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올해의 정치 인물] 아내 빼고 다 쳐낸 ‘뺄셈정치’…‘계엄 자해극’ 몰락 자초한 尹

김종일 기자 2024. 12. 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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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9일 만에 멈춰선 ‘尹의 시간’…‘별의 순간’에서 ‘내란죄 피의자’로
확증편향·과잉신념 빠져…‘김건희 리스크’ 방치로 보수층마저 등 돌려

(시사저널=김종일 기자)

역사는 선이 아닌 점으로 기억된다. 굵직한 사건들이 알알이 점으로 찍혀 한 해를 기록한다. 2024년에 찍힌 점들은 어느 때보다 크다. 대한민국 역사상 44년 만에 비상계엄이 다시 선포된 해이자, 세계인의 자랑거리인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온 해이기도 하다. 

2024년은 역사에 길이 남을 대형 사건들이 줄줄이 이어졌다. 흘러간 역사를 어떻게 기억할지는 후세대에 달려 있다. 시사저널은 1989년 창간 이후 매년 12월 송년호에 올해의 인물을 선정해 발표해 오고 있다. 시사저널 편집국 기자들의 투표와 정기독자들에 대한 설문조사 등을 토대로,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력이 가장 컸던 인물을 선정하는 작업이다. 

시사저널이 선정한 '2024년 올해의 인물'은 또 하나의 페이지를 장식하며 역사에 남을 것이다. 

2024년 12월14일 7시24분, 대통령 윤석열의 시간은 멈췄다. 이날 윤 대통령의 직무는 공식적으로 정지됐다. 2022년 5월10일 취임한 지 949일 만에 윤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의 모든 권한을 정지당했다. 같은 날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로 가결됐다. 국민의힘에서도 12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대통령 탄핵소추는 20년 전 노무현 전 대통령(2004년), 8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2016년)에 이은 세 번째다. 

윤석열의 시계는 윤 대통령 스스로가 멈춰 세웠다. 그는 12월3일 밤 무모한 비상계엄을 선포해 자신을 파국의 길로 이끌었다. 이날 밤 10시25분 방송을 통해 흘러나온 윤 대통령의 긴급 대국민 담화는 국민을 경악하게 했다. 계엄의 명분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았고, 헌법 질서에도 부합하지 않았다. 45년 만의 비상계엄은 대한민국의 시계를 다시 군부 독재 시절로 돌릴 수 없다는 민심 앞에 불과 6시간 만에 해제됐다. 민심은 분노했다. 국민 대다수는 이내 이를 헌법을 능멸한 불법 계엄으로 칭했고, 그의 친위 쿠데타는 결국 11일 만에 탄핵소추안 가결로 일단락됐다. 

12월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한동훈과 정면충돌…의사·해병대·과학자와 극한 갈등

대통령 윤석열의 시간은 이미 끝났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남아있지만, 대통령으로서의 권위와 위상은 회복 불능 상태다. 오히려 내란죄 피의자 신분이 됐다. 수사 당국의 조사를 앞두고 있고, 구속 가능성도 점쳐진다. 탄핵안에 윤 대통령은 최대 사형까지 가능한 '내란죄 우두머리'로 적시됐다. '별의 순간'을 잡았다던 그는 어쩌다 2년7개월 만에 몰락의 길을 걷게 됐을까. 윤 대통령만큼 드라마틱하게 권력의 정점으로 빠르게 수직상승하고, 싸늘한 여론 속에 빠르게 급전직하한 정치인도 찾기 어렵다. 

역사책에서 다시 계엄을 꺼내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그는 이제 탄핵이라는 두 글자와 함께 역사책에 오랫동안 기록되게 됐다. 대체 그를 몰락의 길로 재촉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임기 내내 '김건희 리스크'에 시달리던 윤 대통령은 집권 이후 끊임없이 '뺄셈정치'를 해왔다. 윤 대통령이 '포위당한 대통령처럼 행동했다'고 짚은 BBC의 분석은 날카롭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비상계엄은 스스로를 '포위시킨' 윤 대통령의 자해극과도 같았다. 

대선에서 '별의 순간'을 잡았던 윤 대통령은 집권 이후 계속 보수의 영토를 잘라내는 '뺄셈의 정치'를 해왔다. 윤 대통령이 집권 내내 다툰 대상은 야권만이 아니었다. 그는 비윤(非윤석열)계는 물론 자신을 대선 승리로 이끌었던 정치적 동지와 동료들을 자꾸 적으로 만들었다. 지지 기반이 축소되면 지지율이 추락하고, 국정운영 동력은 훼손된다. 윤 대통령이 펼친 뺄셈의 정치는, 취임 두 달 만에 20%대 지지율이라는 부메랑으로 다가왔고, 그렇게 국정 동력은 취임 초부터 크게 훼손됐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당대표 이준석을 끌어내렸다. 대선에서 윤 대통령에게 승리를 가져다줬던 '세대 연합'에서 2030세대가 떨어져 나가는 순간이었다. 대선에서 단일화하며 공동정부를 꾸리겠다고 약속했던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과의 약속은 지키지 않았다. 그에 앞서 유승민 전 의원과도 절연했다. 중도보수 세력의 한 축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단순히 몇몇 정치인과 멀어진 게 아니다. 청년 정치(이준석)와 중도 정치(안철수·유승민)의 대표성을 갖고 있는 상징과의 결별이고, 이는 궁극적으로 정권의 존립 기반인 보수의 외연을 좁혔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는 윤석열 정부 위기의 출발을 이 같은 '선거 연합의 해체'로 진단한다. 그는 윤 대통령이 대선을 승리로 이끈 '보수 빅텐트'를 스스로 해체해 버렸다면서 이를 두고 '자기가 앉아있는 의자 다리를 스스로 톱으로 자른 격'이라고 했다. 이런 뺄셈정치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30% 아래로 추락해 다시는 회복하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2024년 시작됐다. 윤 대통령은 의대 증원 이슈를 만들어 의사 집단과 심각한 갈등을 빚었다. 채 해병 사건으로는 해병대 예비역들이 등을 돌리게 했다.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논란으로는 과학기술인들과 충돌했다. 윤 대통령이 전선을 형성하고 갈등을 빚은 의사, 해병대, 과학자들은 그 누구보다 윤 대통령의 우군일 수 있는 집단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보수의 주력 직업군과 잇따라 충돌했다. 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그토록 강조했던 '합리주의'와 '지성주의'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렇게 보수의 영토가 다시 한번 잘려 나갔다.

김건희 앞에서 사라진 尹의 공정과 상식

뺄셈정치의 클라이맥스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의 갈등이었다. 그 누구보다도 가깝다던 두 사람은 '윤·한 갈등'이라 불리는 보수 내전을 수차례 연출했다. 갈등의 씨앗에는 김건희 여사가 자리했다. 공적 권한이 없는, 선출되지 않은 김 여사가 국정과 인사는 물론 여당 공천과 당무까지 관여한다는 의혹을 두고 두 사람은 정면충돌했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의 월권을 방지하려는 '후배 한동훈'을 결국 내치고, 김 여사를 끝까지 지키는 모습을 보였다. 

주가조작, 명품백, 명태균 의혹 등 김 여사 관련 의혹이 튀어나올 때마다 윤 대통령은 논란을 외면했고, 사정기관의 칼날은 김 여사를 피해 갔다. 그렇게 보수 주류층까지 윤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다. 지지율은 10%대 선으로 주저앉았다. 윤 대통령이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평가가 보수층도 잠식하는 순간이었다. 

스스로 포위당한 대통령은 확증편향과 과잉신념이라는 덫으로 걸어 들어갔다. 계엄 선포와 탄핵 가결까지 윤 대통령의 말과 행동은 자신을 점점 더 고립시켰다. 윤 대통령이 대국민 메시지를 발신하면 할수록 민심은 점점 윤 대통령과 멀어졌다. 국민 눈높이와 전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엄 선포 전후 윤 대통령은 담화에서 '부정선거'에 대한 강한 확신을 드러냈다. 실제 행동으로도 옮겼다. 부정선거를 파헤치기 위해 계엄을 통해 총으로 선거관리위원회를 접수하려 했다.

"자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선거관리 시스템에 대한 자기부정이나 다름없다"는 선관위의 입장은 뼈아프다. 별의 순간을 잡았던 윤 대통령의 수직낙하에는 반복된 '자기부정'이 자리했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던 그의 말은 김 여사 앞에서 힘을 잃었고, 공정과 상식이라는 그의 상징자본도 아내 앞에서는 맥을 못 췄다. 그렇게 윤석열의 시간은 2024년 대한민국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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