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잖은 사람으로 보였는데 무슨 소리냐…” 동네 주민들 화들짝

안산=최진렬 기자 2024. 12. 23.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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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점집 가보니… ‘안산시 모범 무속인’ 출입문 굳게 닫혀

"진짜 유명한 점집이에요. 용하다고 소문나서 가게 개업한 사람들이 많이 찾아요. 대기 줄이 있을 정도예요. 인터넷에 '안산 아기보살'이라고 쳐보세요."

12월 20일 경기 안산시 본오동의 한 다세대 주택 지하 1층. 수십여 개의 담뱃갑을 창틀에 촘촘히 쌓아 실내를 가린 한 점집을 가리키며 이웃 주민 A 씨가 말했다. 이곳은 12․3 비상계엄 사태의 핵심 관계자로 지목된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아기보살'로 불리는 여성 무속인과 동업했다고 알려진 점집이다. 이른바 '햄버거 회동'을 가진 롯데리아 한 지점과 불과 1.4㎞ 떨어져 있다. 최근 경찰이 이 점집에서 비상계엄 관련 내용이 담긴 수첩을 확보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아기보살 운전사 아녔나"

12월 20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여성 무속인과 동업한 것으로 알려진 점집 주변에 북어와 향초 등이 늘어져 있다. [지호영 기자]
노 전 사령관은 비상계엄 사태의 키맨으로 꼽힌다. 2018년 국군의날 여군 교육생을 강제추행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불명예제대 한 그는 어느 날부터 이곳에 나타났다고 한다. 동네 주민 중 누구도 그를 육군사관학교를 수석 입학한 전직 장성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아기보살을 돕는 이로 여길 뿐이었다. 개중에는 그의 외모에 호감을 느낀 이도 있었다. 이날 이곳에서 만난 이웃 주민들은 "아기보살을 모시는 운전사로 알고 있다", "부부처럼 친밀해 보였다", "비즈니스 파트너로 보였다"고 두 사람의 관계를 추측했다. 노 전 사령관이 내란 실행 혐의로 구속됐다는 얘기에 "점잖은 사람으로 보였는데 그게 무슨 소리냐"며 깜짝 놀란 이도 적잖았다. 길 건너편에서 점집을 운영하는 무속인 B 씨 역시 "아기보살의 동업자가 여럿 있다는 사실 정도만 알았다"며 노 전 사령관의 정체를 신기해했다.

이 점집은 현재 현수막을 내린 채 영업을 중단한 상태다. 기자가 찾은 20일 역시 '안산시 모범 무속인'이라고 적힌 문은 두드리거나 전화를 걸어도 응답이 없었다. 북어와 복분자주, 잡채, 정체를 알 수 없는 붉은 국 등 무속과 관련 있어 보이는 물품들만이 냉기가 가득 찬 복도에서 언제 올지 모를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개중에는 아기보살이라는 이름에 어울리게 초코과자와 노란 장난감 자동차 등도 보였다. 점집 옆 작은 창고에는 빈 막걸리병과 향초 박스 등이 무더기로 쌓여있어 이곳이 유명 점집임을 짐작케 했다. 무엇 하나 이번 비상계엄 사태와 거리가 먼 물품들이다.

하지만 경찰 국가수사본수 특별수사단(특수본)이 이곳에서 노 전 사령관의 자필 수첩을 확보하면서 '지역 유명 점집'은 '비상계엄의 중심'으로 지목됐다. 해당 수첩에는 비상계엄 선포 직후 군부대 배치 및 이동 계획이 기록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국회에 투입될 병력 운용 계획도 담겨있어 노 전 사령관이 비상계엄에 관여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더했다. 특수본에 따르면 해당 수첩에서 "북방한계선(NLL)에서 북의 공격을 유도"라는 메모도 발견됐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이 계엄을 위해 북한을 자극하려 했다"는 일각의 주장과 맞닿아있는 부분이다.

"노태악 선관위원장 체포 지시해"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뉴시스]
노 전 사령관은 비상계엄 이틀 전 문상호 정보사령관, 국군 정보사령부 김모․정모 대령 등 군 관계자와 점집 인근 롯데리아에서 회동한 바 있다. 경찰은 이날 자리한 정모 대령을 조사하면서 "노 전 사령관이 노태악 선거관리위원장을 체포하라고 지시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한 상태다. 노 전 사령관은 계엄 당일에도 이곳에서 구삼회 육군 제2기갑여단장 등을 만났다. 제2기갑여단은 경기 파주시에 위치한 부대로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기갑부대다. 비상계엄 사태가 확산될 경우 자칫 서울에 기갑전력이 투입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수사 당국의 최종 목적지는 윤석열 대통령의 내란 혐의 입증이다. 노 전 사령관의 진술과 수첩 등을 통해 비상계엄이 적법하지 않게 준비됐다는 사실이 입증되면 관련 수사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윤 대통령은 12․12 대국민담화에서 국회에 병력을 투입한 이유에 대해 "질서 유지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수사에서 윤 대통령의 관련 발언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질 경우 파장은 커질 전망이다.

법무법인 청 곽준호 대표변호사는 "법원에서 비상계엄의 절차적, 형식적 적절성을 따져볼 텐데, 이 가운데 국회의원의 의결을 대통령이 막으려 했는지가 특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곽 변호사는 "노 전 사령관은 정상적인 지휘계통에 속하지 않은 퇴임한 장성으로 국방부 장관 등 일부 요직에 있는 사람들과의 사적 인연을 통해 중요임무를 맡은 것으로 보이는 만큼 이 역시 문제가 될 전망이다"고 덧붙였다.

안산=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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