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올해의 인물, 국회를 지킨 시민들

어쩌면 이 모든 것은 한국의 민주주의 역량을 확인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험대가 아니었을까? 2024년 4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부터 오묘했다. 야당은 압도적인 과반을 차지했으나 아슬아슬하게 200석에 미치지 못했고, 여당은 참패했으나 개헌 저지선을 가까스로 지켜냈다. 대통령은 야당 주도로 통과된 법에 잇따라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며 정국이 경색에 빠져들었다. 12월이 오기 전까지, 법이 통과되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며, 국회에서 재표결 끝에 부결되고, 다시 그 법이 발의되는 쳇바퀴 정치 뉴스를 우리는 매일 마주했다.
민심은 인내하고 합의하라며 정치권에 균형을 만들어주었지만, 대통령은 다른 생각을 품었다. ‘엎자.’ 그가 헌정질서를 뒤집기로 결심한 12월3일 밤, 국회 운동장에 계엄군을 실은 헬기가 내려앉고, 국회의원들을 체포하기 위한 군홧발에 국회 유리창과 문짝들이 부서진 모습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 1987년 이래 37년 동안 지탱해온 한국 민주주의가 겪은 가장 큰 시련이었다.

그러나 국회는 기민했고, 시민은 용감했다. 명령을 수행하는 군인들마저 ‘슬며시’ 주저했다. ‘상식적인 세상’에 근거한 찰나의 행동들이 모이고 모여 이성 잃은 권력자의 돌발 행동을 통제했다. 역사는 ‘만약’이 없다지만, 만약이라는 샛길로 빠질 뻔한 대한민국 역사를 바로잡은 것은 12월3일 당일, 그리고 이후 국회 앞에 모인 시민이었다. 그 결과 우리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쿠데타를 막았다.
그날 국회를 지킨 정치인과 국회 직원들, 울타리 밖에서 함께 어깨를 맞댄 시민들, 뒤이어 당연한 것을 당연하다고 함께 외친 또 다른 시민들의 함성이 모여 12월14일 국회는 204표로 민주주의의 ‘합격선(200표)’을 겨우 넘어설 수 있었다.

이 모든 회복의 시작은 수많은 ‘찰나’의 덕이다. 〈시사IN〉은 헌정질서가 무너질 뻔한 절체절명의 순간을 지킨 거리의 시민들을 ‘2024년 올해의 인물’로 뽑았다. 자신의 손으로 ‘가’라는 글씨를 투표용지에 새길 수 없었던 시민들은 영하의 날씨임에도 삼삼오오 챙겨온 각양각색의 응원봉과 깃발을 흔들며 온몸과 마음으로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민주주의의 완전한 회복에는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2024년 12월, 시민들은 일체감과 함께 자신감을 얻었다. 창백하지만 뜨거웠던 겨울, 〈시사IN〉 기자들은 2024년 12월7일과 12월14일 서울 여의도 거리에서 만난 평범하지만 위대한 시민들의 이야기를 모았다. 잠깐 무너지고 꺾이더라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분명 다시 회복되고 이어져나갈 것이라는 사실을,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확신할 수 있다.
“머리에 큰 혹이 생겼다”
계엄군 막아내다 다친 윤여길씨(50·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보좌관)

“계엄 선포 소식을 접하자마자 국회로 달려갔다. 갑자기 헬기 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군대가 온다”라고 소리쳤다. 아무도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지만,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고 있었다. ‘군인들이 절대로 본청에 들어오면 안 된다’는 걸. 손에 잡히는 가구와 집기류를 모두 들고 뛰어와 바리케이드를 쳤다. 따로 지휘하는 사람은 없었다. 본능적으로 모인 보좌진과 시민뿐이었다. 여기서 ‘군인이다’ 소리가 들리면 뛰어가고, 저기서 또 외침이 울리면 몰려가 대치했다. 국회의원 190명이 만장일치로 계엄 해제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헬기가 다시 국회 밖으로 빠져나가고 나서야 온몸에 통증이 몰려왔다. 머리에 큰 혹이 생겼다. 어쩌다 다쳤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병원은커녕 비상계엄 해제 이후에도 닷새 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다친 사람’ 명단에 포함돼 탄핵소추안에 이름이 기록되었다. 계엄 해제 직전까지 얇은 가벽을 사이에 두고 계엄군과 대치하다 애국가를 불렀다. 눈앞의 계엄군 한 명 한 명이 너무나도 어린 친구들이었다. 이건 정말 잘못된 일이라는 걸, 그 친구들이 알아줬으면 했다.”
“시민들이 1승을 했다”
12월3일 밤부터 국회 앞 지킨 황인경씨(39·밴드 ‘전기뱀장어’ 뮤지션)

“12월3일 밤 계엄이 선포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곧바로 국회 앞으로 달려갔다. 군인들을 향해 ‘거리에 나와 있을지도 모르는 부모님과 가족을 생각하라’고 소리쳤다. 12월8일 발족한 저항하는 인디 뮤지션 연합 ‘화난음표’에 참여해 집회 현장에서 공연을 이어갔다. 12월14일에도 ‘탄핵을 위한 음악대’라는 공연을 거리에서 펼쳤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그 순간, 시민들이 1승을 했다고 생각했다. 한강 작가가 ‘과거가 현재를 돕는다’고 했던 것처럼, 이날의 승리가 훗날 도움이 되는 순간이 분명 있을 것이다. 국회와 용산 대통령실을 향한 시선이 너무 빨리 거두어지면 안 될 것 같다. 계속 지켜봤으면 좋겠다. 헌법재판소 판결도 있고 숙제가 많이 남아 있으니까.”
“엄마가 잘 다녀오라며 안아주셨다”
수능 마치고 거리로 뛰어나온 고3 김 아무개(18), 허 아무개씨(18)

“충북에서 아침 9시 버스를 타고 여의도를 찾아왔다. 문구점에서 손피켓 재료를 사다 직접 만들었다. ‘윤석열 퇴진’과 ‘전국급식연합’이라는 문구를 새겼다. 우리가 이제 ‘마지막 급식’을 먹는 나이라 이렇게 만들어봤다. 혹시라도 욕먹을까 봐 문구가 안 보이도록 꽁꽁 싸매고 서울까지 들고 왔다. 역사 과목을 좋아하는데, 근현대사를 통해 배운 ‘계엄’이 2024년에 일어나는 게 맞는지 혼란스러웠다. 그날 밤 새벽까지 잠 못 자고 깨어 있었다. 어머니가 보수적인 분이신데, 이번 계엄령이 터지고 마음을 돌리신 것 같다. 서울에 가겠다고 하니, 잘 다녀오라며 안아주셨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시민들에게 받은 것이니, 다시 시민들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방에서 둘이 올 때 처음에는 걱정했다. 사람들이 적으면 어떻게 하나 싶어서. 하지만 여기 나오니 다른 시민들이 많아 정말 벅차다.
“더 이상 게임을 못하겠더라”
‘대한 용기사 전우회’ 이 아무개씨(18·고등학생)

“용기사는 게임 〈파이널판타지 14〉에 나오는 직업이다. 게임에서 내가 주로 플레이하는 캐릭터의 직업이다. 12월3일 밤, 나는 이 게임을 하고 있었다. 친구에게 계엄 이야기를 들으니 더 이상 게임을 못하겠더라. 경기도 양평에 사는데 지난주 토요일(12월7일) 처음 여의도를 찾아왔다. 국회의원들이 (탄핵 표결을 앞두고) 퇴장하는 걸 보고 너무 화가 났다. 그래서 깃발 만들어서 나왔다. 5만원 들었다. 내년에 대학에 입학한다. 부모님은 조심히 다녀오라고 하셨다. 여기 왔더니 ‘전국 용기사 협회’ 깃발을 만든 분을 만났다. 같은 게임을 하는 분이다. 그분과 같이 다니려 한다. 〈파이널판타지〉 게임하는 분들, 오면 함께하자!”
“비상금 400만원을 탈탈 털었다”
방한용품 무료 나눔 한 신창기씨(51·자영업)

“계엄이 선포된 그날 밤, 아내가 깨워서 일어났다. 놀란 마음에 안양 집에서 국회 앞으로 뛰어나갔다. 새벽 4시까지 남아서 계엄이 해제되는 걸 보고 돌아갔다. 군인이 국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시민들이 군인들을 몸으로 끌어안던 모습이 기억난다. 젊은 세대에게 미안하고 참담했다. 계엄이 선포된 그날 밤, 딸이 방에서 나오며 ‘아빠 무슨 일이야?’라고 묻는데 너무 미안하고 수치스럽더라. 오늘(12월14일)도 안 나올 수가 없었다. 회사 동료 두 명과 귀마개·방석·핫팩·발토시를 500개씩 준비해 나누어 주었다. 모아둔 비상금 400만원을 탈탈 털었다.”
“80대 할머니가 우시더라”
직접 만든 응원봉 들고 나온 조은혜씨(25·회사원)

“12월3일 밤, 자려고 누웠는데 말도 안 되는 소식을 접했다. 80대 할머니가 따로 사셔서 연락드렸는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며 우시더라. 조금만 기다려보자며 달래드렸다. 내가 아는 계엄과 대통령이 말하는 계엄이 같은 게 맞을까? 과연 이 말의 무게를 알고 말하는 게 맞나? 잠도 못 자고 출근했는데, 일터에 나가서도 함께 일하는 분들과 다 같이 화낸 기억이 난다. 오늘(12월14일) 거리에 나오기 전, 국회 인근 카페에 ‘50잔 선결제’를 마쳤다. 인피니트 응원봉과 직접 만든 〈슬램덩크〉 응원봉도 들고 나왔다. 이번 집회에서 20대 여성들의 응원봉 문화가 주목받았는데, ‘우린 늘 선두에서 목소리를 내왔다’고 말하고 싶다. 지금이라도 주목받아서 반갑다.”
“시민들이 나머지를 채워주었다”
여의도 화장실 지도 만든 임완수씨(58·커뮤니티매핑센터 대표, 미국 메해리 의과대학 교수)

“커뮤니티 매핑이란 공동체가 지도를 채워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12월7일 토요일 탄핵 집회에 처음 나왔는데, 화장실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뭔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커뮤니티매핑센터에서 운영하는 서비스 플랫폼이 있는데, 이 플랫폼을 통해 사람들이 직접 데이터를 입력할 수 있는 ‘여의도 화장실 지도(minjumap.com)’를 만들었다. 곧바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SNS에서 70만명에게 ‘여의도 화장실 지도’가 공유되더니, 큰 호응을 얻기 시작했다. 내가 한 일은 그저 플랫폼을 만든 것뿐이다. 업데이트하고 자료를 교정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품이 많이 드는데, 숙명여대 학생들이 그룹을 만들어서 데이터를 계속 업데이트해주었고, 다른 자원봉사자 분들도 도와주었다. 원래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일정인데, 나가서 한 명이라도 채워주자 싶은 마음에 오늘(12월14일)도 거리로 나왔다. 미국 친구들이 계속 연락 온다. 괜찮으냐고. 그럼 이렇게 답한다. 한국 국민들은 시민의식과 교육수준이 높아서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영유아 보호자도 참석하고 싶으니까”
‘키즈버스’ 운영한 ‘지우맘’ 권순영씨(44)

“12월7일 처음 여의도 집회를 찾았다. 단단히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미처 대비하지 못한 게 있었다. 아이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 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내가 한번 만들어보자 싶었다. 모아둔 돈을 털어 버스를 빌렸다. 현장에서 선결제를 해주시는 분들의 미담이 너무 훈훈해서, 그런 마음을 이어가고 싶었다. 난 원래 선행하는 사람이 아닌데(웃음), 좋은 마음은 이어진다. 오픈 채팅방을 열고 버스 한 대를 빌렸을 뿐인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오픈 채팅방에 모여든 영유아 부모들이 하나둘 힘을 보탰다. 그렇게 버스 두 대를 빌려서 12월14일 영유아 부모를 위한 ‘키즈버스’를 열었다. 오픈 채팅방에 모인 시민들 중에는 ‘키즈버스 덕분에 집회에 나올 용기가 생겼다’고 말씀하는 분들도 있다. 기저귀 갈 곳, 수유할 곳이 없어서 당황하는 영유아 보호자들이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었으면 했다.”
“나라 지킨 사람의 마지막 자존심”
전직 공안 공무원 김 아무개씨(69)
“35년 동안 공안직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너무 속상하고 자존심이 상해서 오늘(12월14일) 나왔다. 나이 들었다고 안 나올 수는 없었다. 젊은이들이라고 시간이 많아서 나오겠는가. 나오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윤석열 정권이 전쟁을 유발하려 했다는 점에 분노했다. 한국이 중동·아프리카나 시리아·미얀마도 아니고 이게 무슨 작태인가. 난 이제껏 시위를 막는 입장에서 일해왔다. 이번 사태에 경찰 수뇌부가 가담해서 너무 자존심이 상했다. 영혼이 없는 사람들이다. 오랫동안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일해온 사람으로서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고 싶다.”
“탄핵되는 거 보고 맛있는 거 먹을 거야”
두 아이와 거리에 나선 변정아씨(43)

“계엄령 선포 직후 TV를 보면서 아이들과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애들이 이거 문제 있다고, 여의도로 가자고 먼저 말했다. 박근혜 탄핵 때 둘째는 뱃속에 있었고, 첫째는 세 살이었다. 이 어린 나이에 애들이 벌써 탄핵을 두 번이나 경험한다. 12월3일 밤, 애들 일찍 재우고 새벽 3시30분에 일어나보니 계엄이라고 해서 놀란 채 TV를 켰다. 국회에서 계엄이 해제되었지만, 그 시각까지만 해도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 해제 선언을 하지 않고) 아무 말도 없던 상황이라 너무 불안했다. 첫째가 이렇게 말한다. ‘역사 속 위인들 덕분에 우리나라가 민주화됐는데, 그분들이 힘들게 만들어놓은 건데, 대통령이 안에서 편하게 앉아 계엄이라고 말하니까 어이가 없다’고. 오늘(12월14일) 함께 나온 둘째도 이렇게 말한다. ‘탄핵되는 거 보고 맛있는 거 먹고 갈 거야’라고.”
“윤석열이라는 묵은 액을 몰아내자”
‘윤 보내기 굿’을 함께 한 김용범씨(60·풍물패 터울림 회원)

“원래 송년에 해 보내기 굿을 한다. 그런데 시국이 이러니 시민과 함께하자 싶어서 나왔다. 해 보내기 굿은 한 해 동안 쌓인 묵은 액을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걸 소리·춤·풍물 등 다양한 형식으로 마무리하는 건데, 지금 우리 사회에는 윤석열이 묵은 액이잖나. 시민들과 광장에서 윤석열을 몰아내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풍물도 했다. 풍물이 예년부터 나쁜 액을 몰아내고 사악한 걸 물리치는 역할을 해왔다. 풍물은 원래 마당, 광장에서 하는 거였다. 마을의 대소사 때마다 풍물이 그랬던 것처럼 국가에 큰 재난이 있을 때 풍물이 거리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눌려왔던 게 폭발했다”
‘서울 망명 TK장녀 연합’ 깃발 들고 나온 김성은(34), 김지윤(24), 황승미씨(29)

“대구·경북 지역 출신이다. 집에서 정치 이야기를 잘 못한다. 깃발에 ‘내 고향 똥은 내가 치운다’는 문구를 적어서 들고 나왔다. 2030 세대가 호응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르신들이 되게 많이 공감해주시고, 와서 말 걸며 응원해주신다. 일부 언론에서 젊은 여성이 이제야 거리로 나온다는 식으로 보도하기도 한다. 좀 당황스럽다. 혜화역, 딥페이크 반대, 세월호 때에도 늘 거리에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이 안티 페미니즘을 내세우며 당선된 인물이라 지금 여성들이 더 많이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서는 눌려왔던 게 폭발하는 것 같다. 같은 이야길 하는 분들이 있으니까 용기를 낼 수 있는 것 같다.”
“국회에 힘 실어주고 싶어 나왔다”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54)

“국민들 모이는 자리에 힘을 실어주고 싶어서 오늘(12월7일) 여의도로 나왔다. 오는 길에 (향후 거취와 임기를 여당에 맡기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담화문을 기사로 접했다. 기사를 읽으며 ‘빨리 가야겠다’는 생각만 들더라. 계엄이 선포된 그날 밤, 집으로 가는 택시에서 소식을 접하자마자 가짜뉴스라고 여겼다. 그런데 가짜가 아니었다. 지금(12월7일)의 대통령은 더 이상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는 상태 같다. 하야할 뜻도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헌법에 보장된 권리에 따라, 국민들이 탄핵을 요구하고 국회에서 그것을 통과시키는 게 맞다고 본다.”
“이렇게라도 나오니 마음이 좀 편하다”
충남 금산에서 여의도 찾은 윤창호씨(72·자영업)
“충남 금산군에서 새벽 5시 반에 출발했다. 국회 앞에 찾아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역사의 현장을 나도 한번 지켜보고 싶었다. 나이가 있다 보니, 가까운 또래 중에 윤석열을 지지하는 이들도 있다. 친한 친구 10명 중 8명은 ‘계엄령 선포를 잘했다’고 말한다. 나도 70대이지만, 그런 또래들과 같이 있는 게 좀 불편했다. 주말에 하루 종일 그런 소리를 듣느니 차라리 여의도 현장에 있는 게 낫지 않겠나 싶어 서울로 왔다. 이렇게라도 나오니까 마음이 좀 편하다.”
“집권자들 상상력이 부족하구나”
연구실 대신 거리로 나온 정일준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한국 사회는 정말 역동적이다. 연구실에서 책을 읽으며 안다고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다르다. 사회학자로서 집회에 참석하는 젊은 세대를 심층적으로 연구해보고 싶어 나왔다. 입간판을 세워놓고 사람들에게 설문에 응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학생들이 도와주겠다며 같이 나섰다. 졸업생들도 오겠다는 걸 말렸다. 나도 대학에서 수업하고 있지만, 지금(12월 초)이 기말고사 기간이다. 시험 기간인데도 여기 나오는 친구들은 어떤 생각인지 현장 조사를 해야겠다 싶더라. 계엄이 선포된 그날 밤, ‘우리나라 집권자들의 상상력이 부족하구나’라고 생각했다. 국민들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거다. 국회에서 계엄 해제 안 됐으면, 아마 바로 국회 앞에 몇십만 명이 모였을 것이다. 시민들의 힘이 비상계엄을 획책한 윤석열 일당의 화력을 압도할 것이라고 믿는다.”
“변호사들이 노란 조끼 입고 움직이는 이유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들

“윤석열의 계엄 선포 다음 날부터 매 집회 현장에 나오고 있다. 정식 명칭은 ‘민변 윤석열 퇴진 특별위원회 집회시위지원단’이다. 경찰의 위법한 진압을 막고, 혹시 일어날지 모를 충돌을 막기 위해 나섰다. 변호사들이 노란 조끼를 입고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시민들이 의지와 위안을 얻는다고 본다. 극우 유튜버들 때문에 국지적 충돌이 있었다. 주취자분들이 국회 담을 넘으려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다. 경찰도 지금은 집회의 자유를 어느 정도 보장하는 상황이라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 그러나 개별적으로 행동하기보다는 큰 깃발이 있는 곳 위주로 모이는 게 낫다. 만약 경찰이 카메라를 들고 채증을 하려 하면,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시위가 아니므로 채증하면 안 된다’고 적극 항의해도 된다.”
“44년 전 그때처럼”
광주전남정치개혁연대 박노원, 이철호, 박진권, 차영수씨 등 15명

“오늘(12월14일) 오전부터 여의도공원 인근에서 ‘오월 떡’과 고흥 유자차를 나누어주고 있다. 광주 시민들이 나흘 동안 성금을 모아 떡을 주문했다. 5월 항쟁의 기억을 되살려 원래 주먹밥을 준비할까 했다. 하지만 날이 너무 춥고 현장에서 제조하기 번잡할 것 같아 쌀의 의미를 되살려 떡으로 준비했다. 주먹밥이라 생각하고 가져가시면 좋겠다. 44년 전 그때 광주 시민들이 나누어 주었던 것처럼.”
“또 깃발 들고 나오게 될 줄이야”
매일매일 고양이자랑연합 유○○, 요일, 여구르르

“지인들끼리 연말 모임을 다른 장소에서 하려다가 국회 앞으로 바꿨다. 티셔츠도 맞췄다. 반팔이다. 여기서 입게 될 줄은 몰랐지만. 박근혜 탄핵 당시에도 ‘(사)국제헛웃음재단’이라는 걸 만들어서 깃발 들고 나왔는데 또 나오게 될 줄이야. 우리 중 한 명은 전남대를 졸업했다. 학교 정문에 5·18 계엄 당시 박힌 총탄 흔적이 있는데, 여지껏 별 감흥이 없다가 이번에 확 다가왔다. 미래로 나아가자! 정치 성향은 다를 수 있지만 많은 분들이 우리의 역사를 봤으면 좋겠다. 민주사회를 생각했으면 좋겠다. ‘알로하(사랑)’ 넘치는 곳에서 더불어 살고 싶다.“
“명령이니 복종해라? 거짓말이다”
해병대 예비역 연대 최진수씨(47·독립영화 감독)

“‘해병대 예비역 연대’는 채 상병 순직 사건을 계기로 결성된 조직이다. 채 상병의 죽음과 박정훈 전 수사단장에 대한 외압 의혹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국회 앞에 천막을 설치했다. 어떤 분은 우리더러 좌파라고 욕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 옳다고 믿는다. 나는 1990년대 중반에 군 생활 했고 ‘모든 명령은 들어야 한다’고 배웠다. 그러나 지금은 법률이 개정돼 옳지 않은 명령은 듣지 않아도 된다. ‘명령이니까 무조건 들어야 한다’고? 거짓말이다. 지금은 채 상병 사건을 다룬 독립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윤석열 탄핵 이후 조금 평온해졌을 때 기록하려 한다.”
“애국가 부를 때 연주하려 했는데”
거리에서 트럼펫 연주하던 길찬우씨(59·시내버스 기사)

“계엄령 선포와 그 이후의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분개하다가, 몸이 거의 자동적으로 이곳으로 움직였다. 지난달인가, 무인기가 북한에 침투할 당시 뭔가 이상했는데, 최근 사태를 보면 상황이 들어맞는 것 같다. 탄핵 가결 이후 시민들이 애국가 부를 때 연주하려고 트럼펫을 갖고 나왔다. 그런데 (탄핵 반대 집회를 연) 보수 단체 집회를 보고 옆에서 야유의 뜻으로 불고 있다.”
“네가 크면 (여기) 잘 왔다고 생각할 거야”
아이와 생애 첫 집회 나온 최태영씨(44)

“서울 노원구에서 아내와 아홉 살 아들과 함께 여의도를 찾았다. 오늘(12월7일) 아침 윤석열 대통령의 담화 영상을 보고 나올 결심을 했다. 자리에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국민들 의사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생애 첫 집회 참석이다. 계엄이 선포되던 날 밤, 새벽 5시까지 잠들지 못했다. 무서웠다. 이러다 독재국가가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아이에게 오늘 집회 참석의 의미를 설명했다. ‘네가 커서 돌아보면, 그때 그 역사적 현장에 있었고, 잘 왔다고 생각할 거야. 아빠는 정치의 중요성을 늦게 알았지만 너는 아빠보다 조금 더 일찍 그 중요성을 깨닫고 깨어 있는 국민으로 살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해주었다.”
※12·3 쿠데타 제보 받습니다.
〈시사IN〉은 12·3 쿠데타 취재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12·3 쿠데타와 관련한 대통령실 또는 군의 움직임을 알거나 목격한 분들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는 123@sisain.co.kr 메일로 해주세요. 이 메일은 해외 서버를 사용합니다. 제보자의 신원은 철저히 보호됩니다. 제2의 12·3 쿠데타를 막기 위해서라도 〈시사IN〉은 전모를 끝까지 취재하겠습니다. 〈시사IN〉은 기록의 힘을 믿습니다.
거리편집국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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