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인 줄 알았는데 ‘GDP 킬러’라니

“빨리 (국회 본회의장)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에 있는 인원들을 끄집어내라.” ‘비상계엄의 밤’ 대한민국 대통령 윤석열이 비화폰(안보폰)으로 곽종근 특전사령관에게 내린 지시다. 44년 전 광주에서 벌어진 참상이 한국 정치와 금융의 심장부인 서울 여의도에서 되풀이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계엄사령부는 ‘언론 통제’를 포고문에 명시했다. 그러나 중국과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에서 그랬듯이 SNS의 세계에 비밀은 없다. 계엄군이 시민들을 곤봉으로 후려치고 의원들을 짐승처럼 끌고 나오는 광경이 전 세계로 전파되었을 터이다. 군사독재 이후 역대 한국 정부가 축적해온 ‘무형자산’인 대외 신뢰도(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는 나라)가 일순간에 무너질 수 있었다.
밤이라서 한국 증시는 가동되지 않았으나 해외시장은 DR(예탁증서, 해외 금융기관들이 한국 기업 주식을 산 뒤 이를 기반으로 발행하는 증권), ETF(한국의 주가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 등 한국 관련 증권들을 거래하고 있었다. 뉴욕 증시에 직접 상장한 쿠팡의 주가는 계엄 선포 직후 9.8% 떨어졌다. 포스코나 삼성전자의 DR도 3~4%대 낙폭을 보였다. 한국 주식을 추종하는 ETF들도 6%까지 떨어졌다. 12월3일 달러당 1403원이던 원화 가치는 불과 수 시간 만에 1440원대로 폭락했다(1달러와 바꿀 수 있는 원화가 1403원에서 1440원 이상으로 올랐으니, 원화 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한국 주식 및 통화 가치가 일부 회복된 것은 12월4일 오전 1시(한국 시각)쯤 국회에서 ‘계엄 해제 결의안’이 가결되면서부터였다. 이후 주가는 횡보하고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1450원대를 위협하고 있다. 12월12일 현재의 금융시장을 ‘위기’로 보긴 힘들다. 다만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이 윤석열의 지시를 따랐다면 지금 금융시장은 아비규환 상태일 것이다.
재앙의 불씨는 여전히 타오르고 있다. 해외에서는 내란 수괴가 대통령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와 거래를 지속해도 괜찮을지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지금의 금융시장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보이는 것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등의 노련한 관료들 덕분이다. 그들은 무지한 용산 대통령실과 달리 한국 경제에 얼마나 엄청난 일이 벌어졌는지 알고 있었다. ‘계엄의 밤’이 물러간 다음 날, 코로나19 팬데믹 시대를 방불케 하는 ‘시장안정화 조치’를 발표했다. 정부 주도로 시장에 유동성을 ‘무제한으로’ 공급해 자산가격의 폭락을 막겠다는 내용이다. 예컨대 50조원 규모의 ‘증시안정펀드(국책은행 및 주요 금융기관의 기금으로 만든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한국거래소(KRX) 정보데이터시스템에 따르면, 계엄 선포 다음 날인 12월4일부터 6일 사이, 외국인의 한국 주식 순매도(매도-매수) 규모는 1조원, 개인은 2600억원에 달했다. 국민연금과 기관투자자(증시안정펀드 자금을 지출)들이 1조원 규모의 주식을 매입해 증시 폭락을 막았다. 다시 증시가 개장한 12월9~10일 이틀 동안엔 개인투자자들이 무려 2조원 규모의 주식을 순매도했다. 국민연금과 기관투자자들은 1조3700억원 상당의 주식을 샀다.
“윤석열 곧 탄핵되어 정권교체 이뤄질 것”
한국은행은 내년 2월 말까지 국고채를 사실상 ‘무제한’으로 매입해서 시중 금융기관에 유동성을 제공하는 한편 금리인상을 저지하기로 했다. 정부(국고채 발행으로 돈을 빌린 채무자)의 신뢰도가 떨어지면, 투자자(채권자)들이 해당 국고채를 팔면서 그 가격이 떨어지기(금리가 오르기) 마련이다. 국고채 금리가 오르면 다른 대출들의 금리도 급등한다. ‘김진태 사태(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레고랜드 관련 지급보증을 철회하며 채권시장을 혼란에 빠뜨린 사건)’의 강화·확장극이 전개될 수 있었다. 한국의 금융시장은 현재 ‘깨진 독에 물 붓기’로 연명하고 있다.
깨진 독을 다시 붙이면 되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윤석열의 계엄 선포가 깬 것은, 국제 금융시장에서의 ‘한국에 대한 신뢰’이기 때문이다.
〈삼성의 부상(Samsung Rising)〉 저자인 아시아 경제 전문가 제프리 케인은 〈알자지라〉와 한 인터뷰(12월5일)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시아에선 홍콩에서 타이완까지 중국의 영향력이 점증하고 권위주의 독재가 돌출하고 있었다. 한국은 이런 흐름을 방어하는 성채이며 예외적 존재로 인정받았다. 이번 계엄 사태는, 한국이 시장분석가들의 믿음만큼 안정적인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경제 강국으로 한국의 입지가 영원히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저명한 경제 분석가이자 칼럼니스트인 윌리엄 페섹은 〈포브스〉(12월6일) 기고문에서 이번 비상계엄에 ‘bonkers(완전히 제정신이 아닌), bizarre(기괴한), antics(터무니없이 웃기는 행위)’ 같은 표현들을 사용하며 윤석열을 비웃었다. 윤석열을 ‘GDP 살인마(killer)’라고 불렀다. 그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계엄령’이란 단어를 들으면 인도네시아, 미얀마, 필리핀, 타이 등을 떠올린다. “이제 그 대열에 한국도 들어갔어. 윤석열! 그게 대통령으로서 당신이 남긴 업적이 될 거야.”
해외 언론과 ING 같은 글로벌 금융기관, S&P 등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은 윤석열의 거취를 둘러싼 정치·경제적 불안정성이 당장은 큰 충격을 주지 않지만 장기화되는 경우 한국 금융시장과 실물경제에 최악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경영 자문회사인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아시아태평양 책임자 토머스 매슈스는 12월4일 배포한 보고서에서 “윤석열이 탄핵당하거나 상당히 빠른 시일 내에 하야할 것이라는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투자자들도 이번 사건에서 선을 그을 수 있을 터이다”라고 기대했다.
시장 데이터 분석업체인 ‘글로벌 데이터 TS 롬바르드(Global Data TS Lombard)’의 애널리스트 로리 그린은 12월6일 보고서에서 ‘윤석열이 곧(soon) 탄핵되어 정권교체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다. 이후엔 재정지출 확대나 외교 다변화 등으로 “한국 경제에 새로운 성장의 물결을 가져올 수 있다”라고 보았다. 반대로, 대통령 선거가 내년 4월 이후로 지연될 경우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더 낮아질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러나 12월12일 오전, 윤석열은 대국민 담화를 통해 “탄핵하든 수사하든 당당히 맞설 것”이라며 임기 사수 의지를 분명히 했다. 계엄군을 국회에 투입한 이유도 질서 유지를 위한 것으로 “국회를 해산시키거나 기능을 마비시키려는 것이 아님이 자명하다”라고 주장했다. 만에 하나 윤석열이 임기를 이어간다 해도 이미 국내외에서 정치적 금치산자로 판정받은 그를 진지하게 상대해줄 해외 국가원수가 있을지 모르겠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과도한 시장 변동성에 적극 대응하겠다”라는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 더 강력한 ‘시장안정화 조치’를 취하겠다는 의미다. 깨진 독에 물 붓기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지금 가장 절실한 ‘경제’정책은 한시라도 바삐 윤석열을 대통령 직위로부터 분리하고 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당기는 것이다. 대(對)한국 투자의 수익률을 높이고 싶은 해외 투자기관과 언론들이 바라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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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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