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토밥상] 흰쌀밥·오색나물·붉은육회...화려함 속 담백함에 반하다
군사 체력보충 음식이자 교방문화 흔적
아름다운 꽃밥 ‘칠보화반’으로도 불려
밥에 약하게 간한 나물·우둔살 등 쓱쓱
소내장 들어간 국물과 함께 ‘환상궁합’
‘칠보화반(七寶花盤)’.
일곱 빛깔의 아름다운 꽃밥이란 뜻으로 경남 진주의 비빔밥을 달리 부르는 이름이다. 황색 놋그릇에 흰쌀밥, 오색나물, 붉은 육회가 올라간 모양이 꽃과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 이처럼 예쁜 별칭이 붙은 음식이 또 있을까. 지리산과 남해에서 얻는 풍부한 식재료에 풍류를 즐기는 교방문화가 잘 어우러진 진주의 맛을 보려면 진주비빔밥이 제격이다.
비빔밥은 우리나라 정서에 가장 깊숙이 녹아 있는 음식으로 그 유래를 명확히 따져보기 어려울 정도다. 조선시대 고조리서 ‘시의전서’에 한자로 ‘골동반’, 한글로 ‘부븸밥’이라 기록된 음식이 비빔밥의 시초라 할 수 있다. 옛 조상들은 음력 12월30일인 섣달그믐에 남은 음식을 모두 모아 비벼 먹는 ‘골동반’을 먹었는데 이는 남은 음식은 해를 넘겨 먹지 않는다는 민간 풍습에서 비롯됐다.
전국에 다양한 비빔밥이 있지만 향토음식으로서 가장 먼저 이름을 날린 비빔밥은 진주비빔밥이다. 1920년대 대중잡지 ‘별건곤’에는 경상도 명물로 진주비빔밥이 등장한다. 내용엔 “서울식 비빔밥과 달리 파란 채소와 고사리·숙주 같은 나물을 놓고 그 위에 돌김·육회·고추장을 얹어 낸다”고 묘사하며 “쇠고기를 잘게 썰어 끓인 장국을 부어 비비기 좋게 하고 그 값이 10전에 지나지 않아 상하 계급을 가리지 않고 쉽게 먹는다”는 말도 더했다.
진주비빔밥의 유래는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전투에서 군사들의 체력 보충을 위해 성곽 안에 남아 있던 소를 잡아 비빔밥을 해 먹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진주비빔밥은 조선시대 교방문화의 흔적이기도 하다. 경남지역의 행정 중심지였던 진주에선 중앙관리나 나라에 귀한 손님이 내려오면 연회가 열렸는데 이때 베풀던 기생들의 가무와 술·음식 등을 통틀어 교방문화라 한다. 일제강점기에 기생들을 교육·관리하던 교방청이 없어지면서 교방문화는 사라졌지만 검무·한량무·교방굿거리춤 등이 교방예술로 전해지고, 진주비빔밥·진주냉면을 비롯한 진주 고유의 상차림이 몇몇 식당을 통해 맥을 이어오고 있다.
진주 곳곳엔 비빔밥을 주메뉴로 선보이는 식당들이 있다. 궁중 잔치에서 대접받듯 무거운 놋그릇에 정갈하게 담아 낸 비빔밥, 각종 나물이 무심하지만 아낌없이 올라간 비빔밥 등 식당마다 그 모양은 조금씩 다르다. 진주교 건너 중앙광장 사거리 근처 식당 ‘원깐돌이’는 45년 넘게 진주 주민들의 발길이 이어진 노포다. 박찬숙 사장은 매일 아침 시장에서 비빔밥에 올릴 쇠고기를 구해온다.
“비빔밥을 외지 사람들은 육회비빔밥이라 하대요.”
진주 사람들은 비빔밥이라 하면 당연한 듯 신선한 육회가 올라간 비빔밥을 떠올린다. 식당 벽면 차림표를 보면 비빔밥이란 큰 글씨 위에 조그맣게 육회라 적혀 있다. 길게 썰어 볶은 쇠고기나 달걀이 올라간 비빔밥을 떠올리는 다른 지역 손님들을 위한 배려인 듯하다. 진주비빔밥엔 다섯가지 이상의 나물이 올라간다. 배추나물·숙주·고사리·호박·콩나물을 삶아 잘게 썬 후 약하게 간을 한다. ‘한 듯 만 듯한 양념’이라는 게 박 사장의 표현이다. 흰밥을 깔고 각종 나물을 푸짐하게 올린 후 우둔살 육회를 한 주먹 넣는다. 익힌 쇠고기를 다져 넣어 육향을 더한다. 이미 한 듯 만 듯 양념한 육회와 나물이 있으니 고추장은 조금만 얹는다. 마무리로 깨를 솔솔 뿌려주면 완성이다. 진주비빔밥은 항상 소 내장이 들어간 국이나 바지락 또는 홍합을 곱게 다져 끓인 보탕이 함께 나온다. 이곳에선 천엽·허파·양 등 소 한마리에서 나오는 내장에 파와 무·고사리 줄기를 넣고 얼큰하게 끓인다.
비빔밥을 주문한 뒤 10분도 채 안돼 음식이 나왔다. 은빛 그릇에 올라간 오색 재료와 고소한 참기름 향이 군침을 돌게 한다. 같이 나온 국으로 먼저 입맛을 돋운다. 칼칼하고 깔끔한 국물이다. 소 내장을 오래 끓여 깊은 감칠맛도 느껴진다. 국물을 비빔밥에 살짝 뿌린 후 비빈다. 오방색 나물과 한송이 꽃 같은 육회가 어우러진다. 크게 한술 떠먹는다. 쫀득한 육회와 고소한 나물이 빈틈없다. 중간에 씹히는 다진 쇠고기 볶음이 별미다. 각각 재료에 양념이 돼 있지만 아주 담백한 맛이다. 자극적인 맛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겐 오히려 심심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비빔밥 한입에 국물 한술이면 궁합이 딱 맞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음식으로 진주비빔밥은 어떨까. 화려한 모양에 맛과 영양까지 갖춰 더할 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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