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가게’ 김설현, 확신이 없었던 나에게[스경X인터뷰]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조명가게’의 사람들은 모두 그 생명줄이 조명가게의 전구로 설명된다. 사람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을 때 전구는 조명가게에 배달되고, 생과 사를 헤매는 사람이 조명가게를 찾아와 자신의 빛을 찾으면 그 사람은 현생으로 돌아갈 수 있다.
배우로서 김설현의 빛이 조명가게에 어떻게 빛나고 있을지 물었다. 그는 “어디선가 은은하게 빛나고 있지 않을까요”라고 답했다. 김설현도 배우로 더 크고 넓은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 빛을 찾아야 했다. 그에게 ‘조명가게’는 그 빛을 찾아 캐리어를 끌고 헤매는 극 중의 인물 같았다.
김설현은 ‘조명가게’에서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미스터리한 여자 이지영 역을 맡았다. 그는 극의 맨 처음 등장하고 매번 집으로 오는 김현민(엄태구)을 기다린다. 중반 이후부터 지영과 현민의 가슴 아픈 사연이 등장하고, 결국 이미 망자가 된 지영이 생과 사를 오가는 현민을 구해주는 서사가 이어진다.
“연기한 후 반응을 많이 찾아보는 편인데, 시청자의 반응이 이렇게 좋은 것은 처음이었어요. ‘설현인지 몰랐다’ ‘새로운 모습이 좋았다’는 반응이 가장 좋았습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지영은 비에 젖어 긴 머리에 하얀 소복 같은 옷을 입고 거리를 헤매는 여자다. 게다가 현민의 집을 따라온 이후에는 정체 모를 그 캐리어에서 피 같은 액체가 뚝뚝 흐르기도 한다. 나중에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현민을 눕혀놓고 정체 모를 바느질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그의 손톱은 손가락 위가 아닌 지문 쪽 아래에 나 있다.
“걱정되는 마음이 없지 않았어요. 다른 역할을 하면서도 쉬운 건 없었어요. 감독님도 ‘지영이는 어렵다. 네가 아니라 누가 해도 어렵다. 내가 한다 해도 어렵고, 다들 그렇다’고 해주시더라고요. 확실히 제게는 부담을 더는 이야기였어요.”
원래 비유와 상징이 많은 ‘조명가게’에서 지영의 부분은 훨씬 그랬다. 게다가 초반 무얼할지 모를 미스터리한 모습이 나왔고, 현민을 해하려는 눈치도 보였다. 후반부에도 감정이 나와야 하지만 말을 하지 못하는 설정으로 연기에도 많은 제약이 따랐다.
“4회까지는 감독님이 ‘연쇄살인범처럼 가자’고 하시더라고요. 아파트에 현민과 함께 가는 장면도 ‘저 남자를 반으로 잘라서 캐리어에 넣으려는 감정으로 가야 한다’고 하셨어요. 그런 점이 또 이상하게 보이면 안 되니까 조율을 했고요. 결국 장애 때문에 현민의 어머니에게 현민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헤어질 결심을 했던 것 같아요.”
인터뷰 현장에서는 극 중 지영이 보여주는 고도의 상징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과연 현민과 지영은 왜 서로 못 알아봤을까. 현민은 지영을 사랑하긴 한 걸까. 막바지 지영은 왜 현민을 현생에 보내고, 미련을 가졌을까. 이 모든 설정의 해석은 모두에게 열려있다. 다행히 엄태구와의 호흡은 서로의 모습을 존중해주는 형태라 안심이 됐다
“선배님과 ‘소울메이트’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요. 촬영 전에 사적인 대화를 하며 긴장을 푸시는 분들이 있고, 자신의 할 것에 집중하는 분이 있거든요. 그런 면에서 선배와 저는 후자였어요. 다른 분들은 ‘너네는 왜 대화가 없냐’고 하니까 ‘소울메이트’로 답하긴 했죠. 억지로 사이를 허무는 것보다 자연스럽게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좋았어요.”
연예계 대표 내향인 엄태구와 비길 정도로 김설현 역시 그런 면이 있다. 2012년 걸그룹 AOA 멤버로 데뷔해 ‘큐티 섹시’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이미지와 비교하면 거리가 있다. 하지만 그렇게 차분한 것이 김설현의 원래 모습이었다.
연기를 처음 시작하고 여러 작품에 출연하면서, 그는 연기력 논란을 겪기도 했다. 그런 과정이 자연스럽게 그에게는 자존감이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면서 확신을 잃기도 했다. ‘조명가게’ 역시 그러한 고민을 감독 김희원과 우연히 이야기하다 합류하게 됐고, 계속 확신이 없는 부분을 감독과 선배들에게 조언을 들으며 극복해갔다.
“제가 얼마나 연기에 진심이었는지도 중요하지만, 보시는 분들에게 얼마나 와 닿았는지도 중요한 것 같아요. 감독님과 대화하면서 ‘늘 만족한 적이 없다’고 말씀드렸거든요. 그랬더니 감독님도, 이정은 선배님도 그러셨다는 거예요. ‘못해야 발전이 있다’는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는 다음 달이면 만으로 진짜 서른이 된다. 아이돌 시절 까마득하게 봤던 서른이라는 고지에 오르는 셈이다. 늘 주변에서 해야 한다고 하는 일이 휘둘렸던 20대와 다르게 30대는 조금 더 주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의 껍질을 깨는 기간이 20대였다면, 조금 더 편하고 자유로운 30대를 꿈꾼다.
“새로운 역할을 좋아해요. 다양한 역을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 ‘새롭다’는 말씀을 들어서 좋았거든요. 꼭 다음에도 ‘설현인지 몰랐다’는 말씀을 듣고 싶어요.”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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