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 프레임 바꾸고 실증주의 왜곡” [.txt]
기획/한겨레말글연구소 발표회
저항→테러, 수탈→수출, 성노예→매춘부
친일·친미 사대주의와 승자의 논리
‘사실’도 공방으로 바꿔 ‘진실’ 물타기

현직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였던 12·3 비상계엄은 시대착오적 반란이었다. 주범 윤석열은 국회의 탄핵소추로 대통령 직무가 정지된 채 ‘내란’ 우두머리(수괴) 혐의로 엄중한 수사와 처벌을 앞두고 있다. 검사로 잔뼈가 굵고 정치권력의 정점까지 오른 인물이 명백히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는 반국가적 난동을 벌인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정신의학과 심리학 전문가들 사이에선 극단적 자기애와 권력 중독, 어떤 비판도 견디지 못하는 피해망상과 분노조절 장애, 자기에게 유리한 정보에만 빠져드는 확증편향, 심지어 반사회적 인격장애(소시오패스)가 의심스럽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윤 대통령이 2년7개월 짧은 재임 기간에 보인 정치적 행태는 단순한 권위주의를 넘어 극우 파시즘을 연상케 한다. 여기에는 그의 개인적 성정뿐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천박한 이해와 비뚤어진 역사 인식도 큰 몫을 했다. 그 한 축이 ‘뉴라이트’ 인물들의 중용이다. 그는 국가안보실, 통일부, 독립기념관,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 등 정부의 주요 기관들에 일제 강점기를 미화하고 항일독립운동을 폄훼하는 ‘뉴라이트’ 성향 인물들을 수장으로 대거 발탁했다.

한겨레말글연구소가 26일 오후 한겨레신문사 청암홀에서 ‘뉴라이트 역사인식과 언어 문제’라는 주제로 연 연구발표회는 뉴라이트 세력이 한국 근대사를 왜곡하는 논리 구조와 그 허구성 및 폐해를 세밀히 분석하고 대응 방안을 모색한 자리였다.
나익주 전남대 영미문화연구소 연구원은 ‘뉴라이트 인식의 프레임과 은유’에서, 뉴라이트의 경전이 된 저작 ‘반일 종족주의’가 우리 사회에서 확립된 역사인식의 프레임을 바꾸려는 전략을 민낯으로 드러내 보였다. 프레임은 ‘세상에 대한 믿음,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 등에 대한 구조화된 특정한 심적 체계’다. 나 연구원은 뉴라이트의 프레임 바꿔치기를 △저항→테러, △수탈→수출, △성노예→매춘부, △유기적 인과관계→직접적 인과관계, △민족주의(문명화한 근대)→종족주의(미개한 원시)’ 등 5가지로 나눠 살폈다.
뉴라이트는 일제 침탈에 맞선 ‘저항’의 맥락을 지우고 행위에만 초점을 맞춘 ‘테러’로 서술한다. 식민지 여성들을 기만·납치·매수·약취해 일본군 성노예로 삼은 만행은 피해 당사자들이 “전쟁 특수를 이용해 한몫의 인생을 개척한 개인의 영업”이었다고 매도한다. 한반도의 곡물을 일본으로 가져간 ‘이출’은 수탈이 아니라 정상적 상거래인 수출이라고 강변한다. 이들은 일제 식민통치 당국의 통계를 근거로 자신들의 주장을 ‘실증주의 학문’으로 포장한다. 그러나 ‘수출’ 과정의 강압, 제도와 정책을 통한 수탈에는 입을 다문다. 이창봉 가톨릭대 교수(영문학)는 “정상적인 수출이라면 한국의 국부로 이어지고 그 수익이 한국 민초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는 데에 기여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사실관계 반박을 보강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나 연구원이 어떤 행위나 사건의 유기적 인과관계를 직접적 인과관계로 축소하는 것을 뉴라이트의 프레임 전환 수법으로 꼽고 일본 정부의 주장과 매우 닮았다고 지적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일본 극우파는 ‘국가(일제)→일본군→조선총독부→지방기관→민간업자→보호자→‘위안부’’로 이어지는 복잡계 연쇄에서 (이를 단순화해) ‘위안부’ 피해의 책임이 ‘위안부’ 자신이나 민간업자에게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한국의 뉴라이트는 “어느 여인이 창기로 취업하기 위해선 보호자의 취업승낙서가 필요했다”, “무지막지한 가부장의 폭력이 자아실현을 꿈꾼 한 소녀를 위안부로 내몬 원인이었다”, “위안부 생활은 그들의 선택과 의지에 따른 개인의 영업이었다”(반일 종족주의)라고 주장한다.
이런 프레임 전환은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에 대한 뉴라이트와 보수 언론의 시각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세월호 참사에 대해 진보언론은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규제 완화)이 부른 인재라고 보는 반면, 보수언론은 개별선박회사(청해진해운)나 부도덕하고 미숙한 선장의 탓으로 돌린다. 나 연구원은 “반일 종족주의가 (한국인의) 반일 감정의 근원이 일본의 강제합병과 식민통치에 있다는 많은 국민의 공통 상식을 은폐”한다며, “그들의 주장이 프레임 구성의 주요 원리를 위배할지라도 반복되면 우리 마음속에 주입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박창식 전 국방홍보원장은 ‘한국 언론은 독립기념관장 임명 논쟁을 어떻게 다뤘’는지를 진보언론(한겨레·경향신문)과 보수언론(조선·중앙·동아일보)의 사설 프레임으로 비교 분석했다. 앞서 지난 8월 윤석열 대통령은 뉴라이트 성향의 역사학자 김형석씨를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했다. 박 전 원장에 따르면 진보언론은 그의 임명을 역사 왜곡의 악영향 확산 프레임으로 보고 적극적이고 공세적 논조를 폈지만, 보수언론은 논란에 따른 사회갈등의 부작용 프레임을 동원해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태도를 취했다. 특히 조선일보는 “논쟁의 본질이라 할 역사관 자체에 개입”해, 광복회 등 독립운동단체들과 친일인명사전의 주장이 틀렸다는 식의 논조를 폈다. 이진로 교수는 “조선일보가 윤석열 정부와 밀착된 관계에서 방탄 역할을 수행한다면,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윤 정부와 거리를 두면서 견인 역할”을 했다고 논평했다.

정혁준 기자는 한국의 뉴라이트가 “전통적 보수 진영의 우파 민족주의가 아니라 친미·친일 등 사대주의 성향”을 보이며, 경제학의 합리적 시장 가설에 논리적 근거를 두고 “승자의 역사관을 전적으로 긍정”한다고 짚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열강이 겨루던 시기 일본은 승자, 조선은 패배자였다는 것이다. 그는 또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아카이브 ‘빅 카인즈’에서 열쇳말 검색을 분석한 결과, 보수 언론이 뉴라이트와 비슷한 ‘승자의 가치관’으로 기사를 쓰는 패턴을 보였다고 지적한 데 이어, ‘일제강점기’‘강제동원’‘세월호 참사’ 등 언론의 적확한 용어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앞서 지난 9월 ‘윤 정부의 뉴라이트 전성시대…왜 친일·반공·독재를 미화하려 들까’라는 제목의 심층 분석기사를 쓴 바 있다.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는 ‘뉴라이트의 역사 전쟁과 (역사) 부정’의 논리와 실태를 폭로하고 조목조목 논박했다. 뉴라이트 이론가들은 ‘반일 종족주의’에서 “한국의 ‘민족’이 그 자체로 하나의 권위이며 신분이어서 차라리 ‘종족’이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의 새로운 공동체 의식으로 등장한 서양에서 발흥한 민족주의와 구분된다”며 “한국인의 미개한 집단심성”을 비난했다. 그러나 이런 언술은 일제 식민통치에서 비롯한 한국의 반일 감정을 미개한 집단심성으로, 민족주의를 종족주의로 폄하하려는 의도일 뿐이다.
이영훈·김낙년 등 뉴라이트 이론가들은 위 책에서 한국의 거짓말 문화를 입증한다며 일제 강점기의 각종 통계와 수치를 나열해 객관적 실증과학의 모양새를 취하고 이를 ‘기본 사실’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강 교수는 “역사부정론자들이 실증주의를 무기로 활용하면서 피해자의 증언을 부정하고 가해자의 (공)문서를 실증주의적으로 입증하라고 요구하는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의 통계치는 식민지 지식권력의 목적과 효과의 맥락에서 비판적으로 분석, 활용돼야” 하는데, ‘반일 종족주의’에서는 “일부 사례를 선별해 전체를 왜곡하는 방법과 자의적 해석이 곳곳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또 “식민지 지배와 전쟁에는 분명한 피해자와 피해 사실이 있는데 극우파들은 그와 다른 팩트 또는 ‘기본 사실’을 내세워 마치 상반된 증거가 공방하는 것처럼 ‘사실’을 상대화하고 ‘진실’을 오리무중으로 만들어” 버리는 수법도 날카롭게 지적했다.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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