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연장 강행땐 세대갈등… ‘오래 일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을” [‘연공형 정년연장’ 안된다]

이근홍 기자 2024. 12. 27.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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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공형 정년연장’ 안된다 - (下) 노동현장 전문가 좌담회
이제경 100세경영연구원 원장
“‘60년 커리어 시대’에 정년연장에만 매몰되면 오히려 독 될 수 있어”
김명호 우리함께노동조합 위원장
“관련 제도 정비 없이 법적 정년연장 강행하면 사회적 혼란 반복”
김건 신전대협 공동의장
“정년연장 문제 과거 ‘노사갈등’에서 ‘세대갈등’으로 번져”
‘정년 연장’ 해법은… 문화일보는 지난 24일 서울 중구 문화일보 사옥에서 초고령 사회와 정년연장을 주제로 한 현장전문가 좌담회를 진행했다. 왼쪽부터 이제경 100세경영연구원 원장·김명호 우리함께노동조합 위원장·김건 신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공동의장. 백동현 기자

사회·정리=이근홍 기자 lkh@munhwa.com

한국이 초고령 사회(총인구 중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중 20% 이상)에 진입하면서 정년연장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 23일 기준 국내 65세 이상 주민등록 인구는 1024만4550명으로, 전체 주민등록 인구(5122만1286명)의 20.0%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충분한 준비와 사회적 합의 없이 정년연장 등 문제를 법으로만 강제하려 한다면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또 “한국이 짧은 기간 급속한 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유지해온 강력한 연공형 임금체계 등 특유 노동환경을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오래 일할 수 있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고 제언했다.

문화일보가 24일 서울 중구 새문안로 문화일보 사옥에서 정년연장 해법을 찾기 위해 진행한 현장 전문가 좌담회에는 김건 신(新)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신전대협) 공동의장, 김명호 우리함께노동조합 위원장, 이제경 100세경영연구원 원장 등이 참여했다.

―최근 법정 정년연장에 대한 논의가 재점화하고 있다.

△김 공동의장 = 현시점에서 임금체계 개편 없는 추가적인 법정 정년연장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 출생아 수는 2007년 50만 명에 이어 2022년에는 25만 명 밑으로 떨어졌다.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2020년 기준 전체 인구의 72.1%에서 2050년에는 51.1%까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경제활동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정년연장 방안이 제기될 수 있으나, 연공급 임금체계 등 기존 시스템을 유지한 채 단순히 정년만 연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김 위원장 = 노동계에서도 다양한 요구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년연장을 또다시 법으로 강제하면 국가 차원의 리스크와 소모전을 겪을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정년연장과 관련한 제도들을 정비하지 않고 모든 걸 법으로만 강행하려 한다면 2016년 정년 60세 의무화가 본격 도입된 뒤 나타났던 사회적 혼란이 반복될 수도 있다.

△이 원장 = 정년연장은 기업 경쟁력 확보와 근로자 보호라는 두 가지 큰 틀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현시점에서 보면 법정 정년연장이 이 두 가지 모두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 같지 않다. 우리 사회가 초고령사회로 접어들며 기존 ‘80세 삶에서 40년 커리어 시대’였던 것이 이제는 ‘100세 삶에서 60년 커리어 시대’로 변해가고 있다. 이는 기존에 ‘학습-일-은퇴’였던 인생의 주기가 앞으로는 ‘학습-일-학습-일-은퇴’로 전환되는 것인데, 전체 라이프 사이클 관점에서 단순히 법정 정년연장을 몇 년 더 늘리냐 하는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고령자 고용 문제를 크게 보지 않고 정년연장에만 매몰돼 다른 논의를 미룬다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사회적으로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

△김 공동의장 = 연공형 임금체계 문화가 타파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특히 연공 문화가 강하다 보니 과거에는 정년연장을 얘기하면 ‘노사갈등’으로 인식됐는데 이제는 ‘세대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청년세대가 열심히 취업 준비를 해도 연공형 임금체계 개편이 전제되지 않은 정년연장이 이뤄지면 신규채용은 경색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김 위원장 = 본질적으로 지금 논의되고 있는 정년연장이 우리나라 근로자의 81%를 차지하는 중소기업 근로자에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다. 대기업 노동자는 대규모로 조직된 노조가 방패막이로 있기 때문에 노동시장의 유연화 등을 전제로 한 정년연장을 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겠지만, 중소기업 노동자는 향후 어떤 불이익을 받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며 몇몇 대기업을 위한 것이 아닌 모두가 함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이 원장 = 단순 정년연장을 넘어 중장년 고용 활성화·지속가능한 일자리 등을 구축하려면 시니어를 위한 정부 차원의 재교육이 중요하다. 지금도 다양한 재취업 지원 프로그램이 있지만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과거보다 20년 이상 일을 더 하려면 새로운 로드맵을 짤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줘야 한다.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할 고령자 계속고용 방안을 제시한다면.

△김 공동의장 = 현실적으로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연공형 임금체계 개편이 먼저 해결되지 않으면 법정 정년연장 등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 대기업 노조 위주의 정년연장 논의는 정치적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김 위원장 = 법을 개정해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는 건 청년세대 취업에 충격을 줘 세대 간 갈등을 조장할 수 있고, 나아가 이 같은 요구가 대중에 이기적으로 비칠 수도 있다. 이제는 노조도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고령자 계속고용이라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 원장 = 역시 고령자의 새로운 커리어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건지가 중요하다. 개인적으로는 정부의 중장년 재취업 지원 프로그램 대상을 서울시 산하 ‘50플러스센터’처럼 현실적인 여건에 맞게 40대까지 낮출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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