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적 생존 "승무원용 가슴 감싸는 안전벨트, 흉추 골절 불렀을 것"
[정심교의 내몸읽기]
지난 29일 전남 무안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승무원 2명이 모두 '골절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의들은 "이번 참사처럼 비행기 대형사고에서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기적"이라면서도 "골절상 부위·정도에 따라 마비 여부·부위가 진단되고, 빠르면 24시간 이내, 늦어도 72시간 이내에 진단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번 참사의 생존자인 30대 남성 승무원 이모씨(33)는 29일 목포한국병원에서 이대서울병원으로 전원됐다. 이씨는 다섯 군데 골절 진단을 받았다. 29일 오후 9시 이대서울병원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주웅(산부인과 교수) 이대서울병원장은 "이날 오후 6시15분께 응급실에서 뇌 CT(컴퓨터단층촬영), 혈액검사 등을 시행했다"며 "검사 결과 이 남성은 현재 흉추(등뼈) 2군데, 좌측 견갑골 1군데, 좌측 늑골(갈비뼈) 2군데 등 총 5군데의 골절이 진단됐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흉추·늑골의 골절은 정도에 따라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한양대구리병원 정형외과 박예수 교수는 3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흉추가 골절돼 신경이 손상당하면 흉추 밑쪽으로 마비된다"며 "양팔은 움직일 수 있지만 양다리가 마비(하반신 마비)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천대 길병원 외상센터 이길재 교수는 "이번 사고에서 보면 비행기가 담벼락에 부딪혔을 때, 또는 비행기가 폭발하면서 물체에 사람이 부딪히거나 사람이 앉은 자세에서 땅에 떨어지면서 가해졌을 충격이 가장 컸을 것"이라며 "이럴 때 탑승객 상당수가 골절상을 입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새 떼가 엔진에 끼어 들어왔을 때, 랜딩기어 없이 착륙했을 때는 충격이 있더라도 비행기가 날아가는 방향을 거스르지는 않았으므로 골절상까지는 입지 않았을 것이란 분석도 내놨다.
이길재 교수는 기내 안전벨트가 생존자의 목숨은 살렸겠지만 안전벨트의 고정 방식이 골절 부위와 관련있다고 주목했다. 기내 승객용 안전벨트는 2점식(허리 양쪽 2개 지점에서 고정), 승무원용 안전벨트는 3점식(허리 양쪽 2개 지점+가슴 한쪽 1개 지점) 또는 4점식(허리 양쪽 2개 지점+가슴 양쪽 2개 지점)이다. 이길재 교수는 "비행기가 사고로 강한 충격을 받으면 2점식은 요추 골절과 복강경 장기 파열을 일으킬 수 있고, 3·4점식은 요추는 물론 흉추·견갑골·늑골까지 골절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승무원인 이씨도 흉추·견갑골·늑골 골절상을 입은 것으로 진단됐다.
'척추(경추·흉추·요추)' 골절 중 가장 무서운 건 경추 골절이다. 경추엔 7개 뼈가 있는데, 이 중 어느 뼈라도 부러져 신경을 손상시키면 팔다리를 포함해 경추 이하 모든 부위가 마비돼서다. 박예수 교수는 "처음에 골절상 입은 직후 손발 감각이 없다면 이를 '스파이널(척수) 쇼크(spinal shock)'라고 하는데, 이 경우 빠르면 24시간 이내, 길어도 72시간 이내에 완전·불완전 마비 여부를 진단할 수 있다"며 "경추 골절로 신경을 다쳐 완전마비(경추 이하 전신마비)가 왔다면 수술해도 회복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경추 골절은 비행기 좌석에서 안전벨트를 다 착용하고 있더라도 강한 충격을 받을 때 벨트 부위는 고정돼있지만 목과 머리는 고정되지 않아 앞뒤로 크게 흔들릴 때 발생할 수 있다. 만약 이때 경추뼈가 부러지지 않더라도 척수 신경이 손상당해 사지가 마비될 수도 있다. 아주 강한 충격으로 척수 신경이 손상당한 경우, 경추를 떠받드는 경추 주변 인대가 손상당한 경우, 평소 후종인대골화증(경추 뒷쪽 인대가 딱딱해진 상태였는데 큰 충격으로 척수가 눌린 경우)이 있던 사람이라면 이번처럼 갑작스러운 큰 충격에 경추가 골절되지 않고도 사지가 마비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웅 이대서울병원장은 "환자 이모씨는 현재 경추부 보호, 골절 부위 보호 운동 범위 제한을 하고 절대 안정을 취하고 있다"며 "경추부 신경 부종, 신경 악화 증상으로 마비를 비롯한 후유증 가능성이 있어 중환자실에서 집중 관찰 및 통증 완화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경추쪽을 지나는 신경의 손상 여부를 확인하는 단계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어 "이씨는 전신마비 등 후유증 가능성이 있어 집중 관리 중"이라며 "최소 2주 정도는 입원해야 할 것 같다. 골절 완치까지는 최소 수 주가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30일 오후 1시께 목포한국병원에서 옮겨진 이씨는 오후 4시13분께 이대서울병원으로 이송됐다. 당시 구급차 운전자는 "현재 생명에는 지장이 없고 의식이 있는 상태"라고 이씨의 상태를 전했다.
또 다른 생존자인 20대 여성 승무원 구모(25)씨도 오후 4시께 목포중앙병원에서 이송돼 오후 7시30분께 서울 송파구 소재 서울아산병원에 도착했다. 구씨는 발목과 머리 등을 다쳤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로 전해졌다.
이들은 사고 항공기 꼬리 부분에서 구조됐으며, 중경상을 입었으나 구조 당시 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오후 9시30분 기준 탑승인원 181명 중 179명이 사망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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