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내란’의 뿌리 검찰, 국가를 삼키다
세계적으로 최악의 검찰로 평가받는 것은 어느 나라 검찰일까요? 전세계 모든 국가의 검찰을 전수조사해 평가한 보고서는 존재하지 않으니 확답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유럽평의회 자문기구인 베니스위원회가 여러 보고서를 통해 ‘위험한 검찰’로 지적한 나라가 있습니다. 옛 소련과 러시아의 검찰입니다.
베니스위원회는 회원국들이 민주주의, 인권, 법치 등의 분야에서 국제적 기준을 실현해 나가도록 법률적 자문을 하는 기구로, 유럽 국가들은 물론 우리나라와 미국 등 비유럽 국가까지 61개국을 회원으로 두고 있습니다. 검찰제도는 이 위원회가 다루는 주요 분야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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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소련의 괴물 검찰, 21세기 한국에 출현하다
러시아어로 검찰은 프로쿠라투라(прокуратура)입니다. 19세기 표트르 대제 때 창설된 프로쿠라투라는 전제군주 차르의 통치 도구가 됐고, 사회주의 혁명 이후 그 역할은 더욱 강화됐습니다. 프로쿠라투라는 그 역할이 일반적인 검찰을 뛰어넘는 매우 특이한 존재였습니다.
일차적 임무는 각종 기관·단체가 행하는 조처가 적법한지를 감시·감독하는 것이었습니다. 검찰의 감시·감독 대상에는 행정부는 물론 입법부, 군, 민간 단체까지 망라됐습니다. 검찰은 필요하면 이들 기관을 방문해 어떤 자료든 요구하고 대면조사도 할 권한을 가졌습니다. 불법이라고 판단하면 시정명령을 하고 수사도 벌였습니다. 검찰이 국가의 최고 사찰기관이었던 것입니다. 검찰의 일반적 역할인 수사 지휘나 기소는 오히려 후순위 임무로 법에 규정됐습니다.
사법 영역에서도 검찰의 힘은 막강했습니다. 수사를 지휘하는 것은 물론 모든 법집행 기관의 활동을 총괄 조정했습니다. 구속과 압수수색, 감청 등 강제수사에 대한 결정권도 행사했습니다. 검사는 판사보다 우월한 지위와 영향력을 누렸습니다. 판사의 행위를 감시하는 등 재판 과정과 결과에 대한 적법성 검토 권한까지 가졌습니다. 심지어 검찰은 형사소송은 물론 민사소송까지도 법 적용이 잘못됐다는 이유로 다시 재판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막강하고도 이상한 검찰은 차르 독재와 이후 등장한 공산당 일당 독재체제의 산물이었습니다. 검사는 정치적 엘리트로서, 법관과 달리 공산당 조직의 일원이었습니다. 검찰은 공산당 지휘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상호협력하는 관계였습니다. 검찰은 우리나라처럼 중앙집중적인 전국적 단일체계로 상명하복의 위계질서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이었습니다(이런 검찰 조직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제5회 ‘미·독·프 어디에도 ‘하나의 검찰’은 없다’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옛 소련은 이러한 검찰을 통치 수단으로 삼아 행정부와 입법부, 사법부 전체를 통제 아래 두는 일원적 체계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공산당을 중심으로 일원화한 권력 구조를 지탱하는 기둥 중의 하나가 검찰이었습니다.
이런 검찰이 공정한 법집행을 했을리는 만무하겠지요. 독재에 저항하는 세력은 철저히 탄압된 반면, 공산당 간부를 비롯한 지배층의 불법행위나 검찰 내부의 비위행위는 제대로 처벌되지 않았습니다.
막강한, 그러나 ‘책임지지 않는’ 검찰의 위험성
‘기관·단체에 대한 검찰의 감독권’은 현재 러시아에서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다만 검찰이 재판의 적법성을 감독하는 권한은 폐지됐고 2007년부터는 검사의 직접 수사권도 폐지되는 등 형사사법에 관한 권한은 대폭 축소됐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과도한 검찰의 권한과 거대한 조직, 검찰총장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통일적·위계적 구조 등은 민주주의와 법치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베니스위원회는 평가합니다.
프로쿠라투라 시스템은 옛 소련의 위성국가인 동유럽 국가들에도 이식됐고 동구권 사회주의 붕괴 이후에도 잔재가 남아 있었습니다. 이들 국가가 유럽연합에 가입할 때 이 기형적 검찰제도가 도마에 올랐고, 베니스위원회는 여러차례 의견서와 보고서를 내 이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베니스위원회는 검찰의 감시·감독권과 관련해 “프로쿠라투라는 조직이 너무 거대하고 막강한 권한을 지녔으나 투명하지 않은 기관”이라며 “이런 기관이 최고 권력자의 영향 아래 있는 것은 민주주의 원칙 및 법의 지배와 양립 불가능하다는 심각한 우려를 낳는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검찰의 권한과 책무는 범죄자 기소와 형사사법 체제를 통한 공익의 옹호에 한정돼야 한다는 원칙을 상기시키고, “프로쿠라투라의 감독 기능은 행정법원, 헌법재판소, 여타의 독립적 감독기구 등으로 분산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또 사법 영역에서의 과도한 검찰권에 대해서도 “일부 국가들에 이런 체제의 영향이 남아 있다”며 “검찰이 책임지지 않는 제4부가 될 위험성이 존재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압수수색, 구속 등의 강제 절차는 절대적으로 법원의 통제 아래 둬야 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하면서 “일부 국가에서는 ‘검찰 편향’으로 인해 영장이 사실상 자동발부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인권에 대한 위험이자 사법부의 독립성에 대한 위험이기도 하다”고 비판했습니다.
“검찰이 정치·선악을 결정하는 유일 잣대”
프로쿠라투라의 무소불위 권력과 이에 대한 베니스위원회의 비판을 보면서 떠오르는 나라가 있지 않습니까? 저는 우리나라가 떠오릅니다.
수사·기소권을 독점하며 자기들만의 성채를 굳게 쌓아온 검찰은 대통령 윤석열을 만들어내는 토양이 됐고,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가권력 자체를 접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검찰의 위상과 권한이 커진 것은 물론 대통령실, 국무총리실, 국가정보원, 금융감독원, 국가보훈부, 법제처 등 국정 전반의 요직에 검찰 출신들이 진출했습니다. 국정의 핵심인 인사 라인도 검찰 출신들로 채웠습니다. 이렇게 검찰 출신 특정 집단이 국정 전면에 나서 일원적 통치 체계를 형성하고, ‘친윤 검사들’이 장악한 검찰은 정권과 한몸처럼 움직였습니다.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의 의혹에는 눈감은 채 정치적 반대자를 겨냥한 수사에 노골적으로 매달렸습니다. 이런 검찰의 질주를 누구도 견제하지 못했습니다.
검찰이 형사사법의 영역을 넘어 국가 운영을 좌지우지하는 정치집단화한 것입니다. 전체주의의 유산인 기형적 괴물 검찰, 프로쿠라투라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환생한 듯합니다. 한상희 참여연대 공동대표(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우리나라 검찰의 현실과 위험성을 이렇게 진단한 바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최소한 어떤 정부든 정치 영역에서 검찰의 역할을 규정했다고 한다면, 이제는 검찰이 정치의 내용을 결정하고 정치의 방향을 결정하고 우리 사회의 선악을 결정하는 유일 잣대가 되어서 움직여 나간다. 정치검찰이 이제는 검찰정치의 영역으로 돌아서면서 우리의 삶을 왜곡하거나 변곡시키거나 또는 경우에 따라서는 퇴행시키는 이런 모습들을 그냥 그대로 감내할 수 없다.”(2023년 5월, 참여연대 ‘검사의 나라, 이제 1년’ 발간 브리핑)
12·3 내란의 예고편이었던 검찰 시절 ‘작은 내란’
그 퇴행이 결국 12·3 내란 사태로 이어졌습니다. ‘윤석열 내란’의 뿌리는 ‘괴물 검찰’에 닿아 있습니다.
검찰이라는 국가권력을 사유화해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또한 가족의 범죄 행각을 덮기 위해 사용했던 검찰총장 윤석열은 대통령이 된 뒤 그 권력 사유화 방식을 그대로 반복했습니다. 자신에게 권력을 위임해준 국민을 존중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은 한 순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급기야 비상계엄 선포권, 군통수권 등 대통령의 권력을 자기 것인양 자기 이익을 위해 마구 휘둘렀습니다. 12·3 내란입니다.
검찰 시절부터 검사 윤석열의 권력 사유화는 유례없이 노골적이었습니다. 검찰총장 시절 장모 최은순씨의 각종 범죄 혐의를 비호하는 문건을 대검찰청이 작성했습니다.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하는 공조직이 최씨의 개인 변호사 노릇을 한 것입니다. 당시 대검찰청은 주요 사건 담당 판사들을 사찰한 문건도 만들었습니다. 또 검찰총장의 권한을 이용해 자신의 최측근인 한동훈 당시 검사장에 대한 감찰·수사를 방해했습니다. ‘탈원전 수사’ ‘김학의 불법 출금 수사’ 등 정치 수사를 대대적으로 벌여 자신의 위기를 모면하고 정치적 디딤돌로 삼았습니다(탈원전 사건으로 기소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이 지난 5월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고 김학의 불법 출금 사건으로 기소된 이들 전원이 지난달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대통령이 된 뒤에는 ‘윤석열 라인’ 검사들에 의한 김건희씨 황제조사와 무혐의 처분 등으로 검찰권 사유화가 정점으로 치달았습니다.
베니스위원회가 프로쿠라투라의 과도한 권한을 비판하며 ‘검찰이 책임지지 않는 제4부가 될 위험성’을 지적했는데, ‘책임지지 않는다’는 건 ‘통제받지 않는다’, 즉 ‘제멋대로 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권력의 사유화로 이어집니다. 그것이 한국에서 그대로 현실화했습니다.
권력이 사유화할 때 권력 행사의 원칙은 사라지고 권력 그 자체만 남습니다. 그 권력은 더 이상 문명의 산물이 아니라 야생동물의 포악함이 됩니다. 윤석열 검찰이 검찰권 행사의 원칙인 중립성·공정성·객관성 등을 가치없이 폐기했듯이 대통령 윤석열은 비상계엄의 요건과 헌법적 한계를 묵살했습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사용해야 할 군통수권을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데 사용했습니다. 비뚤어진 검찰권 행사의 버릇을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검찰권 사유화는 더 큰 내란을 예고한 ‘작은 내란’이었던 셈입니다.
권력 사유화 불가능하게 ‘무관용의 개혁’ 이뤄야
탄식할 대목은 검찰총장 윤석열이 그릇된 검찰권 행사로 ‘성공’을 누렸던 기억이 대통령 윤석열의 무모한 내란 감행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윤석열의 검찰권 사유화를 묵인·방조했던 모든 이들이 책임을 느껴야 하는 이유입니다. 나아가 이같은 권력 사유화가 가능했던 검찰의 구조 자체를 뜯어고쳐야 하는 이유입니다.
‘권력은 어디에서 오고, 무엇을 위해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모든 권력자와 권력기관에게 뼛속 깊이 각인시켜야 합니다. 군, 검찰 등 권력기관의 사유화가 더 이상 불가능하도록 물샐틈 없는 민주적 통제 장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12·12 쿠데타와 5·18 시민학살을 자행한 군 사조직 ‘하나회’를 척결했듯이 무관용의 개혁을 이뤄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이번 내란 사태가 남긴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입니다.
박용현의 ‘검찰을 묻다’는? 검찰공화국을 사는 요즘 시민들에게 검찰에 대한 상식은 교양필수가 됐습니다. 무겁지 않게 검찰에 대한 질문을 하나씩 던지고 독자 여러분과 생각을 나누겠습니다. 격주 화요일 낮 12시에 새로운 글이 올라옵니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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