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노] 초고령사회…조금 다른 걱정

권혁범 기자 2024. 12. 26.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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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엄마(아빠) 테레비 나왔다. 나는 잘 있다. 걱정하지 말고 너거나 건강해라.”

팔순을 바라보는 어머니와 거의 매일 저녁을 함께 먹습니다. 어머니가 고정으로 틀어놓는 TV 채널에서 매주 한 차례 내보내는 지역 프로그램이 있는데요. 구수한 사투리를 쓰는 다큐멘터리 감독이 시골 마을을 찾아다니며 ‘어리석은 질문’을 하고 ‘현명한 답’을 듣는 콘셉트입니다.

시골 어르신에게 카메라를 비추면 십중팔구는 같은 말을 합니다. “나는 잘 있다. 아픈 데도 없다. 걱정하지 마라.”

부산의 한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는 어르신들. 국제신문 DB


7, 8년 전 취재 현장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대화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부산의 한 경로당에서 할머니들이 주고받은 말입니다.

“니하고 내하고는 나라의 ‘좀’이다. 우리가 세금 내는 자식이 있길 하나, 그렇다고 돈을 벌길 하나. 남의 귀한 자식들이 힘들게 내는 세금으로 우리가 먹고사는 거다. 우리 같은 노인들이 빨리 사라져야 나라도 부자가 된다.”

“지하철 적자 난다고 맨날 노인들이 욕먹는다 아니가. 근데 그게 틀린 말이 아니야. 할 일 없는 노인들이 우르르 지하철을 타서, 사람이 그래 붐비는데 자리 다 차지하고 앉아 있거든. 정 타려거든 출퇴근 시간 피해서 젊은 사람들 안 바쁠 때 타든지.”

“요새 보면 지하철 타는 노인들이 일부러 가방 들고 앉아 있는 젊은이들 앞에 딱 붙어 선다. 자리 양보해 달라는 거지. 그러면 안 돼. 젊은 사람들이 대번에 욕해.”

당시 국제신문 취재팀이 이 어르신들과 ‘소풍’을 가기로 했었는데요. 끝까지 가지 않겠다던 한 어르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풍) 안 간다. 내가 (잘 걷지도 못하는데) 이래 가지고 구르마(보행기) 끌고 나가 봐라. 당장 보는 사람들이 욕해. ‘자기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할매가 누구 고생시킨다고 이런 데 나왔노’ 당장에 이래 얘기한다고. 나도 염치가 있는 사람이야. 안 가.”

대한민국이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습니다. 유엔(UN)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은 고령 사회 ▷20% 이상은 초고령 사회로 구분합니다. 행정안전부 집계 결과 지난 23일 기준 우리나라 65세 이상 주민등록 인구는 1024만4550명으로, 정확히 전체(5122만1286명)의 20%를 기록했습니다.

이제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 5명 중 1명은 65세 이상이라는 얘깁니다. 부산에선 어르신과 마주칠 확률이 더 높습니다.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대도시 가운데 가장 높은 23.87%에 달합니다. 당장 “인구 전담 부처를 설치하는 등 근본적이고 체계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미 예고된 일입니다만 우리 사회가 받아들이는 충격은 예상보다 큽니다.

이런 종류의 통계가 발표되면 어르신은 종종 애꿎은 눈치를 봅니다. 생산성 감소, 노동력 부족, 의료비를 비롯한 사회적 비용과 국가 부채 증가, 젊은 세대의 경제적 부담 가중, 소비시장 변화에 따른 경기 침체, 지역 소멸…. 어르신을 ‘궁지’로 모는 해설이 자꾸만 달립니다.

너무 일방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르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사람과 자본을 수도권으로만 밀어 넣고, 경쟁에 내몰린 젊은 세대가 결혼과 출산을 꺼리게 하고, 아이를 맘 편하게 키울 수 없게 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 잘못입니다.

생각을 좀 전환해야 하지 않을까요.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대한민국은 이에 맞게 체질을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어르신은 엄연히 존중·보호받아야 할 대상입니다. 젊은 시절 갖은 고통 참아내며 자식 길러낸 우리 부모님들이 나이 들어 자녀 눈치, 지하철에서 만난 학생 눈치, 길에서 스친 청년 눈치…. 가는 곳마다 온갖 눈치에 시달리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늙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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