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 순 없다"며 38일 단식한 노동자, 그리고 쏟아진 '남태령 연대'

최용락 기자 2024. 12. 27.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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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강인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

"조선소는 비정규직 문제의 종합 백화점이예요. 계약직, 하청에, 일한 물량에 따라 급여를 받는 노동자까지 다 있어요. 조선하청노동자들 살아가는 것 보면 '저렇게 살아도 되나' 생각이 들어요. 일도 힘들고, 임금은 최저시급을 약간 넘어요. 일하다 언제 누가 죽을지도 몰라요."

2024년 국내 조선3사는 2조 원대의 영업이익이 예상되는 역대급 호황을 맞았다. 그 이면에는 1만 원이 약간 넘는 시급을 받으며 월 300시간 이상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는 조선하청노동자들이 있다. 불합리한 현실을 바꾸겠다며 거제통영고성하청지회(하청지회)가 원청기업인 한화오션에 맞서 지난 11월 파업을 선포했다. 그 자신이 도장공 하청노동자인 노조 간부 한 명은 지난 20일부터 곡기를 끊고 있다.

단식 34일 차(인터뷰날기준)인 강인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을 지난 23일 경남 거제 한화오션 서문 앞 하청지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건강상태를 묻는 말에 그는 "혈압이 많이 떨어져 의사는 병원에 가라고 한다"면서도 "내 생각에는 아직 에너지가 30%는 남아있는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 그리고 조선하청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이를 바꾸기 위해 필요한 일은 무엇인지 조곤조곤 설명했다.

▲ 강인석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 ⓒ프레시안(최용락)

역대급 호황에도 조선업 임금체불…문제는 원청

지난 11월 파업을 시작하며 하청지회가 내건 첫 번째 요구사항은 '임금체불 근본대책 마련'이었다. 올해 10월에만 한화오션의 10개 하청업체가 임금을 체불했다. 11~12월에도 임금체불이 발생했다. 한화오션의 올해 영업이익만도 2000억 원대로 예상된다는데, 하청노동자의 임금이 체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강 부지회장은 "구조적 원인이 있다"며 원청이 하청업체에 주는 돈을 애초에 낮게 책정한다고 했다.

"하청업체는 원청이 준 기성금(공정율에 따라 지급받는 대금)으로 운영해요. 정상 생산단가가 있는데, 원청이 여기에 50%니, 80%니 하는 '능률'을 곱해서 기성금을 정해요. 높은 '능률'을 적용받은 하청업체는 이익을 보지만, 아닌 업체는 손해를 봐요. 부족분은 어떻게 하냐. 원청이 하청업체에 대출해 준 돈으로 메꿔요. 올해 10월 조선하청 임금체불 문제가 커지니까 원청이 대출금 상환기간을 내년 7월로 미뤘지만, 내년이면 문제가 또 터질 수 있습니다."

원청이 하청업체에 주는 돈이 적다면, 하청노동자의 임금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임금인상’ 역시 현재 하청지회의 요구사항 중 하나다. 강 부지회장은 "조선하청노동자들이 주로 40대 중반에서 60대"이기 때문에 대부분 자식을 부양해야 하는데, 통상 "1만 원이 넘는 시급"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면 잔업에 특근을 더해 "월 300~350시간" 일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만 문제가 아니다. 위험한 노동환경도 빼놓을 수 없다. 조선업의 사고사망만인율은 전체 산업 평균의 2배에 달한다. 올해도 한화오션에서만 최소 4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이 때문에 정인섭 한화오션 사장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불려가기도 했다. 하지만 현장의 산업안전환경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강 부지회장의 설명이다.

"3개월 전에 한화오션 노동자 한 분이 30미터 높이에서 떨어져 돌아가셨죠. 며칠 전 사고 장소에 안전점검을 갔는데 달라진 건 그물망에 클램프(물건을 조여 고정하는 도구)를 하나 걸어둔 거였어요. 한화오션이 국정감사가 끝난 다음에 1조 9000억 원을 들여 안전조치를 취하겠다고 했었어요. 그 돈을 어디에 쓰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현장에서 체감하는 건 안전을 강조하는 현수막을 어마어마하게 붙여 놨다는 것 정도예요."

▲정인섭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사장이 지난 10월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최저임금위원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선서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조가 만들어진 뒤 법이나마 지켜지기 시작했다

조선하청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은 오래 문제다. 하청지회도 2017년 2월 설립 이래 이를 개선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이대로 살순 없지 않습니까"라는 문구와 사방 1미터 철제 감옥에 스스로를 가둔 유최안 전 거통고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으로 상징되는 2022년 대우조선해양 파업도 그래서 일어났다. 이에 대한 윤석열 정부의 답은 경찰력을 동원한 강경 진압이었다.

그 뒤 사측은 정부의 태도에서 힘을 얻기라도 한 듯 다방면으로 노조 탄압을 강화했다. 대표적인 것이 2022년 파업에 대해 건 470억 원대 손해배상 소송이다. 지난 11월에는 하청지회의 농성 천막 설치를 방해하기도 했다. 생계를 옥죄지만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 '꼼수'도 동원했다.

"2022년 파업 때 '본공(하청업체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계약을 맺은 노동자)' 도장 노동자가 주력이었어요. 파업이 끝난 뒤 한화오션이 도장 쪽에서 '본공'을 고용하는 하청업체를 줄이고, 계약직을 고용하고 원청과 물량 계약을 맺는 '아웃소싱 업체'를 늘렸어요. 그러면 노조가 생겨도 업체와 계약만 해지하면 막을 수 있거든요. 인건비도 '아웃소싱 업체' 쪽에 더 줘요."

그럼에도 강 부지회장이 노조 활동을 계속하는 이유는 조선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더 나은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하청지회가 생긴 뒤 "근로기준법상 불이익은 훨씬 적게 받게 됐다. 그나마 없던 연차가 생겼고, 퇴직금이 생겼다“며 ”강제 무급휴직도 많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런 변화 때문에 회사에 찍힐까 두려워 당장 노조에 가입하지는 못해도 파업기금을 보내고, 라면을 사다주며 하청지회를 응원하는 노동자들이 많다고도 했다.

강 부지회장은 조선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 개선 방안을 묻는 말에도 ‘노조할 권리’ 강화를 위한 노조법 2, 3조 개정을 첫손에 꼽았다. 하청노동자가 '진짜 사장'인 원청과 교섭할 수 있다면, 더 많은 변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윤석열 정부에서 노조법 2, 3조 개정을 추진했던 더불어민주당이 향후 정권을 잡는다면, 실제 입법을 완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하청지회도 목소리를 낼 것이며, 더 넓은 사회적 연대를 만들어 가고 싶다고 밝혔다.

▲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집회에 참여한 거제통영고성하청지회 조합원들.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조선하청노동자 향한 시민들의 응원에도…변화 없는 한화오션

강 부지회장이 속한 하청지회가 이번 파업을 시작하며 세운 목표는 △임금체불 근본대책 마련, △임금 인상, △계약직·도급제가 아닌 상용직 고용 확대 △노조활동 보장 등을 담아 하청업체와 단체교섭을 타결하는 것이었다. 인터뷰 당일인 23일, 하청지회와 19개 한화오션 하청업체 간 교섭이 중단된지 6개월여 만에 재개되며 이를 위한 단초가 놓였다.

다만 교섭에서 하청업체들은 '한화오션이 방침을 정하지 않아 우리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고 한다. 조선하청노동자의 노동조건을 결정할 권한을 쥔 것은 원청이라는 점을 다시 확인하는 자리였던 셈이다.

다행히 '남태령 연대'로 불리는 탄핵 집회 참여 시민들의 후원 열기가 최근 경남 거제의 조선하청노동자들에게도 가 닿았다. 지난 24일 이김춘택 하청지회 사무장은 페이스북에서 "처우개선되자!따뜻", "남태령에서온소녀", "아프지마세요" 등 명의로 1000건이 넘는 파업기금이 하청지회 계좌에 입금됐다고 밝혔다.

당일 통화에서 강 부지회장은 12.3 비상계업 사태 직후 사회적 관심이 온통 윤석열 대통령 탄핵에 쏠렸을 때도 “‘탄핵이 중요하다. 지금은 잘 버티고 싸우며 기다릴 때다’라고 생각했다”며 "연대의 온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우리에게도 도움을 주셔 너무 고맙다"고 했다.

30일을 넘긴 단식자까지 나온 하청지회의 절박한 싸움에 보내는 시민들의 관심과 응원은 이제 막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그 앞에 선 한화오션이 하청노동자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모습을 보일 날은 언제일까.

[최용락 기자(ama@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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