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이 與의원 막았다? 오히려 월담 지원 한마음이었다"[인터뷰]
4인이 한팀 이뤄 월담 작전…여야 의원 15명 담 넘겨줘
시민들도 적극적 가담…'의원 제지' 경찰들과 몸싸움도
경찰 행태 충격…의원들에 물리력 행사·시민들에 시비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급작스럽게 비상계엄을 선포한 12월 3일 밤, 국회경비대 등 경찰은 계엄령에 따라 국회 출입을 통제했다. 계엄 해제 요구안 표결을 위해 달려온 국회의원들은 국회 담장을 넘어야 했다. 올해 67세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담을 넘어 국회에 진입하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평균연령 56.3세의 국회의원들이 국회경비대와 기동대 소속 젊은 경찰관들의 제지를 뚫고 사람 키보다 높은 국회 담장을 넘는 것은 생각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많은 시민과 국회 직원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더불어민주당 사무처 소속 직원인 김용근 부국장과 안준승 부장 역시 국회의원들의 월담을 도와준 숨은 영웅들이었다. 이데일리는 23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이들을 만나 당시 이야기를 들어봤다.
안 부장은 “표결을 위한 의원들의 국회 진입이 급선무라는 얘기를 당사무처를 통해 들었고, 국회에 들어가는 대신 덩치가 큰 사무처 소속 4명이 조를 이뤄 의원들이 담을 넘는 것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시민들이 국회 넘어가던 계엄군 막아서기도”
이들은 국회 외곽을 둘러보며, 담이 비교적 낮고 경찰들의 통제가 상대적으로 허술해 의원들이 담을 넘을 만한 장소를 물색했다. 그렇게 찾은 장소가 파천교(여의2교) 인근 수소충전서 쪽 담이었다. 안 부장은 곧바로 당사무처에 이 같은 상황을 알렸고, 안 부장의 연락처는 소속 의원들에게 공유됐다.
국회의원 월담에도 전략과 작전이 필요했다. 국회 안과 밖 모두를 경찰들이 감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은 경찰들의 시선을 끌지 않기 위해 주변을 배회하다 담을 넘으려는 의원들이 인근에 도착했을 때 순식간에 작전을 폈다.
김 부국장이 곧바로 담 앞에서 엎드리면, 다른 3명이 주변의 감시하며 의원들이 김 부국장의 등을 밟고 담을 올라 건너편으로 내려갈 수 있도록 돕는 식이었다. 김민석 의원을 시작으로 정동영·조승래·이춘석 의원 등 민주당 소속 의원 10여명의 월담을 이렇게 도왔다.
이들의 지원을 받으면 국회로 진입할 수 있다는 얘기는 다른 당 의원들에게도 순식간에 퍼졌고,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 무소속 김종민 의원, 복수의 국민의힘 의원들도 이들의 도움을 받아 국회 담을 넘어 국회 경내로 진입할 수 있었다. 이렇게 총 15명이 이들 도움으로 무사히 국회에 입성했다. 천 의원이 한 인터뷰에서 도움을 받았다고 언급한 시민들이 바로 이들이다.
두 사람은 국회의원들이 월담을 하는데 시민들의 도움도 컸다고 입을 모았다. 김 부국장은 “경찰들의 경비가 삼엄해지자 시민들이 다른 곳에서 넘어가는 척 경찰들의 시선을 끌었고, 그 틈을 타 의원들이 재빠르게 담을 넘는 경우도 있었다. 의원 월담을 막으려는 경찰들과 몸싸움이 난 경우에도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다”고 밝혔다.
계엄군 선발대의 국회 진입을 늦춘 것도 시민들이었다. 안 부장은 “계엄군이 탄 버스가 도착하자 경찰이 국회 담을 넘도록 길을 터줬다. 시민들이 달려들어 계엄군을 막아섰고, 결국 다수 계엄군은 국회 진입을 위해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함께 싸워주신 시민들 생각하면 눈물 나”
김 부국장은 “시민들도 여야 할 것 없이 표결을 위해 의원들이 한 명이라도 더 국회에 들어가야 하는 비상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했고, 저희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다”며 “여당 의원들에게 투표를 하라고 소리치는 경우는 있었지만 의원들을 막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시민들이 말 그대로 군인들을 몰아내던 상황이었다”고 부연했다.
이들은 당일 경찰의 행태에 대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국회 정문 출입 차단을 넘어 물리력으로 월담을 하려는 국회의원들까지 밀치며 큰 부상이 발생할 수 있었던 상황이 여러 번 나왔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 소속 한 의원이 경찰의 방해로 담벼락에 아슬아슬하게 서있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안 부장은 “국회 차단 초반엔 국회경비대 소속으로 보이는 경찰관들이 제지를 하면서도 의원들이 이미 담에 올라탄 상황에선 국회 안쪽에서 받아주는 경우도 있었다”며 “이후 경비가 더 강화된 후 외부 기동대로 보이는 경찰관들은 의원들을 적극적으로 밀치거나 잡아당겼다. 시민들에게 시비를 거는 등 일부러 시민들을 자극하려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고 비판했다.
두 사람에게 ‘당시 두려움은 없었나’라고 묻자 “무서웠다”는 답이 돌아왔다. 안 부장은 “소총으로 무장한 계엄군이 헬기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고, 야당 당직자인 만큼 ‘진짜 잡혀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바로 집에 전화해 ‘아버지를 잘 부탁한다’는 얘기까지 드렸다”고 말했다.
김 부국장도 “계엄 선포 당시 집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집을 나오면서 아내와 함께 커플 목걸이를 찼다. 아내에게 ‘살아 돌아오겠다’는 말을 했다”며 “실제 이 불법 계엄이 성공했다면 우리는 삼청교육대에 끌려갔을 수 있다고 본다”고 답했다.
한광범 (totoro@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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