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매장 ‘진상’ 손님, ‘참교육’ 대신··· [콘텐츠의 순간들]

조경숙 2024. 12. 26.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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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명품관의 진상〉은 명품 매장 직원의 이야기다. 공격적인 손님을 마주하는 서비스 노동자의 고충이 드러난다. 모난 사람마저 다정하게 견디는 마음을 생각하게 된다.

‘참교육’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는다. 예전과 지금의 ‘참교육’은 완전히 다른 말이니까. 이전의 참교육은 말 그대로 참된, 곧 진실한 교육을 일컬었다. 교육자가 아닌 터라 나도 참교육에 대해 제대로 말하긴 어렵지만, 적어도 상대를 진심으로 이해하고 독려하며 그를 부드럽게 변화시키는 힘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런 의미의 ‘참교육’을 말할 때는 언제나 〈빨간 머리 앤〉의 스테이시 선생님이 떠올랐다. 주변의 어른들에게 곧잘 무시당하고 구박받던 앤을 다독이며 앤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또 새로운 성장과 도전의 기회를 제공한 선생님이다. 앤은 당시 공동체 규범에 썩 들어맞지 않는, 모나고 괴팍한 구석이 있는 아이였지만 스테이시 선생님은 언제나 지지와 응원을 보내며 앤의 변화를 조심스럽게 이끌어왔다.

지금의 ‘참교육’은 다르다. 유튜브에서 ‘참교육’을 검색해보면, 상대에 대한 폭력을 ‘참교육’으로 포장한 콘텐츠가 줄줄이 노출된다. 흔히 말하는 ‘빌런’, 즉 구제 불능의 진상에게 공개적으로 면박을 주거나 했던 짓을 똑같이 되돌려주는 등 앙갚음이 곧 참교육으로 일컬어진다. 아예 참교육이라는 이름을 제목으로 달고 나온 웹툰 〈참교육〉은 특정 인물들을 갱생 불가능한 악마처럼 표현할 뿐만 아니라 그런 인물들을 사회적으로 완전히 추락시키거나 심지어 물리적 폭력을 동원하여 짓밟는 것을 곧 ‘참교육’이라고 포장한다. 상대를 감화하거나 변화시키는 대신 배제하고 추방하는 데에서 쾌감을 얻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 ‘참교육’의 현주소다.

그리고 이러한 ‘참교육’ 스토리텔링은 비단 창작 콘텐츠에서뿐만 아니라 네이트판, 스레드,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람들은 매일같이 어떤 진상을 만났으며 그래서 어떻게 응징했는지를 공유한다. 그런 글을 읽다 보면 ‘어떻게 사람 사이에서 저런 일이 일어날까?’ 싶어 놀라고, ‘응징만이 해결책일까?’ 하며 심란해진다. 누군가의 패악을 그저 참으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누군가는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패악을 부리고, 또 누군가는 그러한 패악을 되갚아주는 일이 왜 이토록 만연하게 되었는지, 우리 사회가 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를 돌아보게 된다.

그런데 얼마 전, 네이버웹툰에 〈명품관의 진상〉이라는 웹툰이 새로이 연재를 시작했다. 최근 이어져온 ‘참교육‘의 맥락일 듯하여 제목만으론 작품을 보고 싶은 마음이 썩 들지 않았다. 이미 SNS에 흔하디흔한 진상 목격담 혹은 퇴치담일 것이라 여겨져서다. 게다가 ‘명품관’의 진상이라니, 고가의 상품이 오가는 만큼 그 에피소드들도 어쩐지 지나치게 자극적일 것 같았다. 그러나 내게 악취미가 하나 있으니, 싫다고 느껴지는 것일수록 읽고, 맛보고, 가본다는 것이다. 시간 낭비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나의 오판을 수정할 기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명품관의 진상〉이 바로 그랬다. 정신을 차린 순간에는 이미 유료 회차 에피소드까지 모두 결제를 마친 뒤였다. 이 작품은 단순히 자극적인 ’진상 짓’을 진열하는 것이 아니라, 백화점 서비스 노동자의 고충과 보람, 한탄과 성취를 복합적으로 다루는 작품이었다.

나는 내 일에서 어떤 태도를 가졌나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이 웹툰의 주인공은 명품 브랜드 ‘빗싸’의 점장 ‘오진상’이다. 오진상은 10년 넘게 백화점의 명품 매장에서 근무하며,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접객 태도를 체득한다. 1화에서 오진상은 이렇게 독백한다. “사람마다 사치의 기준은 다르다. (···) 나에게 사치는 감정을 내비치는 것이다.” 수선이 불가하다고 안내하자마자 ‘칼로 찢어 죽인다’며 협박받았던 오진상은 그런 전화조차 겉으로는 태연한 척 친절한 목소리로 전화를 끊지만, 마음속으로는 덜덜 떨며 드라이버 하나를 품에 넣어둔다. ‘칼로 죽이겠다’던 고객이 언제 올지 몰라 노심초사 불안해하면서도 근무는 이어가야 하기에, 불안한 감정을 내비치지 않도록 자신의 마음을 꾹 억누른다.

그는 직원들에게 “무섭게 생겼든 아니든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지 말고 누가 오든 똑같이 응대하라”고 가르치지만, 워낙 많은 일을 겪어온 터라 그 자신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고 독백한다. 다만 오진상은 겉모습을 보고 응대를 다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겉모습을 통해 앞으로 그가 당할지 모르는 패악질의 가능성을 예견하고 대응한다는 데에서 다른 직원들과 차이가 있다.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것은, 유달리 자존감이 낮은 두더지 손님과의 일화다. 명품 매장을 찾아온 두더지의 곁에 서민이가 미소를 띤 채 서 있자, 이를 비웃음으로 받아들인 두더지가 겉모습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직원을 ‘참교육’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그는 살 마음도 없는 상품들을 색깔별로 모조리 꺼내도록 요구하고 상품을 가지고 오자마자 다른 사이즈를 다시 갖다 달라고 하는 등 직원을 괴롭힌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오진상은 침착하게 두더지의 요구를 모두 받아주고, 그런 후에 매장을 떠나려는 두더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빗싸’ 브랜드가 아니라 다른 브랜드에서 패션을 스타일링 해보는 것이다. 그러고선 “스타일을 달리하면 태도가 달라지지요. 자신을 위해서 달라질 미래를 스스로에게 선물해주세요”라며 말을 건넨다. 오진상은 두더지가 낮은 자존감을 패악질로 해소하려는 것을 애초에 꿰뚫고 있었지만, 그를 응징하거나 복수하기보다 도리어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이후 두더지는 서민이와 오진상에게 미안해하며 자신이 어지럽힌 매장 정리를 돕는다.

물론 이런 대처가 누구에게나 통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진상 손님’을 다루면서도 이렇게 잔잔한 감동을 선사한 이야기는 이 작품이 유일했다. 응징의 방식으로 ‘참교육’하겠다는 손님을 화해의 길로 돌아서게 하다니, 그것도 자신의 영역에서 쌓아온 지식을 바탕으로 전문적으로 접근하며.

나는 과연 내 일에서 어떤 태도를 가졌는지 돌이켜보게 됐다. 작은 실수로 섣불리 사람을 미워하고 있지는 않은지, ‘진상’이라 섣불리 욕하며 뒤돌아서진 않았는지. 여러 행동으로 그 사람을 밀어내고 차단하는 것은 쉽다. 반면 ‘저 사람은 왜 저럴까? 어째서 저런 행동을 하는 걸까?’ 고민하며 타인에게 다가서는 일은 정말이지 어렵고, 어려운 만큼 소중하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서 두더지는 이렇게 회고한다. ‘자랑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노력이 우리 일상을 촘촘하게 채우고 있었다(4화 중).’ 물론 세상은 넓고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이들도 많지만, 그런 모난 마음마저 다정하게 견뎌주는 노력이 있었기에 우리 사회가 이만큼 유지되고 있는 건 아닐까.

조경숙 (만화 평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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