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과 일제 강점기 어디쯤 : 소득계층 사다리 누가 걷어찼나

한정연 기자 2024. 12. 24.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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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절망의 경제학
통계청 소득이동통계 첫 발표
5년간 소득상향 17.6% 불과
상위 20%는 10명 중 9명 유지
빈곤층서 평생 머무른 비율
OECD 38개 회원국 韓 37위

'개천의 용'은 멸종 위기에 있다. 우리나라 소득 하위 20%에 속하는 사람 10명 중 1.7명이 가난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지만, 소득 상위 20%는 10명 중 8.6명이 1년 후에도 그 지위를 계속 유지했다. 경제적 결과의 불평등은 헌법상 기회의 평등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나라의 계층이동성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한파 속 버스를 기다리는 시민들. [사진 | 뉴시스]

■ 경제적 절망의 결과=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 개츠비는 두 가지 의미를 지녔다. 개츠비는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벼락부자가 된 사람이고, 거대한 부에는 그만큼의 죄가 필요하다는 격언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앨런 크루거 프린스턴대 교수는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을 맡았던 2012년 '위대한 개츠비 곡선'을 발표하며 "경제적 불평등이 심할수록 소득계층 간 이동이 힘들다"고 정의했다. 이른바 사회이동성이라는 개념이다.

지난 20일 통계청이 국내 사상 처음으로 발표한 사회이동성 통계는 예상보다 참담했다. 통계청의 '2017~2022년 소득이동통계'에 따르면 2022년에 소득분위가 높아진 비율은 17.6%에 불과했다. 65.0%는 현재 소득분위에 머물렀고, 17.4%는 소득이 더 낮아졌다.

통계청은 전체 소득수준을 20%씩 끊어서 5단계로 나눈 5분위 통계를 이용했다. 2021년 소득 하위 20%인 1분위에 속한 사람 중 69.1%는 1년이 지나도 여전히 1분위였다. 1분위 중에서 소득 하위 40%인 2분위로 올라간 사람의 비율은 21.2%였다. 반면 2021년 소득 상위 20%인 5분위에 속한 사람들 중에서 무려 86.0%가 1년 후에도 여전히 5분위 자리를 지켰고, 5분위에서 소득 상위 40%인 4분위로 내려간 사람은 9.5%에 불과했다.

올해 조금 힘들어도 내년에는 경제적으로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은 10명 중 2명도 안 된다는 얘기다. 그래서 소득이동의 문제를 희망과 절망으로 대비시켜 설명하는 경제학자들이 많다.

미국 경제연구소 브루킹스는 2015년 '경제적 절망: 불평등과 사회이동성의 악순환'이라는 보고서에서 "소득 분배 격차가 벌어지면서 소득의 불평등은 더 이상 열심히 일하도록 하는 동기가 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경제적 '결과의 불평등'은 전세계 대부분 국가의 헌법이 규정한 '기회의 평등'을 해치는 수준에 이르렀다.

■ 좁아지는 희망의 사다리=우리나라 통계청은 사회이동성 통계를 올해 처음으로 냈지만, 해외 주요 기관들은 우리나라 사회이동성의 악화를 이미 지적한 바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소득이동성이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보면, 도시근로자 가구의 소득계층 상승 비율은 1990~2002년 평균 30%대였는데, 2003~2008년 5년간 평균 29.4%로 내려왔다. 2017~2022년 통계청의 전체 가구 대상 소득 상향 비율은 17%대까지 추락했다.

그런데 우리는 한국에 여전히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존재한다고 착각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2년 사회이동성 보고서를 보면 '당신 나라에서 가장 가난한 10% 가구에서 온 100명의 아이 중에서 성인이 돼도 여전히 가난할 아이는 몇명이라고 생각하나'란 질문에 한국인들은 "평균 50%가 여전히 가난할 것"이라고 응답해 전체 회원국 평균치와 유사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OECD 회원국 중에서 2016~2019년 기준 저소득층에서 시작해 저소득층에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한국이 70%에 육박하며 아이슬란드에 이어 두번째로 높았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문제는 경제적 절망감이 나아지기는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되레 깊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사회이동성을 수치로만 보면 우리는 현재 조선시대와 일제 강점기 사이 어디쯤 있다.

세계불평등연구소(WIL)는 올해 1월 보고서에서 "한국의 경제적 불평등 수준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나빠져 2020년 현재 1930년대 일제 강점기 수준에 근접했다"고 경고했다.

WIL은 우리나라 소득 상위 0.1%인 4만2993명의 1인당 세전稅前 소득이 16억원이고, 상위 1% 소득이 1인당 4억2360만원이지만, 하위 50%의 평균 연소득은 1560만원에 불과하다고 꼬집었다. 상위 0.1%의 소득은 18년간 연평균 6.6% 증가했지만, 하위 50%의 소득은 같은 기간 3.5% 늘어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사회이동성 상향 비율은 17세기 조선시대의 양반 증가 비율과 비교해볼 만하다. 국사편찬위원회의 우리역사넷에 따르면 1678~1789년 사회지도층인 양반 인구는 평균 20% 이상 증가했고, 19세기에는 40~60% 늘어났다.

조선 민중이 양반으로 편입하는 수단은 1894년까지 존재한 과거 제도가 일반적이다. 실력이 있으면 중인이나 평민도 과거를 통해서 벼슬을 하고, 사회지도층으로 편입되는 계층의 사다리는 조선시대에도 존재했다. 조선 건국 이후 과거시험을 통한 사회이동성 변화를 보면 태조~선조 문과급제자 중 신분이 낮은 합격자의 비율은 24.29%에 달했다.

■ 경제 절망적 죽음=경제적으로 희망이 사라진 사회는 구성원들에게 사회적인 죽음을 감내하라고 윽박지르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이런 사회에서 경제적 희망을 잃은 사람들은 육체적 죽음에 이르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은 2020년 발표한 책 「절망적 죽음과 미래의 자본주의」에서 "안정적이고 임금이 높은 '좋은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지위와 자존감을 상실하면서 사회에서 자신의 위치를 잃는다"며 "안정적인 경제력을 기대하는 희망이 부족해지면 절망이 생겨나고, 이는 때때로 죽음까지 이르는 파괴적 행동을 불러온다"고 경고했다.

반빈곤네트워크 참가자들이 2019년 대구 일가족 생활고 사망사건 기자회견을 가진 후 분향소에 헌화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소득계층이 하향 이동한 사람들의 자살률 증가가 증거다. 보건복지부가 지난 2019년 공개한 '5개년 서울시 자살 사망 분석 결과 보고서'를 보면 2013~2017년 소득과 자산이 적은 의료급여 수급자들의 자살 비중은 10만명당 38.2명이었지만, 의료보험료 하위구간에서는 24.4명으로 줄었고, 보험료 중위구간에서는 19.3명, 상위구간에서는 14.8명으로 크게 감소했다.

특히 사망 1년 내에 소득이 크게 줄어(건강보험료 변화) 의료급여 수급자 구간으로 전락한 경우 자살 비중은 10만명당 66.4명으로, 건보료 하위구간에서 의료급여 수급자가 된 경우(소득 감소) 자살비중은 58.3명으로 치솟았다.

영국 자선단체들이 2017년 발표한 '사마리아인들 보고서'도 "영국에서 가장 소외된 지역에 사는 낮은 소득계층 남성의 자살 위험은 가장 부유한 지역 거주 남성보다 최대 10배 높다"며 "경제적 불이익과 자살에는 압도적인 증거가 있는 만큼 정부가 불평등 문제를 자살 예방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jeongyeon.han@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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