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건축전시관서 지역 상품을? '일제 잔재' 왜 살려놨는지 모르는 서울시 [추적+]

최아름 기자 2024. 12. 25.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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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일제 강점기 뼈아픈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도시건축전시관
2018년 역사문화광장 조성 차원서
일제 체신부 건물 허물고 만들어
서울시 “지역 관광 홍보하겠다”며
도시건축전시관 쪼개는 계획 수립
목적성 잃은 도시건축전시관 미래
서울 도시건축전시관은 일제의 뼈아픈 역사를 담고 있다.[사진 | 연합뉴스]

서울 도시건축전시관에 가보셨나요? 서울시청 옆에 있는 멋들어진 전시공간입니다. 명칭은 '도시건축'이지만 내재된 철학은 숭고합니다. "일제의 뼈아픈 역사를 기억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죠. 2018년 서울시가 "역사문화광장을 조성하겠다"는 취지로 일제 강점기 시절 체신부로 쓰였던 건물을 허물고 전시관을 만들었습니다. 6년 후 서울시가 이곳에 '지역 전시 공간'을 만들겠다고 나섰습니다. 역사적 고찰이 있었던 걸까요?

서울시청 앞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성공회 성당의 뾰족하고 붉은 지붕이 보입니다. 그 바로 앞에는 약간 솟아 올라와 있는 건물이 하나 있습니다. 잔디밭 옥상을 회색 콘크리트로 만든 처마가 떠받치고 있는 건물, 서울 도시건축전시관(이하 도시건축전시관)입니다. 낮게 솟은 도시건축전시관과 그 뒤로 시원하게 보이는 성당의 풍경은 이제 익숙해졌지만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닙니다. 6년 전인 2018년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모습은 없었습니다.

이곳엔 원래 국세청 남대문 별관이 있었습니다. 이 멋없고 건조한 건물이 1978년부터 2015년까지 37년 동안 성공회 성당(1890년 준공) 앞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사실 성당을 가린 건 1937년 일제가 여기에 우편체신부 사무회관을 지으면서입니다. 1978년 이름을 바꾼 국세청 남대문 별관은 건물 자체로 일제의 잔재인 셈입니다.

그래서 서울시는 광복 70주년을 맞은 2015년 국세청 남대문 별관을 허물기로 했습니다. 일제의 잔재를 정리하려는 게 주된 목적이었죠. 대신 일제의 행적이 담긴 뼈아픈 역사를 보전하기 위해 지하에 있는 콘크리트 기둥 23개를 남겨 놓고 근대역사 아카이브 공간을 조성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른바 '역사문화광장' 조성 프로젝트였습니다.

사업은 속도를 냈습니다. 곧바로 세종대로 역사문화광장 설계 공모를 시작했고, 당선작을 공개했습니다. 터미널7아키텍츠 건축사무소가 구상한 '서울연대기'였죠. 이를 밑그림으로 이곳은 국내 최초 도시역사와 건축만을 위한 전시공간으로 거듭났는데, 이게 바로 지금의 '도시건축전시관'입니다. 2018년 시범 운영을 시작으로 6년간 도시건축전시관은 서울의 도시 계획과 건축을 이야기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11월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이곳을 폐쇄하고 다른 용도로 활용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사단법인 새건축사협의회는 성명을 통해 "도시건축전시관을 다른 용도로 전환하려는 서울시의 계획을 반대한다"고 요구했습니다.

서울시는 이 성명에 다음과 같이 답했습니다. "도시건축전시관 주변에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다닌다는 특성을 살려 이곳에 '지역 관광 자원'을 소개하는 기능을 추가할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 서울 도시건축전시관을 찾는 이용자가 적다는 점도 감안했다."

사람이 별로 찾지 않는 도시건축전시관의 '건축 전시' 기능을 줄이고 그 빈자리에 지방 관광 인프라를 소개하거나 공익적인 전시ㆍ행사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넣겠다는 겁니다.

서울시의 계획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현재 도시건축전시관은 잔디 광장으로 사용하는 옥상, 안내소가 있는 지상 1층, 지하 1층~3층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지하 1층부터 지하 3층까지 뚫려 있는 '비움홀'을 제외하면 층마다 갤러리가 1개씩 있습니다. 총 3개의 갤러리를 전시행사에 사용하고 있는 겁니다. 서울시의 계획은 이들 갤러리 중 일부를 용도에 맞게 바꾼 뒤 다른 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쓰겠다는 겁니다.

그러면서도 서울시는 도시건축을 전시하는 기회를 줄이진 않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또다른 공간에 도시건축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겁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도시건축전시관에서 도보로 20분 거리에 있는 '서울도시건축센터(이하 도시건축센터)'와 통합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참고: 서울도시건축센터는 서울 정동사거리에 있습니다.]

문제는 도시건축센터 역시 지속적인 운영을 담보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도시건축센터가 있는 서울돈의문박물관마을의 녹지화가 예정돼 있기 때문입니다. 이르면 2025년 녹지화 작업을 시작합니다. 서울시는 지난해 경희궁과 경희궁 인근에 있는 돈의문박물관마을을 역사문화공원으로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서대문이라 불리던 돈의문을 다시 만들고 돈의문박물관 마을을 철거해 공원으로 조성하겠다는 게 골자입니다.

이 과정에서 서울도시건축센터가 남아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참고: 일제의 만행을 기억하기 위한 도시건축전시관처럼 서울도시건축센터 역시 근대의 흔적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건물입니다. 1932년 유한양행의 사옥이었던 이 건물은 숱한 곡절을 거치면서 2010년대 서울시에 기부채납됐습니다.]

줄어든 서울 도시건축전시관의 전시 일부는 서울 도시건축센터와 나눈다. [사진 | 뉴시스]

서울시는 건축 전시공간을 줄이는 것과 무관하게 '도시건축전시관'이란 이름은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도시건축전시관의 관광 분야 홍보 전시ㆍ행사를 새롭게 담당한 서울시 관광정책과 관계자는 "지역 관광이나 건축과 무관한 행사는 도시건축전시관의 일부에서만 진행할 계획"이라면서 "도시건축전시관이란 명칭과 가치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고 설명했습니다.

근대역사를 가까이서 살피고 고민할 기회를 주는 공간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특히 일제의 잔재는 우리가 곱씹어야 할 역사입니다. 이런 면에서 도시건축전시관이 제 역할을 이어갈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역사문화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애초 취지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서울시는 "도시건축전시관에서 줄어든 전시공간을 다른 곳에 마련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그마저도 언제 어디로 밀려날지 모릅니다. 도시건축전시관에 깃든 역사적 가치는 지켜질 수 있을까요?

최아름 더스쿠프 기자
eggpuma@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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