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입국을 거절당하다니..하지만 만국 공용어만 있으면 만사 ok"
튀르키예를 떠나기 전 마트에 들러 마지막 장을 봤다. 왠지 여기를 떠나는 것이 외국으로 출국하는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어 필요한 것을 다 하고 가야 할 듯한 느낌이다. 그만큼 우리에게 튀르키예는 편안하고 친숙한 나라였나보다.
엊그제 한인마트에서 구한 귀한 어묵으로 라볶이와 어묵탕을 끓였다. 어묵은 특히 해외에서 구하기 힘든 식재료 중 하나다.
어차피 오래 두고 먹을 수가 없어 어묵을 아낌없이 잔뜩 넣어 만든 음식을 먹으니 이게 웬 호사인가 싶다.
든든히 챙겨먹고 국경으로 갔다. 불가리아 번호판을 단 차들이 길게 줄을 서있다. 한 시간 반 정도를 기다려 드디어 우리 차례가 왔고 입국 수속은 금방 끝났다.
불가리아부터는 EU가 입국이라 수속이 복잡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차안 검사도 별로 안하고 금방 입국할 수 있었다.
불가리아는 도로도 잘 닦여있고 도로변 휴게공간도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도로변은 지나는 차량소음 때문에 잠을 자기는 힘들어보여 어두워지기 전 적당한 차박할 곳을 찾아야 했다.
한참을 더 달려 작은 마을에 들어갔다. 몰이 보여서 주차장에 차를 세울까 했는데 차단기가 있고 표지판에 시간이 써있는 것 같아 괜히 차박하다가 쫓겨나거나 갇힐까봐 다시 나와서 몰 옆의 골목으로 들어갔다. 큰 도로와 많이 떨어져 있어 비교적 조용하고 가로등이 밝고 옆에 주차된 다른 차들도 있어서 안전할 것 같아 이곳에서 밤을 보내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수도인 소피아로 갔다. 수도라기엔 너무 작은 동네같은 느낌이다. 유심이 없어서 일단 와이파이를 쓰며 아침을 먹기위해 맥도날드를 찾았다. 월요일 아침 8시인데도 거리가 한산한 것이 엊그제 머물었던 이스탄불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소피아에서 맥도날드 다섯군데를 가봤으나 문 연 곳이 없다. 허어.. 이 나라 사람들은 하루를 매우 늦게 시작하나보다. 결국 맥도날드 아침식사를 포기하고 불가리아에서는 카우치 친구의 답도 없고 딱히 보고싶은 것도 없어 바로 세르비아로 넘어가기로 했다.
세르비아로 가자
불가리아에서 세르비아로 가는 국경은 차량검사도 없이 여권보고 사진과 실물얼굴 비교하고 도장쾅. 끝. 차들도 별로 안다니는 듯 줄서지도 않고 기다림 없이 바로 통과했다. 세르비아 국경을 넘자마자 비상용으로 인출했던 불가리아 돈을 세르비아 돈으로 환전했다.
체류시간이 짧아 비상용으로 3만원 정도만 현금을 마련한다.
각 나라 체류기간이 1~2일밖에 안되니 유심사기가 애매하다. 일단 유심은 구입하지 않기로 하고 고속도로 통행료 등 갑자기 돈을 내야하는 상황에 대비해 최소한의 그 나라 현금을 마련해서 다녔다.
어제 저녁 8시쯤 불가리아에 들어와서 다음날 오전 9시에 국경을 통과했으니 불가리아에 머문 시간은 채 15시간이 안되는 것이다.
세르비아의 마을들은 주황색 지붕에 귀여운 단층집들이 마을을 이루어 그림같은 풍경을 보여주었다. 마을 구경을 하며 도로를 달리는데 문득 옆 창문을 보게된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엄청 또렷한 쌍무지개가 너른 벌판위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게 아닌가!
어젯밤 탄이에게 이번 여행에서는 무지개를 한번도 못봤네 하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바로 이렇게 엄청난 무지개를 보다니.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다. 환영받는 느낌이 들었다. 무지개에 이어 하늘에 멋진 형태의 구름을 보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지며 가로수의 하얀 봄꽃이 석양과 어우러져 길위의 풍경이 너무나 멋지다. 석양에 붉게 물든 구름들이 저세상뷰였다.
세르비아에서 저렴한 숙소를 찾아 시골마을에 며칠 묵었는데 유럽에 들어가면 물가가 매우 비쌀 것이 예상되어 그전에 좀 쉬었다 가려고 했지만 와이파이도 없어 영상작업도 힘들고 주방도 없이 화장실 물을 사용해서 방에서 밥을 해먹고 지내려니 불편하고 또 화장실도 다른 손님인 노부부와 함께 사용해야하는 상황이라 이틀을 묵고 바로 떠났다. 북쪽으로 올라가 헝가리로 넘어가기로 했다.
국경마을 수보티차에서 헝가리 입국은 내일 하기로 하고 차박할 곳을 찾았는데 작은 공원옆 주차장에서 조용하게 밤을 지낼 수 있었다. 밤에는 옆에 다른 차들도 있었는데 아침이 되어 둘러보니 덜렁 우리만 있다. 그래도 별 탈없이 조용히 잘 수 있어 좋았다.
세르비아 국경을 넘어 헝가리 입국을 하려고 왔는데 무슨 일인지 차를 옆으로 대라고 한다. 이제 유럽이라 국경넘는 것은 전혀 걱정하지 않고 있었는데 갑작스런 요구에 당황스러웠다. 한참을 대기하고 서류들을 꺼내보이고 하다가 결국 차를 돌려 세르비아로 되돌아 가야했다. 국경사무직원에 의하면 비엔나협약에 헝가리와 한국이 도로교통협약체결이 안돼있으니 차를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고 하는 듯 하다.
차를 가지고 헝가리에 들어간 다른 한국사람들의 경우를 들어 알고 있어서 아무 문제 없을 줄 알고 걱정도 하지 않았기에 많이 당황스러웠다. 어제 숙소 와이파이로 헝가리의 숙소도 예약해서 돈도 이미 지불을 했는데. 유심이 없으니 취소도 안되고 어쩌나 싶다.
헝가리 입국이 안되면 크로아티아나 루마니아로 돌아가야하나 이런저런 생각들로 머리속이 복잡했다. 우선 와이파이를 쓸 수 있는 곳을 찾아가 문제해결을 할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와이파이를 찾아 헤메다가 네비의 지도를 보니 50분 거리에 국경검문소가 하나 더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셈 치고 우리는 한번 더 입국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세르비아 국경은 역시 금방 통과하고 다시 헝가리 국경검문소 앞에 긴 줄에 섰다. 차들이 많았다. 줄이 조금씩 줄어들면서 우리 마음도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만약 여기서도 거절당하면 진짜 먼 길을 빙빙 돌아야 서유럽으로 갈 수 있을 것이고 또 가는 동안 어디에서 막힐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드디어 우리차례. 차량등록증 등 여러 서류와 여권을 보더니 직원이 왜 다른 검문소에서 안들여 보내줬냐고 우리에게 묻는 것이다.
우리는 그냥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왜 안보내줬는지 우리도 모르는 척 했다. 다행히 검문소간에 긴밀한 연락이 안되는 건지 직원은 갸우뚱 하며 잠시 고민하는 듯 하다가 드디어 여권에 도장이 찍혔다. 내적 환호를 간신히 참고 검문소를 나와 헝가리땅으로 완전히 들어온 후에 우리는 함께 "와!!! 헝가리에 들어왔다!" 하며 비로소 기쁜 환호성을 질렀다.
5~6시간 기다려야했던 러시아 국경 넘을때도 이렇게 조마조마하고 간절하지는 않았는데 지금껏 그 어느 국경을 넘은 것보다 기쁘고 감사했다. 일단 들어왔으니 못 쫓아낸다, 우리를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싶었다. 서로 쪼그라든 마음을 위로하고 헝가리 입국을 축하했다.
국경을 지나자마자 길가에 있는 녹색 간이건물에 들러 비넷을 구입했다. 비넷은 통행증 개념으로 헝가리, 스위스를 비롯 유럽 8개국이 시행중인데 헝가리의 경우 10일에 25유로였다. 비넷을 검사할 확률은 별로 없다며 안 사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입국이 힘들었던 우리는 뭐든 떳떳하게 다니고 싶어 오히려 구입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할 지경이었다.
국경을 앞에 두고 기다리며 본 헝가리 하늘의 구름이 너무 예뻤는데, 제발 저곳으로 갈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기도했는데, 이제 그 하늘 아래를 쌩쌩 달리고 있다. 너무 좋다. 파란 하늘에 동동 떠있는 그림같은 구름들이 너무너무 예쁘다. 여행에서 처음 겪게된 입국 불허 상황으로 멘붕이 왔지만 두 사람이 지혜를 합쳐 잘 극복했다. 입국이 쉽건 어렵건 불허되건 이것도 우리 여행의 일부이다. 그날 오후 무사히 예약해둔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고 깨끗한 숙소에서 편안하게 씻고 휴식을 취할 수 있어 너무 감사하고 좋았다.
다음날 한시간 거리의 부다페스트에 온천이 있다고해서 오랜만에 뜨끈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싶다는 시로의 강력한 요구에따라 온천으로 가고 있다. 세체니 온천이 유럽에서 가장 큰 온천이라고 하는데 거기는 물 온도가 좀 미지근하다고 해서 Rudas Bath라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부다페스트 시내로 들어오니 유럽풍 건물들과 길 한가운데 트램길이 있는 풍경이 유럽에 왔구나 하는 느낌을 확 살아나게 한다.
탄이 길위의 풍경에 감탄을 하며 "이야 이 옆에 노란 트램이라도 지나가면 완벽할텐데.."라는 말이 떨어지자마자 진짜 노란 트램이 지나간다. 기막힌 우연에 웃음을 터트렸다.
도나우강 바로옆에 자리잡은 루다스 바스에 도착했다. 차를 세울곳을 찾느라 주변을 돌다가 유료주차장에 차를 세울 수 있었다. 바람이 엄청 분다. 남의 나라에서 온천에 가는 것이 쉽지가 않다. 락카며 옷을 어떻게 입어야하는지 수영복을 챙겨야하는지 이것저것 매우 낯설어서 헤메며 겨우겨우 들어왔다. 우리나라같은 대중탕같은건 안보여서 인터넷에서 본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 올라가자 유리난간 너머로 도나우강이 눈앞에 펼쳐진다.
반구 모양의 구조물이 있는 야외 노천탕이 한가운데 있었다. 너무 추워서 얼른 들어갔다. 이미 십여명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꽤 넓은 편이어서 우리도 한편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뜨끈한 물에 쏙 들어가니 피로가 쫘악 풀리는 느낌이다. 얼굴은 시렵지만 아름답기로 소문난 부다페스트의 도나우강 풍경이 석양에 빛나는 것을 바라보며 온천욕을 하다니 완전 호강하는 기분이었다.
다른 손님들도 서로를 배려하며 사진도 찍어주고 우리에게 어느나라에서 왔냐고 물어봐서 한국이라고 하니 너무 반가와하며 좋아해준다. 어디를 가던 한국사람이라고 하면 환영을 받는것이 감사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다. 해가 지고 조명이 반짝이는 야경도 정말 아름다왔다. 한강의 야경이 세계 최고라고 생각해왔지만 부다페스트의 도나우강 야경도 꽤 괜찮네~ 싶은 멋진 저녁이었다.
글=시로(siro)/ 사진=김태원(tan) / 정리=문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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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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