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돌프는 코만 반짝이는 게 아냐…미처 몰랐던 순록의 생태

김지숙 기자 2024. 12. 24. 13:3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애니멀피플] 댕기자의 애피랩
북극과 아한대에 서식하는 순록은 독특한 생태적 특성과 적응력을 가진 동물로, 순록의 코의 모세혈관은 사람보다 25%로 더 빽빽해 열화상 카메라로 보면 붉은색을 띤다. 엑스(X) 갈무리

자연과 동물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신비롭고 경이롭습니다. 한겨레 동물전문매체 애니멀피플의 댕기자가 신기한 동물 세계에 대한 ‘깨알 질문’에 대한 답을 전문가 의견과 참고 자료를 종합해 전해드립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동물 버전 ‘댕기자의 애피랩’은 격주 화요일 오후 2시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궁금한 점은 언제든 animalpeople@hani.co.kr로 보내주세요!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Q. 크리스마스이브 산타의 썰매를 이끌며 가장 활약하는 동물, 아마도 순록이 아닐까요. 몇 해 전 ‘루돌프 사슴’ 코가 캐럴 가사처럼 빨갛게 보일 수 있다는 연구를 본 적 있는데요, 순록 코는 왜 빨갛게 되는 건가요. 정말 썰매 끌며 하늘을 날 수도 있을까요?

A. 빛나는 빨간 코를 지닌 순록 ‘루돌프’는 1939년 미국의 한 동화책 주인공으로 등장한 이후 현재까지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는 순록 캐릭터로 여겨집니다. 몇 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겨울왕국’에 등장하는 순록 ‘스벤’이 들으면 조금 서운하려나요. 그러나 이미 10여년 전 ‘루돌프 코’에 대한 과학 논문까지 발표되었으니, 루돌프가 분명 순록계의 아이돌인 것만큼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미국 작가 로버트 메이의 책 ‘루돌프, 빨간 코 순록’(왼쪽)의 이야기를 과학적으로 검증한 논문이 2012년 나왔다. 순록의 코에는 모세혈관이 빽빽하고 적혈구가 풍부해 실제로 붉다는 내용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영국의학저널(BMJ) 제공

권위 있는 학술지 ‘영국의학저널’(BMJ)이 2012년 12월 크리스마스 특집호에 “순록 코는 사람보다 모세혈관이 빽빽하고 적혈구가 풍부해 적외선 열화상 카메라로 보면 실제로 순록은 붉은 코를 가지고 있다”는 미국 로체스터대와 네덜란드 에라스뮈스 메디컬센터 공동 연구진의 논문을 소개한 것이죠.

연구진은 당시 보도자료에서 “순록 코의 풍부한 적혈구는 코가 얼지 않도록 보호하고 뇌의 온도를 조절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서 “산타클로스가 선물 배달을 위해 ‘고용한’ 순록 루돌프의 코가 붉은 것은 (북극·아한대의) 극한의 온도에서 임무를 수행하는데 잘 적응한 결과”라고 설명했어요. 실제로 순록 코의 모세혈관은 1㎟당 20개로 사람보다 25%나 많았다면서요. “안개 낀 성탄절 날”에도 무사히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선물이 배달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 있었던 거겠죠.

순록의 놀라운 생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지난 22일(현지시각) 전문가매체 ‘더 컨버세이션’에는 또 다른 ‘순록 덕후’의 글이 실렸는데요, 자신을 ‘웜뱃 연구자’라 소개한 줄리 올드 오스트레일리아 웨스턴시드니대 동물학과 교수는 “어렸을 때부터 순록을 좋아했고 여전히 순록에 매료되어 있다”면서 지금껏 발표된 순록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 결과들을 종합해 소개했습니다.

순록 일부 개체군은 5000㎞ 이상을 이동해 이동 거리가 가장 긴 육상 포유류로 꼽히기도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그의 글을 보면, 순록은 일 년 내내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북극 지역에 서식합니다. 북극권 툰드라·침엽수림 지대에서 생활하는 순록은 여름에는 툰드라로, 겨울에는 숲 지대로 이동하며 해마다 수천㎞를 이동합니다. 일부 개체군은 5000㎞ 이상을 이동해 이동 거리가 가장 긴 육상 포유류로 꼽히기도 합니다.

최대 몸무게 300㎏까지 나가는 거구지만 주로 초식을 합니다. 겨울에는 지의류를, 여름에는 이끼와 풀, 관목까지 먹습니다. “당근도 좋아하겠지만, 북극에서는 찾기 어려울 것”이란 것이 올드 교수 추측입니다. 순록이 즐기는 또 다른 ‘별미’는 흰뺨기러기의 배설물입니다. 지난 1998년 노르웨이 스발바르 제도 스피츠베레겐 섬에서 진행된 한 연구에서는 이 지역 흰뺨기러기 배설물의 36%를 순록이 먹어치운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새똥을 섭취한 순록들은 일일 에너지 요구량을 채울 수 있었다는데요, 올드 교수의 말마따나 “이렇게 새똥을 먹은 순록들이 크리스마스에 특별한 비행 능력을 갖추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반짝이는 것이 코뿐이 아닙니다. 계절에 따라 눈빛과 발굽이 달라집니다. 올드 교수는 “순록의 눈은 여름에는 금빛 청록색으로, 겨울에는 진한 파란색으로 빛난다”고 전했습니다. 이러한 눈 색의 변화는 어두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것으로, 빛의 양에 따라 안압, 각막·유리체의 콜라겐 섬유 간격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발굽 또한 여름에는 부드러운 지면을 밟을 수 있도록 스펀지처럼 넓고 평평해지고, 겨울에는 얼음과 눈 위를 걷기 적합하게 좁아집니다.

대부분의 사슴류와 달리, 암수 모두가 큰 뿔을 지니고 있는 것도 독특한 점입니다. 다른 사슴류 동물들은 주로 수컷만 뿔을 지니지만, 순록은 암컷도 일 년 내내 뿔을 지닙니다. 다만 수컷은 3~4월 새로 뿔을 여름까지 완전히 발달시킨 뒤 번식을 마치면 8~9월 뿔을 잃게 됩니다.

이처럼 혹한의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적응력을 지닌 동물이지만, 최근 수십 년간 개체 수가 감소해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이 올드 교수 설명입니다. 약 480만 마리로 추정되던 야생 순록의 개체 수는 현재 290만 마리까지 감소했고, 세계자연보전연맹(IUCN)도 순록을 멸종위기 ‘취약 등급’(VU)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약 480만 마리로 추정되던 야생 순록의 개체 수는 지난 수십 년간 감소해 현재 290만 마리까지 줄었다. 게티이미지뱅크

올드 교수는 “농업·광업·임업·사냥 등으로 순록의 서식지를 파괴한 인간의 책임이 크다”면서 “이제는 기후변화까지 순록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기온 상승으로 툰드라 지역이 축소되면서 순록의 먹이가 되는 지의류는 줄고 초목이 늘어나고, 여름철 높은 기온이 유지되면서 체온 조절에 문제를 초래해 지방 축적 능력이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물론 가축으로 순록들이 사육되고는 있지만, 북극권 생태계의 ‘핵심종’으로 제대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야생 순록의 위기에 대해서도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크리스마스 아침, 전 세계 착한 어린이들이 제때 선물을 받기 위해서는 ‘루돌프’들의 활약이 중요하니까요.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