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정원, 계엄 한달 전 백령도서 ‘북 오물 풍선’ 수차례 격추”
윤석열 보고받고 ‘크게 칭찬’
국가정보원(국정원)이 비상계엄 선포를 약 한달 앞두고 백령도에서 북한이 띄운 쓰레기 풍선을 ‘레이싱 드론’으로 여러차례 격추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지난 10월 북한이 ‘한국 무인기가 평양에 침투했다’고 발표해 군사 긴장이 높아지던 때에 ‘한반도의 화약고’로 불리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근처에서 드론 작전을 했다는 것이다. 당시 보고를 받은 윤석열 대통령이 ‘크게 칭찬했다’는 전언도 나왔다. 만약 북한이 적극 대응해 긴장 고조로 이어졌다면, 안보 위기를 핑계로 한 비상계엄 선포에 활용됐을 수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보기관 사정을 잘 아는 여러 소식통은 25일 한겨레에 “국정원이 지난 10월 말~11월 초께 특수전사령부 707특수임무단의 협조를 받아 인천 옹진군 백령도 일대에서 북한 쓰레기 풍선을 레이싱 드론으로 수차례 격추했다”고 밝혔다. 레이싱 드론은 조종하는 사람이 카메라 렌즈를 통해 실제 드론에 탄 것처럼 정밀하게 조종·사격할 수 있도록 만든 무인기를 말한다.
‘백령도 쓰레기 풍선 격추 작전’을 건의한 사람은 홍장원 당시 국정원 1차장이었다고 한다. 홍 전 차장은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 직후 윤 대통령한테 “이번 기회에 다 잡아들여. 싹 다 정리해”라는 전화를 받고,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한테 ‘체포 대상자 명단’을 전달받았다고 폭로한 뒤 해임된 인물이다. 그는 이 폭로 전까지 윤 대통령에게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당시 심리전단을 책임진 황원진 국정원 2차장과 합동참모본부는 △북방한계선 일대 드론 비행은 무력충돌 위험이 높고 △정전협정을 유지·관리하는 유엔군사령부가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했지만, 홍 전 차장이 밀어붙여 작전이 이뤄졌다고 한다. 조태용 국정원장이 이를 윤 대통령에 보고했고 ‘대통령님이 크게 칭찬하셨다’며 국정원 회의에서 우수 사례로도 공유됐다고 한다.
백령도는 서해 북방한계선 바로 밑에 있는 섬으로, 북한 황해도까지 거리가 17㎞에 불과하다. 북한이 북방한계선을 남북 해상경계선으로 인정하지 않고 백령도·연평도 근처 바다도 북한 영해라고 주장하는 상황에서, 한국 드론이 북방한계선 근처에서 북한 풍선을 격추할 경우 북한을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지난 10월11일 북한이 “한국 무인기가 평양에 침투했다”고 발표하고 27일에는 “평양 침투 무인기가 백령도에서 이륙했다”고 밝힌 바 있어, 국정원 안에선 백령도에서 드론 작전을 벌이는 데 우려가 나왔다고 한다.
국정원이 최악의 경우 무력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 무리수를 둔 것은 ‘위험 요소 사전 제거’라는 국가 위기관리의 기본을 망각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쓰레기 풍선에 국정원이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이 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지난 5월28일부터 지금까지 32차례 7천여개 쓰레기 풍선을 남쪽에 보냈지만, 윤석열 정부는 ‘낙하 뒤 수거’ 외에 마땅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특히 국정원이 이 격추 작전을 편 시기는, 북한 풍선에 실린 윤 대통령 부부 비난 전단이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국빈 방한 환영식을 준비하던 서울 용산 대통령실 잔디마당 등에 떨어진 지난 10월24일 직후다.
당시 격추 작전이 12·3 내란사태와 직접 연결된 대목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내란을 기획한 쪽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은 있다. 경찰에 압수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수첩에선 ‘북방한계선 북 공격 유도’ ‘백령도 작전’ 등의 메모가 발견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11월28일 합참에 쓰레기 풍선 원점 타격을 지시했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격추 작전 건의자로 알려진 홍 전 차장은 한겨레에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말이 있다. 다소 와전돼 오해의 소지가 있는 내용”이라고 답했다. 격추 작전 자체를 부인하지 않지만 이 작전이 내란사태나 ‘북풍 공작’과는 무관하다는 취지다.
국정원은 한겨레의 사실 확인 요청에 “(격추 작전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국정원은 북한의 쓰레기 풍선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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