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 울린 외과 의사…암 수술 5년, 특별한 편지가 도착했다

박정렬 기자 2024. 12. 23.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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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송교영 서울성모병원 외과 교수가 위암 완치 판정을 받은 환자와 연말을 맞아 진료실에서 기념식을 진행하며 함께 카메라 앞에 섰다. 그는 위암 완치 환자에게 보내는 감사글을 통해 "수술을 하고 검사를 하는 것은 의료진의 5%의 역할이지만 근본적으로 병을 이겨내는 것은 95% 환자의 노력"이라며 "잘 이겨내 주셔서 고맙다"고 응원했다./사진=서울성모병원


장기화하는 의정 갈등에 환자의 불안이 커지는 가운데, 위암을 보는 상급종합병원 외과 의사가 완치 판정을 받은 환자에게 전하는 '감사글'이 큰 울림을 준다. 23일 서울성모병원에 따르면 이 병원 위장외과 송교영 교수는 지난 20일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맞아 위암 수술 후 5년이 지나 완치 판정을 받은 환자와 기념 촬영을 진행하며 감사의 뜻을 담은 글을 전달했다. 다소 무뚝뚝한 느낌의 외과 교수가 "병을 이겨내 줘서 고맙다"며 건넨 글은 환자는 물론 병원 구성원들에게도 적지 않은 감동을 선물하고 있다.

병원에 따르면 송 교수는 "환자의 질병만을 궁금해할 게 아니라 무엇을 느끼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는지를 생각"하면서 매년 수술 후 5년을 맞은 환자와 진료실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작은 기념식을 열고 있다. 이 병원에서 본격적으로 위암 수술을 시작한 2009년 이후로 지금까지 4000~5000명가량의 '완치' 환자가 그와 함께 카메라 앞에 섰다. 위암 환우 커뮤니티에는 "꼭 5년 후에 송 교수님과 사진을 찍겠다"는 글 등이 올라오기도 한다.

송 교수는 이 글에서 "나 역시 몸이 아파본 의사로서, 가벼운 감기도 아니고 암이라는 중한 병에 걸리고 나서 이겨내는 환자와 가족들을 보며 제가 해야 할 일이 있고 그 일이 큰 의미가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며 "새로 태어난 기념으로 더 건강하고 기쁜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되시기를 바라며, 다시 한번 축하드리고 잘 이겨내 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응원했다.

그는 이날 본지에 "의학적으로 치료가 종결되는 암 수술 후 5년은 환자에게 큰 안도감을 준다. 나아가 환자도 자신감, 자부심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에 올해 특별히 '감사글'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직업인이 정년을 채우는 것은 굉장한 노력의 대가다. 20~30년을 묵묵히 일하고 규정에 맞춰 진급해야 하며 무엇보다 건강해야 한다"며 "암 환자도 5년이나 재발에 대한 스트레스를 이겨내며 정기검진 등 건강을 관리하는 힘든 시기를 잘 견뎌낸 것이다. 굉장한 의미가 있고 그래서 축하받을 만 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송 교수가 위암 완치 환자를 위해 쓴 감사글 전문이다.
환자에게 5년이라는 시간은…
살면서 암이라는 극강의 상대를 만나는 경험은 그야말로 무섭고, 화나고, 슬프고, 억울한 일입니다. 적을 이겨내기 위해 내 몸의 일부를 파괴하는 일은 참 아이러니합니다. 의사로 만나는 이들의 사연들은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지만, 그저 직업이고 일상이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무뎌지고 덤덤해지기 쉽습니다. 그런 가운데 긴 싸움에서 승리하고 기뻐하시는 제 앞의 환자분들을 보면 그래도 제가 해야 할 일이 있고 그것이 큰 의미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됩니다.

암과의 싸움에서 5년이라는 시간은 의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위암은 수술 후 5년이 지나면 재발률이 극히 낮다는 사실에서 "5년 생존율=생존율"(5년간 잘 살아 있으면 재발 없이 잘 산다)의 공식으로 설명되고는 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반대로 암을 진단받고 치료하면서 앞으로 최소 5년간 불안에 떨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수술과 항암치료를 잘 끝냈다고 해도 정기검진 때마다 시험 통과를 기대하는 수험생처럼 가슴이 두근거리는 경험을 수도 없이 반복하는 것입니다. 5년의 시험을 잘 끝낸 분들과 두 세평의 작은 진료실 공간에서 갖는 조그만 기념식은 이제 수술받는 환자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오늘 수술이 결정된 젊은 환자분이 "열심히 치료받고 꼭 교수님과 기념사진을 찍겠습니다"라며 각오를 말씀해 주십니다. "시간은 화살처럼 흘러 곧 5년이 될 겁니다."라고 답해드렸지요.

그렇게 오늘도 몇 분의 환자와 가족들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기쁜 날을 함께 축하했습니다. 어떤 분은 곱게 화장하고 예쁜 옷을 입고 오셨고, 어떤 신사분은 제대로 정장을 입고 오셨습니다. 환자분들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충분히 축하받고 기뻐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송교영 교수가 직접 쓴 문구./사진=가톨릭평화방송 캡처


5년이라는 시간은 짧다면 짧을 수도 있으나 아주 긴 시간입니다. 이 시간 동안 참 많은 일이 일어납니다. 음식조절을 잘 못해 응급실에 실려 가기도 하고, 심한 덤핑(음식 등이 위에서 소장으로 급격히 이동하면서 발생하는 수술 합병증)으로 쓰러지기도 하며, 검사 결과가 이상하다며 PET이니 뭐니 하는 검사를 받기도 합니다. 일상생활을 잘 조절 못했다고 주치의에게 혼나기도 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와 불안으로 집안 식구들과 마찰을 빚기도 합니다. 이것저것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슬프기도 하지요.

암 치료 후 경과는 결국 몸의 면역상태에 의해 좌우됩니다. 면역능의 감소는 재발과 직결될 수 있어서 영양상태가 나빠지거나 근육량의 감소는 매우 좋지 않습니다. 잘 먹고 체중이 늘고, 열심히 근육운동을 해서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일부 환자분들은 정기검진을 위해 멀리 제주도부터 부산에서, 광주에서, 머나먼 시골에서 새벽부터 4~5시간을 여러 교통수단을 이용해 찾아와야 하는 수고를 끊임없이 해야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보낸 5년입니다. 그 피와 땀을 닦아주고 축하해 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수술하고 검사를 하는 것은 의료진의 5%의 역할이지만 근본적으로 병을 이겨내는 것은 95%의 환자의 노력입니다. 새로 태어난 기념으로 더 건강하고 기쁜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되시기를 바라며, 다시 한번 축하드리고 잘 이겨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송교영 서울성모병원 외과 교수.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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