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빼는 약' 오픈런…한국은 다이어트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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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중 감량을 위해 처방받는 식욕억제제 오남용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일부 다이어트 성지 병원에서는 진료 대기표를 받기 위한 '오픈런(인파가 몰리는 현상)'이 벌어지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어느 병원에 가면 약을 넉넉히 처방받을 수 있는지 등을 담은 글이 쏟아진다.
치과, 산부인과 등 다이어트와 직접 관련된 병원이 아닌 곳에서 마약성 식욕억제제를 처방해주는 문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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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달간 25㎏ 뺐다는 소문에
오픈 전부터 30여명 줄서 대기
은어로 표기된 약 12종 처방
10만원만 주면 한달치 내줘
SNS서 구입 쉬운 병원 공유도
체중 감량을 위해 처방받는 식욕억제제 오남용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일부 다이어트 성지 병원에서는 진료 대기표를 받기 위한 '오픈런(인파가 몰리는 현상)'이 벌어지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어느 병원에 가면 약을 넉넉히 처방받을 수 있는지 등을 담은 글이 쏟아진다. 식욕억제제 오남용을 막기 위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된 지 4년여가 지났지만 의료 현장에서는 달라진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8일 매일경제가 방문한 서울 구로구 소재 'ㅇ' 가정의학과는 다이어트약 처방으로 유명한 3대 성지 중 하나다. 1층 출입구에서부터 '진료과목: 다이어트'라고 적힌 안내문이 크게 붙어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40대 후반 A씨는 "살을 빼기 위해 지난해 여러 병원에서 다이어트약을 처방받아 먹기 시작하다가 올해 '성지 병원'이라고 하는 이 병원에 방문했는데 2개월 전에 비해 5㎏이 빠졌다"고 말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식욕억제제를 잘 처방해주는 성지 병원을 묻고 답하는 게시글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일부 의원은 일부러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을 수 있다는 것을 광고 전면에 내세워 환자를 모집하기도 한다.
지난 21일에는 매일경제 취재진이 구로구 소재 또 다른 성지 병원인 'ㄹ' 의원을 직접 방문해 다이어트약을 처방받았다. 이곳은 매일 오전 9시에서 9시 반 사이에 진료 시간대별 번호표를 배부하는데, 사람들은 번호표를 받기 위해 오전 7시 이전부터 병원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이날 번호표를 배부한 시간인 오전 9시 20분께 총 28명이 병원 앞에 일렬로 앉아 있었다. 이른 새벽부터 대기한 일부 대기자는 매트를 가져와 쪽잠을 자기도 했다.
대기 중 만난 김 모씨(28)는 "지인이 3개월간 25㎏을 뺐다고 추천해 방문했는데 여기서 몇십만 원 약값만 내면 살이 쭉쭉 빠지니 가성비가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시간대별로 환자 10명이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취재진도 목표 몸무게, 음식 섭취 횟수 등을 묻는 사전 질문지를 작성한 후 키, 몸무게, 혈압을 재고 의사 진료를 받았다. 의사는 "술을 자주 마시냐" "운동을 얼마나 하냐" 등 간단한 질문을 한 후 바로 약 한 달 치를 처방해줬다. 진료·처방비는 5만원이었고 한 달 치 약값은 평균 10만~15만원이었다.
이날 취재진이 처방받은 의약품 종류는 12종이었다. 처방전에는 의약품명이 병원과 약국만 알아볼 수 있도록 검색되지 않는 은어로 적혀 있었다. '타이레놀'을 '타이놀'로 적는 식이다. 보험이 되는 항우울제 약품을 비보험으로 적기도 했다.
처방받은 의약품 중에는 '펜디메트라진'도 있었는데, 이는 중독성과 의존성이 높은 마약류 향정신성 식욕억제제다. 향정신성 식욕억제제를 과다 복용하면 불면증이 생길 수 있고 심한 경우 심장 이상, 정신분열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병원에서 만난 60대 B씨는 "약을 먹고 손저림 현상과 불면증·변비가 생겼다"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20년 8월 '의료용 마약류 식욕억제제 안전 사용 기준'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청소년 처방 금지 등을 의료기관에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처방권은 의사의 고유 권한이어서 가이드라인을 어긴다 해도 제재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
치과, 산부인과 등 다이어트와 직접 관련된 병원이 아닌 곳에서 마약성 식욕억제제를 처방해주는 문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지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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