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증시 ‘썰물’ 시대…채권시장은 다르다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금리 인하 국면, 원화 채권 투자 적기”
(시사저널=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정치적 불안은 금융시장에 확실한 악재다. 길어질수록 더 그렇다. 하지만 그 영향은 제한적이고 위기 상황이 가라앉고 나면 금융시장에 중요한 것은 역시 경제 상황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지난 5월 이후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내 주식을 팔고 있다. 순매도 규모는 10조원을 넘는다. 하지만 채권시장에서는 열심히 사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의 5월 이후 채권 순매수 규모는 21조원에 달한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우리 주식을 파는 이유는 뻔하다. 수익률이 낮기 때문이다. 코스피 지수는 연초 대비 7% 이상 내렸다. 여기에 원화가 미국 달러화 대비 8% 이상 하락한 걸 포함하면 외국인 투자자는 연초보다 15% 이상 손해를 본 셈이다. 반대로 미국 S&P500 지수는 연초 대비 27% 뛰었다. 한국 주식시장에 투자해야 할 이유가 없다.
"한국 채권, 안정성·수익성 인정받아"
채권시장은 다르다.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ETF 수익률을 보면 30년물 기준으로도 10년물 기준으로도 미국에 투자했다면 올해 손실을 봤거나 아예 수익이 없었지만 한국은 4%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주식보다 채권의 사정이 나은 건 우리나라만의 일도 아니다. 지난 3년 동안 신흥국이 발행한 달러 표시 채권은 신흥국 주식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흔히 투자의 중요한 세 가지 요소는 수익성과 안정성, 유동성이라고 한다. 하지만 채권에 투자하는 사람이라면 이 가운데 안정성을 가장 중시하는 것이 보통이다. 한국 채권은 다른 나라 채권에 비해 안정성과 함께 비교적 높은 수익률을 제공한다고 평가받는다.
채권 가격을 예상할 때 가장 중요한 변수는 금리의 방향이다. 기본적으로 채권은 미리 정해진 이자를 지급하는 금융상품이다. 투자자들은 일정한 기간 동안 채권을 가지고 있다가 만기가 돌아오면 사전에 정해진 이자를 받는다. 하지만 채권에서 발생하는 수익에는 이자소득(coupon)에 더해 만기 전에 채권을 살 때보다 비싸게 팔았을 때 발생하는 차익(capital gain)도 있다. 채권은 금리가 내리면 그 가치가 오른다. 발행금리가 낮아질수록 기존에 발행된 채권의 투자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내리며 통화정책 방향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금리 인하가 확실한 추세라면 채권 투자가 유효한 시점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심지어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도 22년 만에 채권 투자에 나섰다. 그동안 쌓아둔 현금성 자산 대부분을 유동성이 높은 단기 채권, 미국 재정증권(Treasury Bill)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는데 9월 기준 채권 투자액은 3040억 달러, 우리 돈 420조원을 넘기면서 주식 투자액을 뛰어넘었다고 한다. 22년 전 닷컴 버블 붕괴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마침 한국 국고채의 세계 국채 지수(WGBI·World Government Bond Index) 편입이 확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세계 3대 채권지수 중 하나인 WGBI는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이 추종하는 주요 벤치마크 중 하나다. 편입 국가의 채권시장에 외국 기관투자가들의 자금을 유입시키는 역할을 한다. 한국 국채는 만기 50년물을 제외하고 앞으로 1년간의 유예 기간을 거쳐 2025년 11월에 최종적으로 WGBI에 편입될 예정이다. 우리나라는 국가별로 따지면 9번째 규모인 2.22% 비중으로 발표됐다. 이는 지수를 추종하는 펀드 자금 약 2조5000억 달러 가운데 560억 달러 정도가 인덱스 형태의 국채 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지수를 추종하는 글로벌 펀드 자금 규모를 3조 달러 수준으로 가정하면 자금 유입 규모는 660억 달러 수준으로 늘어난다. 보수적으로 계산해도 국내 채권시장에는 앞으로 3년간 매년 20조~30조원 규모로 WGBI와 관련한 자금이 추가로 유입될 수 있다.
외국인 자금 유입은 조금이라도 금리를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기재부는 내년도 국고채 발행 물량이 올해보다 42조원 증가할 것이라고 발표했는데,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와 11월 WGBI 실제 편입을 앞둔 기대감은 국채 공급 부담으로 인한 금리 상승 압력을 줄여줄 것이다. 가장 큰 수혜가 예상되는 건 만기 10년 내외의 중장기 국채다. 현재 외국인의 원화 채권 투자는 단기물에 집중돼 있다.
"WGBI 편입에 금리 인하…채권에 호재"
최근 2년간 개인투자자가 채권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꾸준히 늘어났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원화 채권시장에서 개인의 비중은 1% 미만에 불과했지만, 현재 개인의 원화 채권 보유잔고는 54조원 규모로 국내 채권시장 전체의 2.5%를 차지한다. 역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평가되는 국채 투자가 많지만, 국채의 경우 개인투자자의 보유 상위 종목들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1~2%대 저금리 시절에 발행됐던 채권에 집중돼 있다. 1%대 금리 시절 발행됐던 채권은 그동안의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가격이 많이 떨어진 상태다. 채권도 금융 투자상품이다. 안전하기만 한 건 아니고 국채가 아니라면 원금 손실 가능성도 있다. 주식에 비해 유동성 위험이 크다는 약점도 있다. 하지만 수익과 위험의 균형을 맞춘 자산 배분을 생각하다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채권이다. 금리 변동에 따라 채권 가격이 오르거나 내린다고 해도 개별 채권이라면 만기까지 보유함으로써 가격 변동 위험을 피할 수도 있다.
2024년 현재 우리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은 코스피와 코스닥을 합쳐 2400조원 수준이지만 채권시장의 시가총액은 2500조원이 넘는다. 채권시장의 자산 규모가 더 크다. 대다수 선진국 자본시장도 마찬가지다. 2024년 현재 외국인 투자자들은 코스피 시장에서 35%, 채권시장에서 10% 정도를 보유하고 있다. 투자금 회수 없이 만기가 돌아와도 재투자가 이뤄지면서 꾸준히 보유 금액이 늘고 있는 걸 보면 우리나라 채권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의 신뢰는 안정적인 편이다. 채권시장의 변동성 위험은 우리보다 미국이 더 크다. 환율까지 생각하면 적어도 국내 투자자에게는 원화 채권이 더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가 결정해 놓은 25년 말 자산군별 목표 비중을 봐도 가장 많은 35.9%의 해외 주식에 이어 국내 채권 26.5%, 국내 주식 14.9%, 해외 채권 8.0%, 대체투자 14.7% 순이다. 채권은 지금과 같은 금리 인하 초기 국면에서 가장 기대수익이 높아지는 투자상품이다.
지난달의 전격적인 금리 인하 이후 내년 말 기준금리 전망치는 연 2.5% 이하로 내려갔다. 채권 투자라고 특별히 주식보다 쉽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채권에 대한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고 있는 시점이다. 개인투자자들도 채권에 관심을 가져보는 게 필요한 때가 아닐까.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 이후 채권시장은 아직 변동성이 크게 확대되지는 않고 있다. 정치적 불안으로 인한 국고채 금리 상승은 경계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도 그랬고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도 그랬다. 이번에도 과거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