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전자산업노조 “한국 반도체특별법 반대…기업 경쟁력 약화를 근로시간 탓”
“대만은 TSMC 때문에 노동법 바꾸지 않았다”

대만 전자산업 노동조합이 한국의 반도체 연구·개발 노동자들의 근로시간 상한제 제외 움직임에 대해 “기업이 자신의 무능에 따른 경쟁력 부족을 근로시간 제도 탓으로 돌리는 책임 회피”라고 비판했다. 앞서 삼성전자가 대만 티에스엠시(TSMC)와 경쟁을 이유로 연구·개발 노동자에 대해 ‘주 52시간 노동 상한제’ 적용을 제외하는 ‘반도체산업 경쟁력 강화 및 혁신성장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위해 국회에 로비한 사실이 드러난 바 있다.
23일 대만 전기전자정보산업노동조합(전자노조)이 한겨레에 보낸 답변을 보면, 대만에선 일부 전문직에 대해 근로시간 한도를 적용하지 않는 노동기준법의 제도인 ‘책임제’ 적용 사례가 줄고 있다. 대만이 전문직에 대한 노동시간 상한 제외 제도 활용을 줄이는데, 한국은 특별법을 통해 늘리려 하고 있는 셈이다. 한겨레는 삼성전자 등이 특별법 논의 과정에서 티에스엠시 사례를 언급하자, 현지 노조에 티에스엠시 노동 실태와 특별법에 관한 의견을 물었다. 전자노조는 반도체 등 전자산업과 정보기술(IT) 업종 노동자로 조직된 산별노조로 업계의 장시간 노동, 환경·안전 문제 등을 제기해왔다.
구체적으로 전자노조는 “과거 많은 기업이 직원들에게 책임제를 적용해 상한이 없는 업무 요구를 한 적이 있지만, 2011년 에이치티시(HTC)의 엔지니어가 과로로 숨진 이후 노동자들에게 책임제 문제가 더 중요해졌다”며 “업계에서 책임제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할 수 없지만 현재는 책임제 비중이 줄었다”고 밝혔다. 대만에선 2011년 2월 휴대폰 제조업체 에이치티시 소속 30살 엔지니어가 새벽 3시까지 일하다 퇴근한 뒤 숨진 채 발견되는 등 이들의 과로사가 사회적 이슈가 된 바 있다.
아울러 티에스엠시 연구·개발 노동자 근로시간에 대해선 “노동시간은 법규를 상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보고 있다”며 “기록상 노동자들의 근로시간은 주 40시간이지만, 상황 대응을 위한 대기, 퇴근 전 보고서 작성 요구, 일정 시간 이상 회사에 머물러야 한다는 묵시적 요구로 인해 근로시간이 길다”고 밝혔다. 대만 노동기준법은 한국처럼 연장근로를 포함해 1주 52시간을 근로시간 상한으로 정하고 있다. 하지만 티에스엠시의 2022∼2023년 연례보고서를 보면 2년 동안 12차례 연장근로 한도를 위반해 벌금형 처분을 받은 것으로 나타난다.
삼성전자는 이를 근거로 더불어민주당에 ‘노동법 위반을 감수하고 장시간 노동을 하는 티에스엠시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선 주 52시간제 적용 제외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자노조는 “노동자가 오래 일하는 것이 기업의 경쟁력이라는 생각에 반대한다”며 “노동자의 하루 집중력은 한계가 있고, 근로시간을 무작정 늘리는 것은 연구·개발에 큰 도움이 되지 않고 건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특히 전자노조는 “대만 국회는 티에스엠시 때문에 어떤 노동법규도 개정하지 않았다”며 특별법 제정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전자노조는 “연구·개발 노동자 근로시간 확대는 현재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라, 정부와 기업이 자신들의 떨어진 경쟁력을 근로시간 제도 탓으로 돌리고 이를 통해 자신들의 무능을 노동자들의 미흡한 노력 탓으로 돌리려는 자구책이라 생각한다”며 “정부와 기업은 함께 법을 추진함으로써 책임을 회피하려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국민의힘과 정부가 ‘주 52시간 노동 상한제 적용 제외’를 포함한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민주당은 특별법에서 해당 내용은 논의하지 않기로 입장을 정리한 상태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민주당 관계자는 “특별법에 주 52시간 상한제 적용 제외는 담지 못한다는 것이 민주당 입장”이라며 “나머지 내용은 오는 26일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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