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尹 버티기’에도 체포영장 카드 못 꺼내드는 이유
법조계 “수사 기록 검토 미진한 상황에서 영장 청구하긴 힘들 것”
(시사저널=이태준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2차 출석 요구를 끝내 거부했다. 오동운 공수처장이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가능성까지 언급했던 만큼, 이번만큼은 조사가 이뤄지지 않겠느냐는 국민적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탄핵심판이 우선"이라는 이유로 수사에 응하지 않았고, 이에 대해 공수처가 미온적 반응을 보이자 조속한 사태 수습을 바라는 대다수 국민의 실망감도 커지는 모습이다.
12월26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와 경찰 국가수사본부, 국방부 조사본부로 구성된 공조수사본부(공조본)는 윤 대통령에게 25일 오전 10시 정부과천청사에 출석해 내란 우두머리(수괴),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를 받는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으라고 통보했지만, 윤 대통령은 출석하지 않았다. 공수처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현실적으로 대통령이 출석한다고 해도 나 홀로 하는 게 아니지 않냐"며 "그런 부분을 포함해 변호인이나 대리인 측의 반응, 선임계가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을 포함해서 보겠다"고 말했다.
공수처는 조사 전이니만큼 정확한 질문지 분량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이날 오전 10시 출석을 전제로 종일 조사가 이뤄질 정도의 상당한 양의 질문지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공수처는 윤 대통령에게 12월18일 조사를 받으라며 1차 출석을 요구했지만 이에 응하지 않자, 25일 출석할 것을 재차 요구했다.
사건 이첩만 받고, 수사 자료는 못 받아
윤 대통령 측은 국회가 탄핵소추한 만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수사보다 우선이란 입장이다.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조사실 내 수사기관과의 문답이 아닌 공개 법정의 탄핵심판 절차를 통해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윤 대통령 측은 변호인단 구성에도 시간이 걸리고 있다며 아직 공수처에 변호인 선임계도 내지 않은 상태다. 공수처도 대통령실에서 조사와 관련해 별도 연락은 없었다고 밝혔다.
공수처 관계자는 체포영장 청구 등 강제 신병 확보 가능성에 대해 "일반 수사기관은 (피의자를) 세 번 부르는 게 통상 절차지만, 여러 가지 고려 사항이 있어 통상 절차를 따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언급했다. 이 관계자는 또 "체포영장 단계는 너무 먼 얘기인 것 같다. 아직 검토할 게 많다"고 밝혔다. 공수처가 당초의 강경 대응 입장에서 후퇴한 게 아니냐는 비판적 시각을 의식했음인지 이 관계자는 "다음 절차가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어서 먼 얘기라는 것이고, 체포영장만 두고 말한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공수처의 대응이 예전 같지 않다는 지적은 계속 나온다. 앞서 오 처장은 12월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해 '내란 피의자인 윤석열을 구속할 의지가 있냐'는 질의에 "내란죄에 해당하는 부분은 적극적으로 수사하고 신병 확보에 노력하고 있다"고 강한 의지를 밝힌 바 있다. 12월24일 윤 대통령이 이튿날 출석하지 않을 것이라는 소식이 알려지자 공수처 주변에서 체포영장 가능성이 언급됐지만 공수처는 윤 대통령에게 29일 오전 10시까지 출석해 달라며 3차 소환을 통보했다.
12월18일 오동운 공수처장과 심우정 검찰총장은 윤 대통령과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수사는 공수처가 진행하는 것으로 사건 이첩을 협의했다. 이후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윤 대통령과 이 전 장관의 내란 사건과 관련한 고발장 등 기초 자료를 공수처로 보냈다.
공수처는 수사를 위해 관련 자료가 모두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검찰은 관련자 수사가 계속되고 있어 기록을 넘겨줄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이에 따라 당분간 검찰과 공수처가 주요 수사 기록 송부 등 협조 범위를 두고 신경전을 이어갈 전망이다. 현재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핵심 관계자들의 신병을 확보하며 관련 수사 자료들을 선점하고 있는 것은 검찰이기 때문이다.
공수처가 일단 윤 대통령 사건을 이첩받는 데는 성공했지만, 협의 과정에서 수사 자료 대다수를 넘겨받는 것까지 논의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 출신 안영림 변호사(법무법인 선승)는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 자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피의자 소환조사를 한다 하더라도, 유의미한 진술을 얻어내긴 힘들 것"이라며 "오동운 처장이 이첩 협의를 하는 과정에서 디테일한 부분까지 협상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 수사 준비가 확실히 되어 있지 않기에 이른 시일 내에 체포영장을 청구하는 것 역시 힘들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윤 대통령 소환이 보여주기 식으로 비춰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집행하면 48시간 이내에 구속영장을 청구하거나 풀어줘야 한다. 지금처럼 자료 준비가 미진한 상황에서 영장을 청구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했다.
'특검 필요성' 불거질 것…"공수처 존폐론도"
공수처는 윤 대통령이 3차 소환통보에도 응하지 않을 경우 체포영장 청구 카드를 꺼내들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윤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 신분이니만큼 실제 집행으로 이어지긴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경찰 수장과 국방부 관계자들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것도 공조본에 대한 국민 신뢰를 약화시키고 있는 대목이다.
12월19일 오후 우종수 국수본부장과 수사라인 관계자들은 '12·3 비상계엄 체포조'를 운영했다는 이유로 검찰에 압수수색을 당했다. 여기엔 '윤 대통령과 공모 관계'에 대한 내용이 적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 본부장 등은 압수수색 당시 참고인 신분이었지만, 수사 경과에 따라 피의자로 전환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조사본부는 계엄 당시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 요청에 따라 군사경찰 수사관 10명을 출동시킨 의혹을 받는다. 검찰은 수방사 벙커 내 구금시설을 관리하는 국방부 조사본부가 군 체포조와 관련한 연락을 주고받고, 수갑을 챙겨 현장에 출동한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파악했다. 방첩사와 경찰이 주요 정치 인사를 체포하면 국방부 조사본부가 이들을 구금하려 한 것은 아닌지 검찰은 의심한다.
법조계 주변에선 공조본이 윤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지 못하면 정치권에서 '특검 필요성'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것으로 본다. 형사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한 변호사는 "윤 대통령 사건에 대한 이첩 협의를 했더라도 수사기관 간 협조가 잘되지 않고, 수사가 미진할 경우 특검이 대안으로 거론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남언호 변호사(법률사무소 빈센트)는 "공수처가 대중으로부터 '수사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선 수사 역량을 결집하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며 "법에서 가장 엄하게 다루는 내란죄를 수사하게 된 만큼 기관의 존재 이유를 보여주지 못한다면, 향후 '공수처 존폐론'이 불거질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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