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동물원] “바이러스 따위로 우릴 없애겠다고?” 호주 괴물 잉어의 코웃음

정지섭 기자 2024. 12. 24.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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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유입이래 2022년 대홍수 계기로 폭발적 번식
강바닥 훑으며 오염시키고 토종 물고기와 알 닥치는대로 잡아먹어
급기야 잉어만 죽이는 병원균 ‘잉어 바이러스’ 투입 준비
호주의 대표적 외래종 물고기인 잉어의 눈을 클로즈업했다./Victorian Fisheries Authority

생김새는 많이 다르지만 잉어와 가물치는 여러모로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다 자라면 1m 안팎까지 이르는 사이즈가 우선 그렇고요. 다른 물고기들이 꺼리는 흙탕물에서도 거뜬히 살아가는 생존력이 또한 그러하죠. 이런 강인한 기질 때문인지 보양용 즙의 원료로 사랑받는 것도 대표적인 공통점이죠. 빼놓을 수 없는 공통점이 또 있답니다. 고향을 떠나 외지로 가서 현지 생태계를 초토화시키며 ‘괴물 물고기’로 등극했다는 거예요. 얼마 전 아시아산 가물치가 미국의 호수와 연못·강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드렸는데요. 잉어의 악명도 이 못지 않게 자자합니다.

호주 빅토리아주 정부가 잉어의 영어 이름과 유명한 라틴어 경구가 겹치는 점을 이용해 언어 유희 형식으로 명명한 잉어 퇴치 작전인 '카르페 디엠'과 마크./Victorian Fisheries Authority Facebook

가물치와 활동 영역을 황금분할한 걸까요? 태평양 남쪽 호주로 건너가 초현실적인 번식력으로 숫자를 폭발적으로 불려가며 호주인들을 패닉 상태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미국인들이 가물치를 ‘잡으면 돌려보내지 말고 죽이라’는 아날로그 방식으로 퇴치하고 있는데 반해, 호주 당국은 좀 더 공격적인 박멸 작전을 준비중입니다. 바로 ‘바이러스’를 동원하겠다는 건데요. 잉어 퇴치를 위해 장기 프로젝트로 준비해온 바이러스 투입, 일종의 생화학전이 조금씩 현실화하는 모양새입니다. 이 잉어 박멸 프로젝트를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고까지 명명했어요. 잉어의 영어 이름 카프(carp)에 지금을 즐기라는 유명한 라틴어 경구인 카르페 디엠을 조합한 일종의 언어 유희죠. 그만큼 비장하다는 얘기인데요. 우선 대도시 멜버른을 끼고 있는 최남단 빅토리아주 어업국이 최근 올려놓은 사진부터 보실까요?

호주 빅토리아 수산당국에 포획된 잉어들./Victorian Fisheries Authority Facebook

수레에 한 무더기의 잉어가 담겨있어요. 25㎝짜리 어린놈부터 75㎝짜리 월척까지 400여마리가 포획돼 거대한 무더기를 이루고 있네요. 빅토리아주의 도시 그레이터 세퍼튼 당국의 주도로 최근 닷새동안 지역 호수에서 잡아올린 잉어들입니다. 마지막 아가미를 퍼덕이던 최후의 순간까지 잉어들은 특유의 동그란 눈을 희번덕거렸을 거예요. 양옆에 수염이 달린 입을 뻐끔거렸겠죠. 그렇게 뻐끔대며 내뱉는 소리없는 아우성을 인간의 언어로 해독하면 아마 이런 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외래종 잉어가 점령한 호주의 한 호수./Victorian Fisheries Authority Facebook

“어리석은 인간들아. 그렇게 우리를 잡아 족치려 한들 이 땅에서 사라질 것 같으냐. 그렇게 사나흘 걸려서 수백마리를 잡는다 한들 우리가 여기서 자취를 감출 것 같으냐. 요 며칠 새 꿈자리가 뒤숭숭하더구나. 어쩌면 내 목숨이 여기서 끝날지도 모른다는 괴이한 느낌이 들었다. 불현듯 죽을 땐 죽더라도 독수공방으로 어생(魚生)을 마감하고 싶지 않았다. 하여 지난 밤 나는 온 열정을 다바쳐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었다. 눈동자를 희번덕 거리며, 물살을 헤치며 임이 있는 그곳을 본능으로 찾아갔다. 아뿔싸,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이미 여기저기서 몰려온 놈팽이들이 꼬리 끝에 달라붙어있었다. 그 무리에 합류했다. 한 마리 암컷을 여러마리의 수컷이 뒤쫓으며 숨바꼭질하듯 산란과 수정이 반복되는, 세상 물고기 중 가장 역동적이고 극적이라는 우리 족속의 짝짓기가 그렇게 이뤄졌다. 마지막 힘까지 번식에 쏟아놓고 기진맥진한 나는 다른 놈팽이들과 함께 네놈들에게 붙잡혀 수레에서 이렇게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내 몸뚱아리는 이제 흙에 덮여 썩어문드러지겠지만 하나도 두렵지 않다.”

“어젯밤의 그 격렬함 속에 호숫가에 흩뿌려진 알이 몇 개인지 아느냐? 백개? 천개? 만개? 냐하하하. 한심한지고. 삼십만! 자그마치 삼십만개가 부화를 앞두고 있단 말이다. 게다가 진득한 광란의 사랑파티가 과연 한군데서만 벌어졌겠느냔 말이다. 크하하하. 네놈들이 500마리를 잡아들이면 뭐하겠느냐. 우리가 500만개, 5000만개의 알을 수초와 바위 틈 곳곳에 붙여놓을텐데 말이지. 네놈들도 알고 있지 않느냐. 이렇게 잡아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포획된 잉어들의 사체가 수레에 쌓여있다./Victorian Fisheries Authority Facebook

“네놈들이 우리 족속을 얼마나 무서워하고 있는지 모르는 바 아니다. 하긴, 생전 본적도 없던 물고기가 곳곳에 우글대면서, 네놈들이 그렇게 아껴마지 않던 토종 물고기들이 씨가 마르는데 분노하고 절망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우리가 이 땅으로 이주한 건 1970년대였지. 맑은 물보다는 흐린 물이 천성에 맞고, 썩은 내 나는 지저분한 곳도 내집처럼 여기고 편안하게 살아가는 우리 족속에게 호주의 강과 호수는 신세계였다. 물 만난 고기는 우릴 일컫는 말이었지. 우리의 주특기를 활용해 입을 뻐끔거리며 진공청소기처럼 진흙을 빨아들이고 내뱉었다. 물풀을 마구 휘젓고 침전물을 수면 위로 흩날리며 정복의 쾌락을 만끽했다. 혼비백산 달아나는 작은 물고기들은 진공청소기처럼 쪽쪽 빨아들여 꿀꺽꿀꺽 삼켰다. 고기를 통째로 삼키고 물풀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알들로 입가심을 했지. 육식이 기름져 풀뙈기가 당길 때는 물풀도 뽑아 스파게티를 수놓은 바질잎처럼 후루룩 삼켰다. 어느 새 주변엔 흙탕물과 깎여나간 모래톱, 우리가 싸지른 배설물들 뿐이었고, 남은 것은 우리 족속 밖에 없더구나.”

“그렇게 만들어진 황토빛 잉어 세상에 네놈들은 경악했지. 외래종 괴물 물고기가 호주를 파괴한다고. 이 가련한 인간들아. 세상에 외래종 아닌게 어디 있단 말이냐. 네놈들이 토종 동물이라며 그렇게 예뻐하는 들개 딩고도 아주 먼 옛날 인도네시아에서 인간들이 데리고 와서 풀어놓은, 엄밀히 말하면 유기견이 아니었더냐. 왜 그렇게 우리를 저주하고 핍박하느냐. 그저 가련한 ‘유기어’ 정도로 봐주면 안된단 말이냐.”

외래종 잉어의 희번덕이는 눈을 포착한 모습./Victorian Fisheries Authority Facebook

“아직도 기억한다. 2022년의 대홍수를 말이다. 호주 곳곳에서 폭우로 인해 홍수가 발생했던 그 해. 인간들에게는 재앙이었던 그 홍수는 우리가 삶터를 대폭 확장하는 계기가 됐지. 수면위로 넘쳐나는 물길을 타고 우리는 노를 젓듯 힘차게 헤엄쳐가며 더 큰 연못, 호수, 강으로 모험을 떠났고 우리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네놈들이 경악하며 우리를 박멸시키려 들 때마다 우리는 보란 듯 폭발적 번식으로 맞섰단 말이다.”

빅토리아주 수산 당국이 제작한 외래종 잉어 확산 경고 그래픽./Victorian Fisheries Authority Facebook

“그래서 네놈들이 한편으로는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죽 우리가 무서우면 병균(바이러스)을 뿌려서 우리를 잡겠다고 달려들겠냔 말이다. 네놈들이 병균을 뿌려 우리를 잡겠다는 생각을 한게 벌써 16년 전이구나. 잉어떼에 호수와 하천이 점령당해서 토종 물고기 씨가 마르고, 어족자원이 황폐화되는 등의 여파로 국가 경제에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며 바이러스 박멸하는 연구를 시작했다지?”

“그렇게 만들어낸 연구 결과가 이런 것이었다지? 잉어류에게만 치명적인 병균(잉어 바이러스·carp virus)을 흩뿌려 우리를 떼죽음 시킨다는 계획 말이다. 아주 열심히 연구했더구나. 잉어 바이러스를 뿌려도 잉어만 퇴치할 뿐 다른 어종에게는 타격이 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여러 차례 실험도 했더구나. 언제 바이러스를 퍼뜨릴지에 대한 타이밍까지 잘도 시뮬레이션했더구나. 흘레붙기 위해 피끓는 암수 잉어들이 한몸으로 부둥키는 번식철에 맞춰 살포해 최대한 단시간에 여러마리에게 전염시킨다는 시나리오까지 세웠더구나. 그렇게 해서 병균에 옮아 시름시름 앓아가는 우리 몸뚱이가 썩어문드러져가더라도 ‘단기적으로 수질이 탁해질 수 있지만 호수나 강이 오염되는 일은 없다’는 결론까지 도출했다지.”

호주의 외래종 잉어가 헤엄치며 강바닥을 훑고 있다./Victorian Fisheries Authority Facebook

“이렇게 하나하나 차근차근 준비를 하면서 네놈들이 ‘잉어 바이러스’로 잉어를 퇴치하겠다고 공식 선포할 날이 머지 않은 듯 하구나. 어쩌면 네놈들은 우리 족속들의 보금자리 한 곳을 골라 열정의 운우지정을 나눌 때를 틈타 첫번째 바이러스를 살포할지도 모르겠구나. 과연 네놈들 생각대로 우리가 병균에 신음하며 떼죽음하며 박멸될 것 같은가? 아니면 지금까지 우리 족속이 수억년을 이어오며 강화시켜온 강력한 생존 능력을 발휘해 막강한 내성으로 되치기 것이라는 생각은 안 해보았느냐. 네놈들의 머리가 우리의 생존 본능을 이겨낼 수 있을지, 우리 한번 일합을 겨뤄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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