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계엄 지시한 ‘삼청동 안가’…박정희 군사정권의 유산
음모·공작·밀실정치의 상징
윤석열 대통령의 ‘12·3 내란사태’와 관련해 소환되는 장소가 있다. 바로 서울 삼청동 ‘안전가옥(안가)’이다. 검찰과 경찰 수사에서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3시간여 전인 3일 저녁 7시에 조지호 경찰청장, 김봉식 서울경찰청장을 불러 계엄 지시사항을 전달했다고 한다. 4일 저녁 비상계엄 해제 뒤 후폭풍이 불자 윤 대통령이 박성재 법무부 장관, 김주현 대통령실 민정수석, 이완규 법제처장,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과 회동한 곳도 삼청동 안가다. 독재, 밀실정치, 음모, 대통령 시해 등 한국 현대사의 짙은 그림자가 깃든 안가가 윤 대통령에 의해 2024년에 다시 소환된 것이다.
“여러 가지 불행한 일들이 생긴 곳”
“3공화국 때부터 역대 군사정권이 애용하고 이용해왔던 장소입니다. 여기에서 밀실정치가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에서 여러 가지 불행한 일들이 생겼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93년 3월4일 안가를 공개하며 한 말이다. 김 전 대통령은 당시 서울 궁정동, 청운동, 삼청동에 있던 12채의 안가를 철거하고 그 공간을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당시 궁정동 안가의 영빈관, 한국관 등이 공개됐는데 고급 소파, 침대와 화려한 샹들리에 등 화려한 내부가 화제가 됐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살해한 10·26 사건이 벌어진 곳도 궁정동 안가다. 전두환 대통령이 1983년 일해재단 설립을 결정한 곳도 안가였다. 전두환·노태우 대통령 시절, 기업 총수들이 거액의 정치자금을 건넨 곳도 대부분 청와대가 아닌 안가였다고 한다. 모두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풍경이 안가에서 연출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삼청동 안가 한 채는 남겼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재임 기간에 안가를 자주 찾지 않았다고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호 등의 이유로 당선자 시절 삼청동 안가에서 거주하며 테니스를 즐겨 쳤다. 이후 취임 뒤에도 정치인, 언론인들을 이곳에서 자주 만나고, 비공개 회의도 많이 가졌다고 한다.
박근혜 국정농단과 윤석열의 내란 모의가 벌어진 곳
지금의 삼청동 안가는 원래 친일파 민영휘의 아들 민규식 소유로 2009년 공매로 나온 물건을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이 사들였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2월 대통령 경호처가 근처 땅을 맞교환하는 형식으로 소유권을 넘겨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등기부등본을 보면 대지면적 1544㎡(468평)에 건평 294㎡(89평)의 2층 주택이다.
윤 대통령 이전에 안가가 주목을 받은 것은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때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수사에서 박 전 대통령은 삼청동 안가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당시 부회장) 등 기업 총수를 여러차례 만난 것으로 드러났다. 청와대와 달리 출입기록이 남지 않는 이곳에서 기업인들을 은밀히 만나 미르·케이(K)스포츠재단 설립 지원을 요청했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이어 ‘안가 정치’를 했다는 평가가 따라왔다. 당시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한 박영수 특별검사팀에서 윤 대통령은 수사팀장을 맡아 수사를 지휘했다.
안가의 ‘장점’을 익히 알았던 윤 대통령이 계엄 논의 장소로 안가를 택한 셈이다. 최근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정권 초기 삼청동 안가를 술집의 바(Bar) 형태로 개조하려 했다는 제보를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국민의힘과 대통령 경호처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확인되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이라고 부인했지만 권위주의 정부의 ‘독재자’를 연상시킨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윤 의원의 의혹제기가 주목을 받았다.
윤 대통령은 취임 전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을 발표하며 “청와대 공간의 폐쇄성을 벗어나 늘 국민과 소통하면서 국민의 뜻을 제대로 받들고자 약속드린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불통과 독선의 국정 운영과 안가 계엄 모의로 자신이 한 말을 모두 부정했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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