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원서 40장 쓴 취준생 "스펙 채우려다 나이 차버려" [현장르포]

서지윤 2024. 12. 26.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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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떨리는 '고용한파' 직격탄 맞은 20대 청년들
계엄사태 여파 경영환경 불확실
기업들은 채용문부터 닫아버려
신입보다 경력직 선호도 '난관'
사회진출 늦을수록 양극화 심화
경제 펀더멘털 약화 등 국가 부담
전문가 "경기 살아야 일자리 늘어
정부·지자체가 적극 지원 나서야"
26일 오전 11시께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고시촌에서 취업 준비생들이 발걸음을 서두르고 있다. 사진=서지윤 기자
서울 소재 대학 졸업 후 2년째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이모씨(27)는 학교를 나온 뒤에도 게을리 살아본 적이 없다. 스타트업 2곳에서 총 9개월 동안 체험형 인턴 경험을 쌓으면서도 저녁에는 책상 앞에 앉아 어학 자격증에 도전했고 성과를 냈다. 올 하반기부터 아예 눈을 낮춰 40여곳의 기업에 원서를 냈다. 이 가운데 면접 연락이 온 것은 10곳뿐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모두 떨어졌다. 이씨는 "이력서 공백을 채우다 보니 나이까지 차 버렸다"며 "내년까지 사기업에 취업이 안 되면 나이를 덜 보는 공무원이나 개발자 준비를 해 볼 생각"이라고 토로했다.

■신규채용 줄고 비상계엄 후폭풍까지

고용 상황이 녹록치 않으면서 20대 청년들이 고용 한파의 '직격탄'을 맞았다. 저성장과 경기 침체 기조가 이어지며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축소하고, 기업들이 신입사원 대신 경력직 채용을 선호하는 탓이다. 여기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정국이 혼란스러워지며 청년층의 취업문이 더 좁아질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경기 활성화가 취업난의 근본적인 대안이라면서도 정부 지원책 확대를 주문했다.

26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20대 이하 취업자 수는 366만8000명으로 1년 전(384만8000명)보다 18만명 줄었다. 20대 이하 취업자 수가 전년 동월 대비 감소하는 추세는 지난 2022년 11월부터 25개월째다. 특별한 이유 없이 취업이나 구직 활동을 하지 않고 그냥 시간을 보내는 '쉬었음' 인구는 전년 동월 대비 17만9000명(8.0%) 증가했는데 특히 20대가 6만5000명으로 1년 전보다 20.2% 급증했다.

취업 문이 좁아지자, 일부 청년들은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며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금융권 취업 준비생 김은비씨(26)는 "7개월째 한 번에 4시간 30분씩, 일주일에 3일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취업을 준비한다"며 "주 15시간 미만으로 일해서 퇴직금은 못 받지만, 그래도 이 일이 금융권 취업을 준비할 수 있게 하는 버팀목"이라고 말했다.

불가피하게 늘어나는 공백기를, 자격증을 취득하며 소명하려는 청년들도 적지 않았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에서 노무사 시험을 준비하는 조모씨(30)는 "노무사가 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정보관리사, 직업상담사 자격증을 미리 취득했다"고 전했다.

취업에 도움이 되도록 남들이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 편입 시험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었다.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고시촌에서 편입을 준비하는 강모씨(26)는 "암암리에 몇 개 대학 출신이 아니면 (기업에서) 서류 합격을 안 시켜준다는 말을 들어서 2년째 편입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20대 청년들의 취업문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는 이유는 저성장의 장기화와 경기 침체로 기업들이 신규 채용을 축소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올해 2분기 임금 근로 일자리 중 20대 이하 신규 채용 일자리는 145만4000개로, 1년 전(159만개)보다 13만6000개(8.6%) 감소했다. 2018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로 가장 적은 수치다.

기업이 경력직 중심으로 채용 방식을 바꾼 점도 청년들의 취업 시장 진입을 어렵게 하는 원인 중 하나다. 일반적으로 청년들은 신규 채용공고에 지원하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2시 기준 고용24에 등록된 채용공고는 11만5541건이었는데, 이 중 신입 채용공고는 1만4394건으로 전체의 8.03%에 불과했다.

■국가 부담 '부메랑' 청년 실업

문제는 청년들의 사회 진출이 늦어지는 것이 개인 생애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국가 부담으로 부메랑처럼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창 일할 나이인 청년이 사회 진출을 못 하면 양극화가 심화하고, 경제 기초 체력이 약해진다"고 설명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이러한 추세가 계속되면 한참 생산 활동에 매진해야 할 젊은 층이 국가나 가정의 부양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 속 '12·3 비상계엄 사태'로 정치적 혼란까지 커지며 청년들이 취업 문턱을 넘기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 경기가 안 좋으면 기업이 투자를 주저할 테고 일자리 창출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경기를 활성화해 양질의 일자리가 늘지 않는 한 근본적 해결은 쉽지 않다고 평가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경제가 잘 돌아가면서 일감이 생기고 그 일감을 따라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것이 순리"라고 지적했다.

경기 불황 속 청년들이 낙담하지 않고 취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조언도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가와 지자체가 나서 직업 훈련 등 취업에 도움이 될 만한 지원을 하는 것이 어느 때보다 필요해 보인다"고 분석했다.

jyseo@fnnews.com 서지윤 최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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