉지욱 bong@newstapa.org
뉴스타파 이슬기 fellow-sk@newstap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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