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활동으로 촉발된 멸종은 자연의 균형을 무너뜨린다[멸종열전]

기자 2024. 12. 2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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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멸종 위기 ‘회색 늑대’로 비춰 본 인간과 자연의 관계
야생의 위엄을 지닌 회색늑대는 생태계 균형을 지키는 상위 포식자다.
과거엔 자연적으로 새 생명체 나타나
현재는 인간이 개입, 생태계 변화시켜
인간의 행동이 생태 균형의 중요 열쇠
회복의 주체가 될지, 멸종을 부추길지
이제 우리는 ‘중요한 기로’에 서 있어

우리에게 늑대는 어떤 존재일까? 러디어드 키플링의 <정글북>에서 늑대는 인간 아이 모글리를 따뜻하게 품어주며 “우리는 하나다. 네가 우리를 부를 때 우리는 답할 것이다”라며 자연과 가족의 의미를 일깨웠다. 영화 <늑대와 춤을>(1988)에서 던바 중위(케빈 코스트너)는 늑대와 교감하며 “모든 생명은 연결되어 있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작품 속 늑대는 하나의 짐승을 넘어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가르치는 문학적 매개체로 빛난다.

늑대가 문학에서 인간과 자연을 잇는 고귀한 상징으로 등장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 늑대는 두려움과 경계심을 자극하는 상징으로 등장한다. 샤를 페로의 <빨간 망토>에서 소녀와 늑대는 순수와 악으로 극명하게 대조된다. 작가는 “소녀가 늑대와 같은 수상한 자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늑대의 저녁감이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교훈을 주면서 젊은 여성들이 프랑스 살롱 문화에 경계할 것을 촉구했다. 한편 이솝의 ‘늑대와 양치기 소년’에서는 거짓말로 인한 비극을 드러내는 도구로 늑대가 활용된다.

늑대는 단순히 위험한 존재일 뿐 아니라 인간 사회의 신뢰와 경고 체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처럼 늑대는 문학에서 단순한 동물을 넘어선 상징적인 존재다. 인간의 공포와 교훈, 그리고 자연과 문명의 갈등을 담아낸 늑대의 모습은 우리가 여전히 통제하지 못하는 야생에 대한 공포를 상징한다.

인간에게 공포는 사라져야 마땅할 대상이다. 그 결과 광활한 북미 대초원을 가로지르며 울부짖던 회색늑대는 더 이상 그곳에 없다. 인간과 가장 오래된 경쟁자였던 이 동물은 대초원의 상징이었으며, 자연의 섭리를 유지하는 중요한 존재였다. 그러나 농경과 도시화 그리고 인간의 두려움과 오만이 더해지며 회색늑대는 대초원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회색늑대의 모습.

회색늑대의 학명은 카니스 루푸스(Canis lupus). 라틴어로 카니스는 ‘개’, 루푸스는 ‘늑대’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개 중 늑대’라는 뜻이다. 이 이름은 늑대가 개과 동물의 대표적인 종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회색늑대는 북미 대초원 생태계에서 최상위 포식자였다. 그들은 사슴, 들소, 가지뿔영양 같은 초식동물이 과도하게 늘어나는 것을 막음으로써 대초원 식물군의 건강과 다양성을 지켜냈다. 당연하게도 늑대는 약하고 병든 개체를 주로 잡아먹었다. 덕분에 초식동물의 유전적 건강성이 유지되었으며 식물과 서식지가 과도하게 소비되지 않도록 했다. 예를 들어, 늑대가 두려운 가지뿔영양 무리는 특정 지역에서 오랜 시간 머무르지 않았다. 그 결과 풀밭과 관목이 고르게 분포하게 되었다.

하지만 인간은 회색늑대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했다. 대초원에 정착한 초기 이주민들에게 늑대는 위협 그 자체였다. 19세기 후반, 북미 대초원에서는 대규모 목축업이 시작되었다. 농부와 목동들은 늑대를 해로운 존재로 간주하여 조직적으로 제거하기 시작했다. 독약을 뿌리고 덫을 설치했다. 늑대 머리 하나마다 보상금을 지급하는 사냥 정책이 시행되었다. 20세기 초 이미 늑대 개체 수가 급격히 줄었다.

1915년부터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도입한 독살 정책이 가장 치명적이었다. 스트리크닌 같은 강력한 독이 널리 사용되었다. 1818년 프랑스 화학자 피에르 조제프 펠티에가 국화과 나무 열매에서 추출한 스트리크닌은 소량으로 사용하면 변비와 위장병 치료에 도움이 되지만 다량 섭취하면 근육 경련과 질식 작용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맹독성 물질이다. (스트리크닌의 분자구조는 1963년에야 밝혀졌으며 지금은 의약품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트로픽 캐스케이드

회색늑대는 여전히 광범위한 지역에 안정적인 개체 수가 유지되고 있어서 국제자연보호연맹은 ‘최소관심(LC)’이라는 낮은 등급을 부여하고 있지만, 한때 수백만마리에 달하던 북미의 회색늑대는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거의 멸종 상태에 이르렀다. 대초원에서 늑대의 울음소리는 점점 사라졌고, 이와 함께 대초원의 자연적인 균형도 무너졌다.

트로픽 캐스테이드 이미지. 상위 포식자의 변화는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트로픽 캐스케이드(Trophic Cascade)라는 개념이 있다. 여기서 트로픽은 먹이사슬에서의 영양 단계를 말한다. 생산자, 1차 소비자, 2차 소비자 같은 것이다. 캐스케이드는 폭포라는 뜻으로, 어떤 사건이 연속적인 반응이나 영향을 일으키는 현상이다.

즉 트로픽 캐스케이드란 한 생물종의 개체 수나 행동 변화가 생태계에서 여러 다른 생물군에 미치는 연쇄적인 영향을 말한다. 굳이 우리말로 옮긴다면 ‘영양 단계 폭포 효과’쯤 될 것이다. “먹이사슬 꼭대기의 변동이 아래 단계로 파급되어 생태계를 변화시키는 도미노 효과”로 이해하면 된다.

미국 초원에서 회색늑대가 사라지자 초식동물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는 회색늑대가 사라진 후 엘크(북미 큰사슴)의 개체 수가 급격히 늘었다. 엘크는 강변의 관목을 집중적으로 먹어 치웠고, 이로 인해 강변 식생이 크게 파괴되었다. 버드나무와 미루나무 같은 나무들이 점차 사라지면서 새들의 서식지가 줄어들었고, 비버 같은 동물들도 영향을 받았다. 비버는 강변의 나무를 이용해 둑을 만들고 물길을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나무가 줄어들자 비버의 둑도 감소했고, 그 결과 하천의 생태계가 변했다. 강물의 흐름이 빨라지면서 물고기의 산란지가 줄어들었고, 결과적으로 지역 생물 다양성이 전반적으로 감소했다.

미국의 회색늑대 멸종의 여파는 생태학적 혼란을 넘어 보전 운동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20세기 중반 이후 환경단체와 과학자들은 회색늑대 복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1995년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늑대가 재도입되었다. 캐나다에서 회색늑대 열네 마리를 옮겨온 것이다. 그들은 짧은 시간 안에 초식동물들의 행동을 변화시켰다. 엘크는 더 이상 강변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버드나무와 미루나무는 다시 자라나게 되었다. 회색늑대가 생태계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이 그대로 자연에 드러났다.

회색늑대 이야기는 단순한 멸종의 기록이 아니다. 이들의 멸종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비추는 거울이며 동시에 우리가 어떤 미래를 선택할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늑대는 단순한 포식자가 아니라 생태계의 조화를 이루는 중요한 존재다. 하지만 회색늑대 복원은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다. 일부 농부와 주민들은 여전히 늑대를 위협적 존재로 간주하며 반발하고 있다. 가축 피해와 늑대에 대한 공포는 여전히 회색늑대 복원의 걸림돌이다.

멸종 이후

멸종은 흔히 생명의 끝, 역사의 종지부로 여겨진다. 정말로 그렇기만 할까? 지난 1년 동안 ‘멸종열전’을 통해 다양한 생물들의 멸종을 살펴봤다. 수백만년 동안 지구를 누비던 거대한 포유류부터 숲속을 비행하던 작은 곤충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생태계 일원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연결고리가 끊어졌을 때 우리가 단순히 한 종의 존재만 잃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와 지구 사이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이자 경고였다.

지난 25회 동안 살펴본 멸종된 생물에는 자연의 거대한 변화 속에서 자리를 내어준 종도 있고, 인간의 직접적인 활동으로 사라진 종도 있다. 멸종은 어느 한순간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긴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이야기이지만 그 과정 속에 인간의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는 사례가 늘고 있다.

멸종은 끝인가? 멸종은 생명의 종말로만 여겨질 경우가 많지만 더 큰 자연의 흐름 속에서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도 한다. 멸종된 생물은 그 자리에 공백을 남기고, 그 공백은 다른 생명체가 새롭게 자리 잡을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생태계는 변화와 적응을 통해 새로운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을 반복하며 진화해왔다. 우리는 지구 역사를 통해 멸종이 어떻게 미래의 시작을 열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약 6600만년 전, 공룡의 멸종은 지구 생태계에 엄청난 충격을 가져왔다. 그러나 그 끝은 곧 포유류의 부상으로 이어졌다. 공룡들이 차지하고 있던 서식지가 비어지자, 그 자리를 포유류가 차지하며 다양성을 확장시켰다. 이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인간을 포함한 현대 포유류가 번성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공룡의 멸종은 단순한 재난이 아니라 새로운 진화의 서막을 알리는 사건이었던 셈이다.

빙하기 이후 대형 포유류의 멸종도 마찬가지다. 매머드와 거대땅늘보 메가테리움 같은 동물들이 사라지면서 초원과 숲의 생태계 구조는 급격히 변했다. 대형 초식동물이 사라지면서 식물의 분포가 바뀌고, 토양의 질이 변화했으며, 이는 곧 다른 동물과 식물 종들의 진화에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멸종은 생태계에 균열을 일으키는 동시에 새로운 생명을 위한 터전을 마련했다.

자연적 멸종은 생명의 순환에 필연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현대에 일어나는 멸종은 다르다.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촉발된 멸종은 자연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있다. 과거에는 멸종 후 자연적으로 새로운 생명체들이 그 자리를 채웠지만, 지금의 멸종은 그러한 회복의 기회를 막아버리기도 한다. 인간의 개입이 지나치게 빠르게 생태계를 변화시키면서 자연이 적응하고 회복할 시간을 빼앗고 있는 것이다.

희망적인 사례도 있다. 인간이 생태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을 때, 멸종된 줄 알았던 생명체들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거나 멸종위기에 처했던 종들이 살아남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콘도르는 멸종 직전까지 몰렸지만 대규모 보호와 복원 노력을 통해 개체 수가 다시 늘어났다. 갈라파고스땅거북 역시 인간의 사냥과 서식지 파괴로 위기에 처했지만 복원 프로젝트를 통해 다시 번성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은 우리가 생태계의 파괴자가 아니라 회복의 주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멸종 이후의 새로운 시작은 자연만의 일이 아니다. 인간의 선택과 행동이 새로운 균형과 생태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중요한 열쇠다. 멸종이 만들어낸 공백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 그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 있다. 새로운 시작의 주체가 될 것인지 아니면 다시금 멸종을 부추길 것인지, 이제 우리는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현재의 기후변화와 환경파괴가 지속된다면 우리 역시 생태계 붕괴의 희생자가 될 것이다. 물 부족, 식량위기, 자연재해의 증가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멸종된 동물들의 이야기는 인간의 미래를 예고한다. 멸종열전은 이로써 마무리되지만 멸종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현재와 미래 속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다.

■필자 이정모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맞고 있는 인류가 조금이라도 더 지속 가능하려면 지난 멸종 사건에서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연세대학교와 같은 대학원에서 생화학을 공부하고 독일 본대학교에서 유기화학을 연구했지만, 박사는 아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서울시립과학관,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한 저술과 강연,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 <과학이 가르쳐준 것들> <과학관으로 온 엉뚱한 질문들> <살아 보니, 진화> <달력과 권력> <공생 멸종 진화> 등을 썼다.

<시리즈 끝>

이정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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