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으로 간 헌정질서 파괴범의 불법비자금 [視리즈]

강서구 기자 2024. 12. 30.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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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커버스토리 視리즈
탄핵정국서 잊혀선 안 될 사건
재산분할 쟁점 노태우 비자금 2편
대법원, 재산분할 심리불속행 기각
비자금 300억원이 핵심 논쟁
비자금 출처 묵묵부답인 노 관장
대법원, 비자금의 진실 밝혀내야

탄핵 정국에서도 시계는 돌아간다. 대통령 탄핵이란 이슈에 매몰돼선 안 되는 중요한 이슈도 숱하다.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에서 느닷없이 수면 위로 떠오른 '신군부 불법비자금 300억원 논란'은 그중 하나다. '탄핵정국에 잊혀선 안 될 사건: 노태우 비자금 논쟁' 2편에선 불법비자금의 실체를 심리 중인 대법원의 역할론과 국고환수론의 근거를 취재했다.

지난 10월 5·18기념문화센터에서 열린 '신군부 비자금, 어떻게 환수할 것인가' 집담회의 모습. [사진 | 뉴시스]

우리는 視리즈 '탄핵정국서 잊혀선 안 될 사건: 노태우 비자금 논쟁' 1편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이혼소송과 비자금 300억원 논란을 살펴봤다. 지난 5월 열린 2심 재판부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지급해야 할 재산분할 금액을 1조3808억원으로 판결했다.

최 회장은 곧바로 상고했고, 이 사건을 배정받은 대법원 1부가 지난 11월 8일 심리불속행審理不續行(심리하지 않음·1편 기사 참조)을 기각하면서 두 사람의 소송은 대법원의 심리를 받게 됐다.

■ 대법원 심리의 함의➊ 신군부 비자금= 누군가는 "대법원의 심리를 받는 건 당연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대법원이 민사사건을 심리하지 않는 비중은 70%를 웃돈다. 대법원이 심리불속행을 기각했다는 건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재산분할을 결정한 2심 재판 결과를 뒤집을 만한 중대한 사유를 발견했다는 의미일 수 있다.

그 중심엔 노태우 대통령(당시 직함)의 비자금 300억원 논란이 서 있다. 노 관장은 재판 과정에서 "비자금 300억원을 선경그룹(현 SK)에 빌려줬고, 그 돈을 발판 삼아 SK가 재계 2위의 대기업으로 성장했다"고 주장했다. 이를 2심 재판부가 받아들이면서 1조3808억원이란 천문학적인 재산분할 판결이 내려졌다.

당시 이는 커다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2심 재판부의 판결을 유지하면 '불법 비자금'으로 쌓은 부富를 사실상 상속 대상으로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심리 결과가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신군부의 숨은 불법 비자금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참고: 노태우 대통령의 불법 비자금 사건은 1997년 법적으로 마무리됐다. 이 이야기는 후술했다.]

5·18 기념재단 관계자는 "이 문제는 철저하게 조사하지 않으면 신군부의 독재에 맞선 5·18은 미완의 역사로 끝날 것"이라면서 "대법원의 이번 심리를 계기로 과거 신군부의 비자금 논란을 완전히 털어내야 한다"고 꼬집었다.

문제는 '노태우 비자금 300억원'을 공론화한 노 관장 측에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2심에서 어머니 김옥숙 여사의 비자금 메모 2장과 선경건설이 발행한 약속어음 50억원의 사진까지 재판부에 제출했던 노 관장 일가는 아무런 입장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법제사법위원회가 노 관장과 김 여사, 동생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원장을 증인으로 채택했지만, 세 사람은 특별한 이유 없이 출석을 거부했다.

그 무렵, 노재헌 원장은 되레 '만화로 읽는 인물 이야기 대통령 노태우' 출판기념회와 세미나(노태우 정부 시기 서울올림픽의 대내외적 의미)에 참석하는 묘한 행보를 내디뎠다. '비자금 논란을 아랑곳하지 않고 노태우 대통령의 미화작업에 힘을 쏟고 있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였다.

차종수 5·18기념재단 부장은 "노태우 비자금 논란이 이어지고 있지만 노 관장 일가는 아무런 해명도 내놓지 않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도화선을 만든 노태우의 미화작업에 열을 올리는 건 5·18 피해자를 우롱하는 행위"라고 꼬집었다.

■ 대법원 심리의 함의➋ 국고환수론= 이런 이유로 많은 이들이 대법원의 이번 심리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신군부의 숨은 불법비자금을 다시 한번 공론화할 수 있는데다, (비자금) 국고환수론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도 가능해서다.

물론 신군부의 불법 비자금을 환수하는 건 법적으로 불가능하단 목소리도 있다. 법적 판단과 후속 조치가 이미 끝났기 때문이다. 1997년 대법원은 노태우 대통령에게 비자금을 조성한 죄를 물어 징역 17년과 추징금 2628억원을 선고했다. 이후 노태우 대통령은 1997년부터 2008년까지 추징금 2400억원을 냈고, 2013년 남은 추징금 230억원을 납부했다. 노태우 대통령이 2021년 10월 사망했다는 점도 한계다.

현행법상 범죄행위자의 사망 등으로 공소를 제기할 수 없을 땐 불법적으로 축적한 재산을 몰수하거나 추징하는 게 불가능하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노 관장 300억원 비자금'의 실체가 밝혀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노 관장의 주장대로 비자금 300억원이 SK로 들어갔다면 노태우 대통령이 납부한 '추징금'과는 다른 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 관장은 2심 재판부에 김옥숙 여사의 비자금 메모와 선경건설이 발행한 약속어음 50억원의 사진을 재판부에 제출하면서 "당사자들 사이에서 가족들만 아는 비밀로 했다"면서 "부득이 관계 당사자들을 설득해 양해를 얻어 증거로 제출했다"고 진술했다. 이는 가족들만 아는 또다른 비자금이 존재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대법원이 2심과 다른 판결을 내놓으면 신군부의 비자금 논란은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이라면서 "시민단체의 고발로 진행 중인 노태우 대통령의 비자금 수사에도 탄력이 붙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참고: 시민단체 군사정권범죄수익국고환수추진위원회는 지난 10월 7일 노 관장과 어머니 김옥숙 여사를 '범죄수익은닉죄'와 '조세범처벌법 위반죄'로 검찰에 고발했다.]

비자금 수사가 법적으로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전두환·노태우의 비자금을 추징하기 위한 법안'은 이미 발의돼 있다. 윤종오 진보당 의원은 지난 6월 12일 '헌정질서 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골자는 다음과 같다. "헌정질서 파괴범죄자가 불법적으로 얻은 재산은 행위자의 사망이나 공소시효의 만료로 공소를 제기하지 않아도 몰수 또는 추징을 할 수 있도록 하자."

[사진|뉴시스] 

장경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9월 2일 '헌정질서 파괴 범죄자'가 사망해 공소제기가 어려운 경우에도 범죄 수익을 모두 몰수하고 추징하는 내용의 '범죄 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여당 의원인 박준태 국민의힘 의원도 9월 24일 "범죄행위를 통해 얻은 수익은 공소를 제기하지 않더라도 몰수할 수 있는 '독립몰수제'를 도입하자"면서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다만, 여야 의원들이 발의한 불법 비자금 몰수·추징 관련법은 아직까지 상임위원회 심사 단계에 머물러 있다. 여기에 12·3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이슈로 국회가 극심한 대립구조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탄핵 정국에서도 시간은 흘러간다. '대통령 탄핵'에 매몰돼선 안 될 중대한 이슈도 있다. 신군부의 불법 비자금의 실체를 규명할 수 있는 '노 관장 300억원 비자금' 논란은 그중 하나다. 대법원은 지금 어떤 논의를 벌이고 있을까.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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