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제 첨단 미사일, 미국제 '탱크 킬러' 전투기… 방산 각축장 된 베트남 [아세안 속으로]
19~22일 하노이 방위엑스포에 27개국 참석
중국 첫 참석, '전쟁 중' 이란·이스라엘 한자리
지난 19일 베트남 하노이 외곽 지아람 군공항에서 열린 ‘국제방위엑스포 2024’ 현장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베트남 공군 수호이(Su)-30MK2 편대가 굉음을 내며 저고도 곡예 비행에 나서자 이를 지켜보던 27개국 군사 관계자와 시민들은 연신 감탄사를 쏟아냈다. Su-30MK2는 베트남이 10여 년 전 러시아에서 수입한 전투기다.
이날 전시회에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이란 이스라엘 등에서 온 250여 개 방위산업업체가 참여해 군용기, 미사일, 공격용 무인기(드론), 총기 같은 첨단 무기를 대거 선보였다.
야외 전시장에서 관객들의 시선을 가장 사로잡은 것은 3년 가까이 전쟁을 이어가고 있는 러시아가 가져온 각종 첨단 무기였다. 러시아 국영 방산수출업체 로소보로넥스포르트는 활주로에 마련된 전시장 외부에△첨단 해안 방어 미사일 시스템 루베즈(Rubezh)-ME △적 방공망 밖인 260㎞ 거리에서 구축함 같은 대형 함정이나 지상 표적을 타격하는 Kh-35UE 공대함 순항미사일 △대전차 미사일 코르넷(KORNET-EM) △BMP-3 보병 전투 장갑차 등을 배치했다.
이 같은 무기가 러시아 외부에서 전시되는 것은 처음이라는 게 로소보로넥스포르트 측 설명이었다. 루베즈-ME는 지난 7월 러시아가 새로 개발한 해안 미사일 시스템 루베즈-M의 수출형이다. 만들어진 지 5개월 만에 베트남에서 첫선을 보인 셈이다.
코르넷과 BMP-3 등은 우크라이나 전장에 실전 배치된 모델이다. 로소보로넥스포르트 관계자는 “전시된 러시아 군사 장비 대부분이 현대전에서 성능을 입증했고, 실제 전투 경험을 바탕으로 업그레이드됐다”고 설명했다.
최근 서방 언론을 중심으로 ‘러시아가 군용 차량을 1만 대 이상 잃은 탓에 영화 소품으로 쓰던 1950년대 제작 탱크까지 동원했다'(미국 월스트리트저널)거나 ‘포와 포탄이 부족해 북한 무기에 의존하고 있다'(미국 경제매체 포브스)는 보도도 잇따랐다. 하지만 러시아는 이를 감추려는 듯 야외뿐 아니라 실내 전시장에도 대형 부스를 차리고 수중자율기뢰탐색체(AUV)와 비유도식 로켓탄 등 각종 현대식 무기 실물을 잔뜩 전시했다.
러시아 무기 의존도 높은 베트남
이 같은 러시아의 ‘과시’가 베트남과 다른 국가의 군수품 구매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에 따르면 베트남은 동남아시아에서 군비 지출이 가장 크게 증가한 나라 중 하나다.
2003년 8억4,100만 달러(약 1조2,200억 원)였던 군비 지출액은 2018년에는 55억 달러(약 8조 원)로 700%가량 늘었다. 2018~2020년 군비도 연평균 8.78% 늘었다.
특히 베트남은 ‘전통의 우방’ 러시아에서 만든 무기에 오랜 기간 의존했다. 국제평화연구소는 1995~2021년 베트남 무기 수입의 80%를 러시아제가 차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①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대(對)러시아 국제 제재 ②전쟁 중인 러시아가 무기 주문을 빠르게 충족하기 어려운 상황 등이 맞물리면서 베트남이 군사력 재정비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싱가포르 싱크탱크 ISEAS-유소프 이샤크 연구소 응우옌깍장 동남아시아 연구원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 무기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베트남의 취약성이 드러났다”며 “이번 방위 엑스포는 (베트남이) 새로운 파트너에게 열려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설명했다.
베트남이 공급원 다변화 신호를 보내자 미국과 중국도 발 빠르게 나섰다. 이날 미국 측에서는 보잉과 록히드마틴 등 14개 방위산업체가 참가했다.
미국은 러시아 무기 전시 장소에서 불과 20여 m 떨어진 곳에 △C-130J 허큘리스 수송기 △M777A2 155㎜ 곡사포 △’탱크 킬러’로 불리는 A-10 선더볼트Ⅱ 전투기△M1083 중형전술차량(LMTV) 등의 실물을 전시하기도 했다. 지난 2022년 열린 베트남의 첫 번째 국제방위엑스포 당시 미국 측이 군수품 모형만 전시했던 것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행사장에서는 베트남에 무기 공급을 늘리기 위한 외교전도 펼쳐졌다. 마크 내퍼 주베트남 미국대사는 베트남 군 관계자들에게 “우리 목표는 베트남이 해상, 공중, 지상, 사이버 공간에서 자신의 이익을 방어하는 데 필요한 것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라며 자국산 무기 세일즈에 나섰다.
중국, 베트남 방위엑스포 첫 참석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과 갈등을 빚고 있는 중국은 올해 처음으로 이 행사에 모습을 나타냈다. 중국 최대 군산복합체인 북방공업(NORINCO·노린코)이 VT4 주력 전투탱크와 VN-17 추적보병전투차량 등 자국 독자 기술로 개발한 무기 축소 모형을 앞세워 참여했다.
노린코는 2005년 이란에 미사일과 화학무기 원료 등을 판매하며 미국의 금수 조치를 대놓고 어긴 혐의로 미국의 제재 대상에 포함된 곳이다. 올해 1월 영국 텔레그래프는 이스라엘 방위군 조사 결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노린코의 ‘QBZ 돌격소총’을 비축해 사용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손님이지만 베트남은 이를 개의치 않고 중국을 자국 행사에 불러들인 것이다. ISEAS의 장 연구원은 “중국 대기업의 (엑스포) 참석은 중국이 베트남 군사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베트남이 중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와 교류할 의향이 있음을 드러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전쟁이 한창인 이스라엘과 이란도 실내 전시장에 부스를 차렸다. 이스라엘은 3대 방산업체 중 두 곳(이스라엘항공우주산업·라파엘)이 참여해 방공 시스템과 정밀 타격 유도 무기, 무인정찰기 등을 선보였다. 이스라엘은 러시아에 이은 베트남 주요 무기 공급 국가 중 하나다.
이란은 국방부가 직접 나섰다. 이란 측은 이 자리에서 신형 BM-300 지대지 탄도미사일 축소 모형을 처음 공개했고, 드론 공격을 무력화하는 대(對)드론 시스템 등 전자전(EW) 장비와 순항미사일 모형도 전시했다. 공교롭게도 이란 국방부 부스는 이스라엘 전시관에서 도보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했다.
이번 전시회는 지정학적 긴장 상태인 국가들이 한 공간에 모여 자국 방위력을 과시하는 보기 드문 자리였다. 이는 베트남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유연한 ‘대나무 외교’를 표방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풀이된다.
우크라이나에서는 헬기·엔진 제조 업체 '모터시치' 한 곳이 사전 참가 신청을 했지만 정작 전시장 부스는 비어 있었다. 황쑤언찌엔 베트남 국방부 차관이 지난 9월 평양을 방문해 김민섭 북한 국방성 부상(차관)을 만났을 당시 북한을 엑스포에 초대하면서 참석 가능성도 거론됐지만, 성사되지는 않았다.
주최국인 베트남은 군이 소유한 통신사 겸 최대 방산업체인 군사산업통신그룹(비엣텔)을 앞세웠다. 구 소련의 중고도 지대공 미사일 S-125 페초라를 현대화한 방공 요격 미사일(S-125-VT)과 중거리 대공 방어 레이더 등을 선보였다. 한국에서는 한국 유일의 군용 차량 제작 기업 기아와 LIG풍산프로테크 등 6개 방산업체가 참석했다.
다만 베트남이 러시아제 무기 의존도를 빠르게 낮추고 한국이나 미국 무기를 구매하기는 쉽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국과 미국 등이 사용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표준 규격과 러시아 등 동유럽 국가 무기의 규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 외교가 관계자는 “베트남이 서서히 러시아 무기체계에서 이탈해 서방 무기로 전환하는 중이지만 그 비중이 높아지기까지는 시일이 걸릴 것”이라며 “무기 수입·수출 시 우선 고려해야 할 게 기존 운용 중인 무기와 호환이 가능한가인데, 베트남 무기 상당수는 러시아제여서 호환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장벽을 넘는 게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하노이=글·사진 허경주 특파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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