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신이세요?” 총 든 계엄군·국회 장악 시도… 2024년 한국 맞나 [박수찬의 軍]
“윤석열은 왜 계엄을 한 거죠. 그게 될 줄 알았나요?” 12.3 비상계엄 사태 직후 기자가 만난 사람들로부터 여러 차례 받은 질문이다.
수십년간 군에서 복무한 군인들은 왜 그런 판단을 했을까.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기 어려운 한국군 조직문화, 외부 통제가 제대로 미치지 않는 군 조직의 특성 등이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진급 걸린 상황에서 쓴소리 가능할까
계엄 당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경기 성남시 판교에 있는 정보사 100여단에 구삼회 2기갑여단장과 방정환 국방부 정책기획차장 등을 보냈다.
노 전 사령관은 ‘롯데리아 회동’ 4인방 중 정보사 김봉규(육사 49기)·정성욱(육사 52기) 대령에게 중·소령급 정보사 장교 35명을 뽑아 놓으라고 지시했다. 정보사 내 사조직 ‘수사 2단’에서 일할 사람들이었다.
이들을 포섭한 동력은 진급이었다. 구 여단장은 수사기관 조사에서 “몆 달 전부터 노 전 사령관이 전화해 진급 이야기를 하며 ‘김용현 장관이 네게 국방부 TF 임무를 맡기려 한다’는 말을 반복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에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장교라면 소령까진 무난히 진급할 수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인구 절벽’과 군 구조 개편으로 장병 숫자가 줄어들면서 부대 통폐합이 이뤄졌다. 정부는 군무원 비중을 확대하고 민간 아웃소싱을 늘렸다.
이는 간부 정원 감소로 이어졌다. 진급을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양질의 보직 숫자가 많지 않은 비전투병과(정보, 군수, 인사, 통신, 공병 등)는 경쟁이 더욱 치열하다.
계급 사회인 군대에서 진급은 간부의 직무, 급여, 복지, 정년 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계급이 높아지면 군대에 오랫동안 남을 수 있고, 대우도 더욱 좋아진다.
임관하고 장기복무 코스에 진입해서 어떻게든 진급을 거듭해 장군이 되고, 전역한 뒤 국립묘지에 묻히는 것에 매달리게 되는 이유다.
문제는 진급에 유리한 기반을 확보하는 인원은 소수라는 점이다.
진급에는 근무평정과 지휘추천 등이 중요한데 근무평정은 상급자, 지휘추천은 지휘관이 한다. 진급 당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상급자와 지휘관에게 있는 셈이다.
이는 간부들이 상급자나 지휘관의 의견에 다른 뜻을 표시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상급자와 지휘관의 심기를 거스르면 진급이나 보직에 불이익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군 본연의 임무 대신 상급자나 지휘관 의도에 맞는 성과 위주 업무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다. 정보사와 방첩사 관계자들이 대거 계엄 사태에 연루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한 예비역 장교는 “상사의 지시에 이의제기했다가 찍히면 군 조직에서 버티기 어렵다”며 “소신을 지키면서 군을 떠나든지, 지시대로 행동하며 군에서 버티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진급과 보직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 상급자와 지휘관에게 집중된 권한 등은 근무평정이나 지휘추천에서 밀려날 위험이 있는 사람들이 ‘비선’의 유혹에 직면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근무평정도 지휘추천도 잘 받기 어렵다면, 이를 만회할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 전 사령관은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과 매우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 그런 사람이 진급과 보직을 거론하며 이야기를 하면, 장교들은 귀가 솔깃할 가능성이 있다.
군 관계자는 “진급에 목을 맬 만한 사람들, (계엄 성공이) 자기 군 생활에 영향을 미칠 사람들이 계엄에 관여한 게 아니냐”며 “지금 정부에서 노 전 사령관의 영향력이 입증됐거나 나름 근거가 있으니까 나머지 사람들도 다 따라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군 인사제도가 학연, 지연, 근무연, 출신연 등을 배제한 채 능력과 도덕성에 기반해 공정하게 운영됐다면 노 전 사령관의 행동은 시도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번 비상계엄에서 가장 큰 특징은 국군정보사령부가 전면에 등장했다는 점이다.
1945년 해방 이래 여러 차례 비상계엄이 있었지만, 해외 군사정보 수집 및 공작을 담당하는 정보사가 계엄 정국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정보사의 정치 개입이 다른 군 조직보다 훨씬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외면한 결과다.
군의 정치 개입과 관련해서 정치권과 민간 정부는 국군보안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의 힘을 빼는데 주력했다. 유신 정권 시절엔 경호실장, 중앙정보부장과 더불어 3대 권력기관장으로 불렸다. 12.12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도 보안사령부를 기반으로 권력을 잡았다.
군사정권이 막을 내린 이후 보안사는 국군기무사령부로, 문재인정부 시절엔 계엄령 문건 여파로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개편됐다가 현재는 방첩사령부로 변경됐다. 이 과정에서 방첩사는 지속적으로 힘이 빠졌다.
수도방위사령부나 특전사령부는 합참 등의 통제를 받지만, 정보사는 통제 강도가 상당히 느슨하다. SI(특수정보) 때문이다.
SI는 감청이나 위성 촬영, 스파이를 동원한 휴민트(인간 정보·HUMINT)로 수집한 특별취급 첩보다. 조각 조각의 첩보가 모여 유의미한 정보가 된다.
정보사는 휴민트를 중심으로 SI를 수집한다. 방첩사 등에서 정보사의 활동을 확인하려 해도 정보사가 SI 취급 인가 문제를 거론하면 가로막힐 수밖에 없다.
정보사가 본연의 임무에만 몰입한다면 기밀 유출 위험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일각에서 “문재인 정부가 기무사를 해편(해체 후 재편성)할 게 아니라 정보사를 바꿨어야 했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정보가 있고, 공작을 기획하는 인력이 있으며, 이를 실행할 특수요원부대도 갖춘 정보사를 그대로 뒀다는 비판의 의미다.
군 안팎에선 “정보사를 개편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보사 블랙요원 기밀 유출 사건과 하극상 사건에 시달린 정보사는 내부 조직이 어수선해졌다. 여기에 비상계엄 사태가 더해지면서 상당한 기밀이 노출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북한을 비롯한 잠재적국도 아는 국내 정보기관의 기밀과 조직 구성은 쓸모가 없다. 이를 방치하면 북한의 역공작에 노출될 위험만 키울 뿐이다.
이번 기회에 정보사 편제를 대폭 개편해 조직 분위기를 쇄신하고, 인적 구성을 다양화하면서 정부와 군 수뇌부의 통제력을 강화하며, 준법 의식을 구성원들에게 심어줄 필요가 있다.
방첩사가 과거 기무사령부에서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해편하는 과정을 거치며 법의 테두리 안에서 활동하는 것을 중시하게 된 것처럼 정보사도 이와 유사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12.3 비상계엄 사태는 수십년간 한국군이 노력해왔던 정치적 중립의 가치를 의심받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군에 대한 문민통제와 인사제도, 군사기밀에 가려진 정보사의 비밀스런 특성을 개편하지 않는다면, 헌정질서를 무력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저지하기가 어려워질 수 있다. 2024년이 저물어가는 지금, 군의 개혁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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