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갈 때 성과급 잔치 벌이더니...엔씨소프트 26년 만에 첫 적자 '비상'

이석 기자 2024. 12. 2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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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대표 체제 1년…실적·주가 폭락에 백약이 무효인 ‘택진이 형’ 리더십
신작 실패·구조조정에도 반등 기미 없어…라이벌 넥슨·넷마블은 최고 실적

(시사저널=이석 기자)

엔씨소프트는 지난 11월초 충격적인 3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4231억원→4019억원) 줄어들었고, 영업이익은 12년 만에 처음으로 분기 적자(165억원→-143억원)를 기록했다. 3분기 누적 실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매출은 12.9%(1조3421억원→1조1687억원), 영업이익은 84.8%(1334억원→203억원)나 각각 감소했다. 투자자들은 주가로 반응했다. 2021년 고성장기 때 100만원을 웃돌던 엔씨소프트 주가는 현재 20만원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2024년 엔씨소프트의 영업적자가 현실화할 것으로 증권 업계는 점치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2024년 엔씨소프트의 추정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1조6036억원과 -238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창업자인 김택진 대표가 회사를 설립한 1997년과 이듬해인 1998년 이후 26년 만에 처음 영업적자를 기록하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23년에 이어 2024년에도 엔씨소프트 매출이 역성장하고, 영업이익은 26년 만에 적자 전환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분당 본사 ⓒ시사저널 사진자료
엔씨소프트 김택진 창업자 ⓒ연합뉴스

2023년 말부터 강도 높은 구조조정

엔씨소프트 측은 "영업적자가 희망퇴직 위로금 지급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고 해명한다. 엔씨소프트는 2023년 말부터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벌였다. 지금까지 회망퇴직과 권고사직 등을 통해 회사를 떠난 직원들만 10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병무 VIG파트너스를 영입하면서 처음으로 공동대표 체제도 도입했다. 김 대표는 게임 개발에 집중하고, 신임 박병무 대표는 인수합병(M&A)과 경영 효율화에 집중한다는 복안이었다. 인력 구조조정 역시 이 경영 효율화 조치의 일환으로, 구조조정이 마무리되면 새해부터는 고정비를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으로 회사 측은 기대하고 있다.

그동안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가족경영 체제도 손봤다. 김 대표의 부인인 윤송이 엔씨문화재단 이사장과 남동생인 김택헌 총괄부사장이 지난 1월 최고전략책임자(CSO)와 최고퍼블리싱책임자(CPO) 자리에서 물러났다. 8월에는 두 사람이 해외사업을 책임져 왔지만 적자였던 엔씨웨스트와 엔씨아메리카, 엔씨재팬, 엔씨타이완 대표직에서도 물러났다. 박 대표를 비롯한 새로운 인물들이 이들의 빈자리를 채웠다. 때문에 주요 증권사들은 인력 구조조정에 따른 고정비 감소와 사업 체질 개선으로 엔씨소프트의 실적이 새해에 반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분위기다. 증권사별로 금액은 차이가 있지만 엔씨소프트의 목표주가는 대부분 상향 조정된 상태다.

현실은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구원투수 등판과 대대적인 구조조정에도 엔씨소프트의 경영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엔씨소프트 측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박병무 대표 취임 시기가 경영적으로 가장 어려움을 겪을 때였기 때문에 당장 가시적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경영 쇄신과 함께 신작 게임 개발 작업이 최근 본격화되고 있는 만큼 새해나 후년에는 어느 정도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의 시각은 달랐다. 이미 오래전부터 박 대표가 회사 일에 관여했기 때문이다. 회사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업계 관계자는 "박 대표는 2000년도 중후반부터 엔씨소프트 사외이사와 고문을 맡았다"면서 "대표이사를 맡은 지 1년 밖에 안 돼 시간이 부족하다는 회사 측 해명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공동대표 체제의 시너지 효과에 대해서도 물음표를 던졌다. 권상집 한성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김택진 창업자는 회사 설립 이후로 한 번도 CEO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내준 적이 없었다. 27년간 유지한 원칙을 깰 만큼 회사 상황이 다급했다는 얘기"라면서 "두 대표의 관점이나 살아온 이력이 많이 다른 만큼 향후 의사결정 과정에서 충돌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는 상태"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엔씨소프트의 대표 브랜드인 '리니지' 지식재산권(IP)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엔씨소프트가 최근 한국을 비롯한 249개국에서 동시 출시한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저니 오브 모나크'가 대표적이다. 이 게임은 리니지의 IP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출시 이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출시 직후에는 구글 플레이스토어 무료 게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기존 리니지 시리즈와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게이머들이 등을 돌렸다.

2024년 3월 취임한 박병무 엔씨소프트 공동대표 ⓒ연합뉴스

신작 게임 잇단 실패로 김택진 리더십 '흔들'

위정현 중앙대 가상융합대학장(한국게임학회장)은 "'택진이 형'으로 불리며 젊은 층에게 추앙받던 김택진 리더십의 한계를 보여준 대표적 사건이다. 엔씨소프트가 아직까지 리니지 라이크(리니지류의 게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리니지 기반의 모바일 게임인 리니지M과 리니지M2, 리니지W 등은 한국과 일본, 대만 등 일부 국가에서만 인기를 끌었다. 이런 게임을 전 세계에서 동시 출시한다는 발상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면서 "최근 계속되고 있는 경영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엔씨소프트가 무리수를 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새로운 게임 개발 시도가 성공한 것도 아니다. 김택진 대표가 개발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호연'과 '배틀크러쉬' 등도 최근 잇달아 흥행 참패를 겪었다. 리니지 라이크의 성공에 취해 신작 게임 개발을 게을리했기 때문이다. 요컨대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엔씨소프트는 사상 최대 매출을 올렸다. 리니지M과 리니지W 등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연간 1조원의 수익을 안겨줬다.

김택진 대표를 포함한 경영진은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김 대표의 경우 연봉과 주식 배당으로 2022년 한 해에만 300억원 가까운 돈을 받기도 했다. 직원들에게는 연봉을 1000만원(개발자 1300만원) 일괄적으로 인상하고, 정기 성과급과 함께 특별 인센티브로 800만원을 4000여 명의 임직원에게 지급했다. 하지만 이 성공이 오히려 엔씨소프트에 독이 됐다. 리니지 DNA에 심취해 새로 개발하는 게임에도 이 스타일을 버리지 못했다는 것이 위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주주총회와 유튜브 방송 등을 통해 이런 문제를 여러 차례 지적했지만 김 대표는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면서 "최근 엔씨소프트의 경영이 어려워진 것도 따지고 보면 잘나갈 때 대비하지 않고 돈잔치를 벌였던 김 대표의 과가 크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엔씨소프트와 함께 국내 게임 업계 '3대장'으로 꼽히는 넥슨과 넷마블의 경우 엔데믹 이후에도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 도쿄증권거래소에 상장해 있는 넥슨의 3분기 누적 매출은 3조2727억원을 기록했다. 창사 아래 최대 규모로 전년 동기 대비 8.1%나 성장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조1243억원으로 SKT, KT, LG유플러스 등 국내 통신 3사나 포털 공룡인 네이버를 앞질렀다. 20년간 장수한 넥슨 IP '메이플스토리'의 3분기 해외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23.0% 증가한 게 주효했지만, 신작 효과도 적지 않았다. 지난 5월 중국 현지에서 론칭한 '던전앤파이터'의 경우 매출이 142.0% 늘어났다. 이런 추세라면 넥슨은 올해 사상 처음으로 연매출 4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증권가는 기대하고 있다.

2023년 말 기준으로 2년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했던 넷마블 역시 2024년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된다. 3분기 기준 넷마블의 누적 매출과 영업이익은 2조148억원과 1804억원을 각각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9.7%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흑자로 전환됐다. 눈에 띄는 것은 해외 매출 비중이다. 넷마블의 지역별 매출 비중은 북미 43%, 유럽 13%, 동남아 8%, 일본 7%, 기타 6%다. 한국(23%)을 제외한 해외 매출이 77%에 이른다. 북미와 유럽시장 매출이 전체의 7% 수준인 엔씨소프트와 비교되고 있다. 때문에 증권 업계는 2024년 넷마블의 매출이 사상 최대를 찍고, 영업이익 역시 사상 최고 수준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도 열려 있어

넷마블 역시 구조조정 노력과 함께 재도약을 위한 신작게임 개발에 매출의 20~30%를 투자한 게 높게 평가되고 있다. 이창영 유안타증권 애널리스트는 "넷마블은 인력 구조조정으로 인건비가 3.6% 감소했지만, 신작 게임 흥행으로 매출이 9.7% 증가하면서 1인당 생산성 향상을 이끌었다"면서 "무엇보다 30%의 높은 모바일 플랫폼 수수료 절감을 위해 PC게임에 승부수를 둔 것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엔씨소프트에 대한 전망은 이들 회사와는 반대다. 지난 4월 엔씨소프트의 신용등급 전망을 기존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한 한국신용평가는 엔씨소프트의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까지 내비쳤다. 한때 20%를 웃돌던 영업이익률은 2024년 –1.49%까지 추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경우 K게임 대표 브랜드인 엔씨소프트의 경쟁력이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영빈 선임애널리스트는 "엔씨소프트는 리니지 시리즈의 IP를 핵심 수익 기반으로 보유하고 있는데, 2022년을 기점으로 모바일게임 시장 성장이 둔화한 데다 회사의 경쟁 우위도 약해졌다"면서 "연간 영업이익이 5000억원 이하인 상태가 지속되고 대규모 투자로 재무 여력이 크게 나빠질 경우 신용등급 하향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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