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빨리왔네" 착각…갑자기 변한 내 아이 '이 병' 신호였다

우울증은 모진 풍파를 겪은 어른들의 전유물이란 개념이 깨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소아우울증 발생률이 유독 늘고 있어서다. 소아 정신건강의학 전문의들은 "소아우울증을 아이의 단순한 감정 기복, 사춘기 증상으로 여기고 방치하는 경우가 적잖다"며 "진단·치료를 놓치면 아이의 몸과 마음에 장기적인 위험을 끼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과연 소아우울증이 얼마나 많이 늘었을까.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보건의료빅데이터개방시스템에 따르면 15~19세 남학생의 우울증 진단 건수는 2019년 1만5044명에서 2023년 2만1539명으로 43.2%포인트, 여학생은 2만4428명에서 3만8248명으로 56.6%포인트 늘었다. 서울대어린이병원 소아정신과 김재원 교수는 이처럼 소아우울증이 급증한 원인으로 "한국에선 어릴 때부터 학업 등의 이유로 스트레스에 많이 노출되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울증은 우울감과 의욕 저하를 주요 증상으로 가지며 다양한 인지·정신·신체적 증상을 동반하고, 일상 기능을 떨어뜨리는 정신과 질환이다. 이런 질환이 아동·청소년에게 발생하면 '소아우울증'으로 진단한다. 소아우울증의 원인 60%는 환경적 요인(학업 스트레스, 가족·또래관계 등)이, 나머지 40%는 유전적 요인이 차지한다.

김재원 교수는 소아우울증의 위험요인을 3가지로 꼽는다. 첫째, 또래관계의 어려움이다. 친구와의 갈등, 학교 폭력이 대표적인 예다. 김재원 교수는 "다른 또래 관계에 문제가 있더라도, 어릴 때부터 꾸준히 교류하는 좋은 친구 1~2명을 만들고 계속 유지한다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도움 된다"고 조언했다. 둘째, SNS다. 아이들이 SNS를 사용하다 보면 우울증이나 자해·자살위험을 높이는 잘못된 정보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아진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연령 제한을 포함한 온라인 아동보호법이 속속 발의된다. 셋째는 '소아 비만'이다. 김 교수는 "다양한 연구를 통해 소아 비만과 소아우울증이 서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알려졌다"고 말했다.
소아우울증이 발병하면 식욕 저하, 불면증, 집중력 저하 등 증상이 동반된다. 특히 소아우울증 환자들은 '공부에 집중이 잘 안된다'고 호소하거나, 이전에 즐기던 활동에 대한 흥미·의욕을 잃는 경향을 보인다. 자신이 우울한 상태인지 깨닫지 못한 아이는 짜증·예민함으로 감정을 표출하기도 한다. 소아우울증은 성인우울증과 달리 주의력결핍행동장애(ADHD), 품행장애, 불안장애 등을 동반할 수 있다.
문제는 소아우울증 증상을 사춘기와 혼동하는 경우가 적잖다는 것. 사춘기 때 흔히 발생하는 감정 기복은 자연스럽지만, 우울증으로 인한 감정 변화는 일상에 계속 지장을 줄 정도이며, 치료해야 한다. 사춘기와 우울증을 구분하려면 아이의 변화를 관심 있게 지켜봐야 한다. 김재원 교수는 "초등학생 때까지 공부를 잘하던 아이가 중학생 때부터 갑자기 학업에 부진할 때 흔히 부모들이 가장 먼저 걱정하는 문제는 'ADHD'"라며 "하지만 실제로는 소아우울증에 동반된 집중력 저하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소아우울증을 방치하면 성인까지 영향을 미치는 '만성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 있다. 빠르고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중요한 이유다. 일반적으로 소아우울증을 진단할 때 병원에선 'DSM-5(미국정신의학회 평가기준)'과 'CDRS-R(소아청소년 우울증 중증도 평가도구)'를 사용한다. 그 밖에도 우울증 이외의 정신과 질환을 진단하기 위해 'K-SADS' 라는 면접 도구가 사용된다.
그중 CDRS-R 평가 결과, 40점 미만의 경증이면 심리 치료부터 진행하고, 40점 이상(중등도 이상)이면 항우울제 치료를 실시한다. 항우울제 치료에 반응하는 환자는 60% 정도다. 일반적으로 치료를 시작하고 8~12주째에 반응을 평가하고 계속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치료반응은 CDRS-R로 평가한 증상이 50% 이상 감소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반응이 있으면 같은 용량으로 6개월 정도 치료를 이어가고, 치료 중단을 목표로 점차 용량을 줄여나간다. 만약 반응이 없다면 약제 종류를 바꾸고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한다.

'항우울제를 장기간 먹으면 부작용으로 자살 생각이 증가할 것'이란 우려도 적잖다. 하지만 다수 연구에 따르면 장기 복용으로 인한 자살 생각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증가하지 않는다. 오히려 항우울제 치료를 통한 이득이 훨씬 크다는 게 의학계의 중론이다.
우울증에 걸린 소아청소년은 감정을 표현하거나 조절하는 능력이 미숙한 경우가 많아 '놀이치료'나 '정서 조절 훈련'을 병행하는 경우가 있다. 치료에 동참하는 보호자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므로 '가족 치료'를 함께 실시하기도 한다. 만약 신체 질환이 있으면 치료 과정을 견디기 위해 신체 건강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즐겁게 할 수 있는 운동·취미를 혼자서 계획·실천하도록 하는 '행동 활성화 치료'를 실시한다.
소아우울증의 예방 수칙은 마음과 몸이 건강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예컨대 게임하거나 휴대폰을 장시간 보는 대신, 건전한 신체활동을 통해 휴식할 시간·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그러나 지금 한국의 교육 환경에서는 아이들이 여가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기가 어려우므로 부모가 나서서 아이의 숨 돌릴 틈을 직접 마련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기적인 선별 검사도 조기 발견과 예방을 위해 중요하다. 미국에서는 만 12~18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연 1회 우울증 선별 검사를 권장하고 있다. 김재원 교수는 "우리나라에선 초등학교 1·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정서·행동 특성 검사가 시행되는데, 정기 검사로서는 부족하다"며 "가정에서도 실시할 수 있는 우울 검사(PHQ-9) 같은 평가 도구로 매년 정기 검사를 해보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정심교 기자 simky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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