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좌번호 좀 내주이소”...홍준표 최측근이 여론조사비 대납

이명선 2024. 12. 26. 07: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뉴스타파는 홍준표 대구시장 최측근으로 알려진 박재기 씨가 명태균 여론조사 비용을 대납한 사실을 확인했다. 박 씨는 홍 시장 스스로도 '측근'이라 밝힌 인물로 경남도시개발공사 사장을 역임했다. 앞서 뉴스타파는 명태균 씨가 대구시장 선거 당시, 총 8차례에 걸쳐 비공표 여론조사를 실시한 사실을 보도했다.(관련 기사 : '홍준표 여론조사' 의뢰한 최측근 "대구시장, 퍼센트 불러주이소")

뉴스타파는 미래한국연구소 여론조사 실무를 맡았던 강혜경 씨의 계좌 내역와 관련 통화 녹음파일을 확보했다. 녹음파일에서 측근 박 씨는 강 씨에게 조사 결과를 미리 묻거나, 조사 비용을 입금할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말했다. 전화를 끊은 뒤 실제로 측근 박 씨가 여론조사비를 입금했다. 금액은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2건, 총 1,500만 원이다. 

그런데 박 씨는 매번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입금했다. 선거 캠프 차원의 여론조사였다면, 선거 비용으로 지불하면 된다. 그러나 미래한국연구소 계좌가 아닌 강 씨의 개인 계좌에 차명으로 입금했어야만 했던 사정도 파악된다. 불법적으로 유출된 대구시 책임당원 명부가 당시 여론조사 표본으로 활용됐기 때문이다.  

여론조사비 대납은 홍준표 시장의 불법 정치자금 수수 문제로 번질 수 있다. 

박재기, 강혜경 통화에서  여론조사비 "비싸다" 불만 제기...총 8차례 조사 실시 

박재기 씨는 홍준표 시장이 경남도지사를 하던 2014년, 경남개발공사 사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박 씨는 공사 채용 비리, 주민소환 명부 조작 등의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지난해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됐다. 홍 시장은 사면 발표 몇 주 전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와 찍은 사진을 공개하며 그와의 친분을 과시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박재기 전 경남개발공사 사장 사면 발표가 있기 몇 주 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그와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 홍준표 대구시장 페이스북

미래한국연구소에 대구시장 선거 여론조사를 의뢰하고, 비용을 지불한 인물은 박재기 씨였다.

2022년 4월 11일, 강혜경 씨는 박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날 통화에서 강 씨는 "다름이 아니라 혹시 앞에 조사비 잔금 어떻게 되는지 해서요...조금 빨리 처리 부탁드리겠습니다"라며 잔금 완납을 독촉했다. 이에 박 씨는 "그런데 서울 또 다른 데 한 번 했는데 거기는 (표본) 2천 개 해가지고 그것도 공표용 해가지고 언론에 공표까지 해가지고 내 660만 원 줬어요"라면서 조사 비용이 비싸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에 강 씨는 "데이터 다 받으시고요?"라고 되묻는다. 여기서 '데이터'는 표본의 지지 성향이 담긴 로데이터(Raw Data)를 뜻한다. 정상적인 여론조사 업체는 로데이터를 의뢰자에게 주지 않는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홍준표 대구시장 선거와 관련해 명태균 씨는 총 8차례에 걸쳐 비공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미래한국연구소 자료를 입수해 살펴본 결과, 홍 시장 측이 명 씨에게 대구 지역 국민의힘 책임당원 명단을 넘겼고 이를 표본으로 삼아 조사를 실시한 사실이 포착됐다. 강 씨는 뉴스타파 인터뷰에서 각 책임당원들의 응답 결과가 담긴 '로데이터(Raw Data)'가 홍준표 캠프에 넘어갔다고 말했다.   

후보자가 개인정보가 담긴 책임당원 명부를 갖고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를 토대로 여론조사까지 실시했다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에 더해 불법 선거운동 문제가 된다.  

● 박재기 : 여보세요.
○ 강혜경 : 예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미래한국연구소 강혜경입니다. 네. 다름이 아니라 혹시 앞에 조사비 잔금 어떻게 되는지 해서요.
● 박재기 : 예예 좀 이따가 드릴게요.
○ 강혜경 : 조금 빨리 처리 부탁드리겠습니다.
● 박재기 : 그런데 서울 또 다른 데 한 번 했는데 거기는 (표본) 2천 개 해가지고 그것도 공표용 해가지고 언론에 공표까지 해가지고 내 660만 원 줬어요.
○ 강혜경 : 데이터 다 받으시고요?
● 박재기 : 예. 그러니까 그거 진짜 너무 나는 깜짝 놀랬어요. 알겠습니다. 일단 예. (네 알겠습니다) 아가씨한테 하면 뭐하노.
- 박재기 - 강혜경 통화녹취록 (2022.4.11)

○ 강혜경 : 네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 박재기 : 계좌번호 좀 내주이소.
○ 강혜경 : 네 알겠습니다.
- 박재기 - 강혜경 통화녹취록 (2022.4.20.)

통화 1시간 뒤 입금...2건 총 1,500만원 대납 사실 확인

앞서 통화 9일 후인 2022년 4월 20일, 박 씨는 강 씨에게 전화로 계좌번호를 알려 달라고 요구했다. 

박 씨가 강 씨에게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전화를 건 시각은 2022년 4월 20일 오후 4시 16분. 그로부터 1시간 뒤 강 씨 개인 계좌로 1천만 원이 입금됐다. 입금자 이름은 박재기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차명으로 비용을 지불한 것이다. 단순히 이름만 바꾼 것인지, 아니면 아예 다른 사람이 입금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강혜경 씨가 뉴스타파에 제공한 박재기 씨의 차명 입금 내역 2건. 박 씨는 매번 차명으로 입금했다고 한다. 홍준표 여론조사비 대납 총액은 차명 입금 탓에 아직까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다.  

박 씨는 계속해서 차명으로 여론조사비를 보냈다고 한다. 2022년 3월 2일 강 씨에게 송금한 500만 원도 박 씨 이름이 아니었다. 500만원이 입금된 시점은 두 번째 비공표 여론조사가 실시된 이후다. 입금할 때마다 이름을 바꿨던 탓에, 박 씨가 대납한 여론조사비 총액을 정확히 특정하진 못한 상태다. 

지금까지 확인된 건, '2건=1,500만 원'이다. 

2022년 대구시장 선거와 관련해 명태균 씨가 실질적으로 소유한 미래한국연구소는 총 8차례에 걸쳐 비공표 여론조사(주황색 표시)를 실시했다. 홍준표 대구시장 측근 박재기 씨는 다른 사람 이름으로 총 두 차례에 걸쳐 강 씨 개인 계좌로 총 1,500만원(초록색 표시)을 입금했다.

홍준표, 최근 휴대전화 번호 교체... 증거인멸 논란 불가피

여론조사비를 측근 박 씨가 대신 내주고, 이를 홍 시장이 선거운동에 활용했다면 정치자금법 위반이다. 이에 더해 국민의힘 대구시 책임당원 4만 4천 명의 개인 정보가 명 씨에게 넘어간 사실도 검찰 수사에서 규명돼야 할 부분이다.    

홍준표 시장은 지난 3일 "박재기는 고향 후배로 늘 나를 도와준 측근이지만, 선거 전면에 나서서 직책을 가진 일은 한 번도 없다"면서 "박 씨가 자기 돈을 주고 캠프와 상관없이 여론조사를 의뢰했고, 자신은 해당 여론조사를 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측근은 맞지만, 박재기의 단독 행동이란 얘기다.

하지만 뉴스타파는 박 씨를 홍준표 캠프에서 직접 만났다는 인물도 인터뷰했다. 직접 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구체적인 사실들이 증언으로 나왔다. 그리고 캠프와 관계 없이 박 씨가 스스로만 알고자 명태균에게 여론조사를 의뢰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박 씨가 매번 차명으로 입금하고, 강 씨에게 조사비가 "비싸다"고 불만까지 터뜨린 점들도 홍 시장의 반론을 무색하게 한다. 

뉴스타파는 홍준표 시장과 박재기 씨에게 당시 여론조사비를 박 씨가 대납한 것이 맞는지, 차명 입금자가 누구인지 등을 물었지만 아무런 답을 들을 수 없었다. 홍준표 시장의 비서실장과 대구시청 대변인에게도 반론과 해명을 요청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홍 시장이 최근 자신이 써왔던 휴대전화 번호를 바꾼 사실이 확인됐다. 단순히 번호만 바꾼 것인지, 아니면 아예 다른 통신사로 갈아타며 번호까지 바꾼 것인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는다. 

명태균 게이트를 수사 중인 창원지검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에 대한 여론조사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수사를 앞두고 전화기만 교체해도 의심을 받는데, 홍 시장은 자신의 기존 전화번호를 아예 없앴다. 통신사가 보관하는 통화내역은 최장 1년이다. 검찰은 통신 영장으로 통화내역을 확보하는데, 만약 번호를 바꿨다면 통화내역 확보가 어려울 수 있다.

'명태균은 사기꾼이고 나는 관계없다'고 주장해오던 홍준표 시장이 스스로 증거인멸 논란을 자초했다. 

뉴스타파 이명선 sun@newstapa.org

뉴스타파 봉지욱 bong@newstapa.org

Copyright © 뉴스타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