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레전드 '열혈사제2'를 졸지에 시시하게 만든 짜릿한 '가족계획'
[엔터미디어=소설가 박진규의 옆구리tv] 한국에서 사적제재 드라마는 최근 몇 년 간 가장 흥한 콘텐츠라고 볼 수 있다. 뻔한 로맨스물에 질린 시청자나 너무 무거운 스릴러 형사물이 부담스러웠던 시청자들도 안착하기 좋은 장르이기 때문이다.
사적제재 드라마는 현실 반영 요소도 있는 한편 권선징악의 성격도 강하기 때문에 시원한 사이다를 마신 것 같은 기분을 주는 게 특징이다. 여기에 메인서사는 아니어도 적절한 로맨스나 휴먼드라마의 분위기를 낼 수도 있다. 워낙에 사적제재 드라마가 흥했기 때문일까? 대한민국에는 비상계엄을 사적제재 판타지로 착각해 실행한 대통령까지 있을 정도다.
2019년 방영한 SBS <열혈사제>는 드라마상에서 시작한 사적제제 코믹물의 상징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경건한 사제인 동시에 또라이 같은 성격의 미카엘 김해일(김남길)이 주인공인데, 그는 억울한 사람을 돕고, 경찰이 손을 못 쓰는 악을 처단하면서 멋진 히어로로 재탄생한다.
<열혈사제>의 성공 이후 수많은 사적제재 드라마들이 흥행을 거듭했다. 택시기사가 주인공이 될 때도 있고 최근에는 악마가 판사가 되어 사적제재를 가할 정도다. 그리고 전설의 시작 <열할사제>가 5년 만에 시즌2로 돌아왔다.
큰 관심 속에 돌아온 <열혈사제2>는 아쉽게도 시청률은 호조를 보여도 시청자의 반응이 썩 호의적이진 않다. 일단 수많은 사적제재 코믹물이 이어지면서 <열혈사제>가 그리는 범죄자의 캐릭터나 사건 구조 역시 비슷해진 감이 있다.
또한 SBS의 전작 드라마 <지옥에서 온 판사>의 악마 판사 강빛나(박신혜)는 박신혜의 호연과 웹툰 원작도 아니면서 웹툰 판타지의 만화 같은 요소를 과감하게 차용해서 시청자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반면 전작의 화려한 판타지와 강렬한 폭력 장면들 때문인지 <열혈사제2>는 일단 풀이 죽은 채 시작했다. 더구나 이미 <열혈사제>만의 매력은 시즌1에서 모두 보여주었으니, 그것이 신선하고 새로울 리는 없다.
하지만 그것만이 문제는 아니다. <열혈사제2>는 여전히 <열혈사제1>의 분위기에 갇혀 있다. 사실 그간 사적제재 드라마도 성장하면서 추리물의 성격이 촘촘해지거나 주인공의 성격이 입체적으로 그려졌다. 아니면 <모범택시> 시리즈처럼 사건 해결은 간단해도 현실적인 범죄를 그리는 과정은 디테일하다. 혹은 판타지 요소를 적극 활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열혈사제2>에서 김해일과 구대영(김성균)이 보여주는 사적제재의 전개는 밋밋한 감이 있다. 그 밋밋함을 코믹한 상황과 말장난 같은 대사로 채우지만 심심한 건 어쩔 수 없다.
반면 쿠팡플레이의 6부작 금요드라마 <가족계획>은 사적제재 드라마가 여전히 새로울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특교대에서 해결사로 길러진 브레인 해커 능력자인 영수(배두나)는 브레인 해킹을 이용해 악의 무리에 사적제재를 가한다. 그들은 영수의 능력에 의해 환상 속에서 고통 받으면서 그것이 현실로 이어진다. 현실에서 고통이 끝나도 그 고통도 마음속에서 이어지는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를 비슷한 방식으로 갚아주는 식이랄까? 여기에 영수의 가족 역시 특교대 출신으로 이뤄져 있다. 남편 철희(류승범)를 비롯해 할아버지 강성(백윤식) 역시 특교대 출신이다. 여기에 자녀 지훈(로몬), 지우(이수현) 역시 특교대의 갓난아이를 영수가 데리고 나와 기른 것이다.
<가족계획>은 사적제재 코믹물하면 떠오르는 서사들을 바탕에 깔고 있지만, <열혈사제2>를 포함해 흔한 <열혈사제> 아류의 분위기가 아니다. 언뜻 미드 <엄블레라 아카데미>가 떠오르기도 하는 이 드라마는 그만큼 독특하지만 훨씬 한국적이다. 한국적인 인간관계를 잘 보여주고, 한국식의 인터넷 유머와 밈의 요소들을 드라마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래서 한없이 가벼운 것 같지만 배두나와 백윤식의 유니크한 연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적제재 드라마와는 느낌이 달라진다.
인물들이 품고 있는 암울하면서 코믹한 분위기도 이 드라마가 개성 넘치는 이유다. 여기에 특교대라는 한국의 과거사가 떠오르는 소재까지 판타지로 적절하게 활용했다. 말도 안 되지만, 은근히 현실감이 느껴지는 건 그런 이유. 그런 까닭에 <가족계획>은 사적제재 서사의 바탕을 깔고 있어 따라가기는 쉬운데, 수많은 독특한 요소들이 그 위를 덮고 있어 따라가다 보면 내가 무슨 드라마를 보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이른다. 시청자가 사이다를 마시는 게 아니라 브레인 해킹을 당하는 기분인데, 그게 은근히 짜릿하다.
칼럼니스트 박진규 pillgoo9@gmail.com
[사진=쿠팡플레이,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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