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韓日 국교 60주년과 탄핵의 그늘

김동현 기자 2024. 12. 27.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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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일본 도쿄 주일한국문화원에서 열린 한일 문화 교류 공연 '동행'의 한 장면. 이번 공연은 내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해 열렸다./주일한국문화원

지난가을 서울에서 열린 한일 외교 관련 행사에 참석했을 때 얘기다. 예년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행사 규모가 크고 참석자 인지도도 높았다. ‘내년엔 어떡하려고 이러느냐’는 농담 섞인 기자의 질문에 한 일본 외교관은 “내년엔 더 자신 있다”고 답했다.

최근 연말 모임 겸 만난 일본 외무성 파견 직원의 표정은 몇 달 전 만난 외교관과 딴판이었다. 그는 “한국 ‘비상계엄 사태’ 이후 내년을 대비하던 (일본) 외교관들 사이에 비상이 걸렸다”고 했다. 내년은 한일 국교(國交)가 정상화된 지 60주년 되는 해. 그러나 2022년 취임 이후 한일 관계의 기록적인 개선을 이뤄낸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될지, 5년 전 ‘노 재팬’의 쓰라린 아픔을 안긴 민주당에 정권이 넘어갈지 그 어느 것도 불확실한 상황에 기존에 계획하던 국교 정상화 60주년 관련 행사들도 사실상 ‘올 스톱’된 상황과 마찬가지란 얘기였다.

‘비상계엄 사태’는 숱한 전문가 진단처럼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임과 동시에, 경제·문화·방산 등 다방면에서 높아진 국력을 동력 삼아 보폭을 넓히던 한국 외교가에도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연초부터 국교 정상화 60주년 행사에 공을 들이던 일본 외교관들에게도 그랬다고 한다. 일본 외교관들이 내년 한일 관련 행사에 유력 경제 인사와 K팝 아이돌 가수를 섭외하려 국내 주요 기업과 연예 기획사 관계자들을 만나고 다닌단 소식은 연초부터 들렸다. 일본 주력 언론들도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가 이뤄낸 유례없는 관계 회복을 높게 평가하며 이를 뒷받침했다.

하지만 일본의 현장 외교관들은 애써 회복된 한일 관계가 비상계엄 사태를 계기로 물거품이 될지 걱정했다. 내달 예정됐던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방한 일정은 계엄 소동 이후 연기됐고,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 겸 일한의원연맹 회장의 이달 방한 계획도 취소되는 등 증상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요미우리·아사히 등 일본 매체가 한국 비상계엄 사태 소식을 연일 신문 1면에 실으며 양국 관계 퇴보에 대한 우려를 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라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국 외교관들의 상황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정부 간 외교는 수년짜리 수명인 정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양국 국민의 ‘민간 외교’가 한일 관계를 굳건히 받치고 있다는 점은 그나마 희망적이다. 지난 22일 일본 오사카에서 한국 드라마 원작의 현지 여성 극단 뮤지컬이 성황리에 상연됐고, 지난 14일 한 J팝 가수의 내한 공연에 2만명에 달하는 관객이 몰렸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1965년 한일 외교관들이 피땀 흘려 맺어낸 국교 정상화의 결실이 민간에서 비로소 꽃을 피우고 있는 셈이다. 애써 피어난 꽃이 다시 정치의 영역에서 짓밟히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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